콩 심기

- 당신은 어떤 씨앗 주머니를 갖고 있나요?

by 곽영미


이번 그림책은 신보름이 그리고 글을 쓴 [콩 심기]이다. 이 책은 판형 자체가 굉장히 작다. 세로로 긴 책으로, 가로 폭이 12cm밖에 되지 않아서 기존 그림책 판형과도 뚜렷이 눈에 띈다. 또한 이 책은 병풍책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페이지가 연결된 그림으로 되어 있다. 글은 세로 쓰기로 되어 있으며, 한 펼침면에 한두 개의 목차처럼 주제어가 들어가고 그 뒤로 본문 내용이 쓰여 있다.


noname01.jpg 표지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앞표지 그림을 통해 이 그림책 그림이 판화로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과 저자 이름이 세로로 오른쪽에 보이고, 콩잎처럼 보이는 잎들이 아래쪽에 넓게 차지하고 있고 그 위로 농기구와 고양이처럼 보이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 콩 심기를 준비하는 상황이란 것을 제목과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뒤표지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글 때문이다. ‘78세 옥님 할머니가 들려주는 콩 심는 방법’ 문구가 보인다. 시골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도 농사짓는 옥님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콩 심는 방법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이야기가 손녀에게 어떻게 콩을 심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글에서 말하는 화자로 할머니와 손녀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글 읽기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그림책은 면지 없이 바로 분문으로 들어가는데 먼저 첫 펼침면에는 ‘흙 솎아 내기’라는 소제목과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사람과 빨간 모자를 쓴 한 사람이 등장한다.


noname02.jpg 본문 펼침면


두 번째 펼치면에서는 ‘물 뿌리기’다.

[축축하게 뿌려. 물 뿌려 놓고 거작 꼬독꼬독 물이 들러 쓴 다음에 나중에 골라. ……근디 우리가 지금 비가 안 오니까 물을 찌그린 겨.]

본문 글이 보인다. 글은 보다시피 전라도 사투리다. 세로로 쓰였는데, 전라도 사투리까지 들어가니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으며 읽기가 조금 어렵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라. 글은 소리 내 읽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더 이해도 잘 되고, 내용도 재미있다.

앞장의 글들은 콩을 심기 위해 흙을 솎고, 비료주기, 잡초를 제거하여 여러 준비 과정을 거치고, 콩 심기까지의 내용을 보여준다.

비료주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원래 콩은 퇴비 안 하고 숨군디…….]

맞다. 콩은 비료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이다. 콩의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라고 하는 세균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콩의 뿌리를 캐보면 작은 공이 동글동글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뿌리혹이다. 이 세균은 땅 속 질소를 고정시키기 때문에 콩밭은 질소 비료를 덜 주어도 된다.

[콩은 서너 개씩 넣어. 콩알이 요만하면 흙을 요 세 배를 덮어. ……무슨 곡식이든지 그 곡식을 불리기 위해 세 배를 덮으면 돼.]



콩 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콩 서너 개 심는다는 글을 보니 자연스럽게 콩 세알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공동체 삶과 연결된다. 옛사람은 씨앗을 심을 때 한 번에 세 알씩 심는다고 했다.

한 알은 벌레가 먹고, 한 알은 새가, 한 알은 사람이 먹기 위해서.

또한 여기서는 흙은 덮는 지혜도 알려준다. 흙은 곡식에 3배로 덮으면 된다고 한다. 무슨 씨앗이든 말이다. 사람들이 씨앗을 심을 때 자주 묻는 말이다. 대체 흙은 얼마나 덮으면 되는 거예요?


이 그림책 글에서는 이렇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양의 표현 없이 [이 정도로] 이런 식으로 표현된 글도 있다. 나는 이렇게 눈대중으로 말하는 표현이 좋다. 정확한 양을 알 수 없으나 말하는 사람들만이 몸으로 익힌 개념들이어서, 그리고 그것을 한번 해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어서 할머니가 콩 심는 장면을 더 생생하게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콩이 새파래 올라오면 새가 모가지를 똑 따 먹어 버려. 그래서 구멍을 덮어. 삐들기나 까치나 참 신기혀. 전에는 안 그랬어. 먹을 것이 없는지 그렇게도 이상스러.]

그물치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둘기나 까치가 올라온 싹을 따먹는 모습을 얘기하는 화자는 비둘기나 까치가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유추를 하고 있다. 사실이다. 요즘은 산비둘기나 까치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부족해지긴 했다. 숲에 가면 숲의 가장자리가 경작물로 가득 찬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산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식물들의 열매가 적어지긴 했다. 또한 경작물을 이제 새 몫으로 남겨두려는 사람들 역시 드물다. 누가 콩 세알을 심고, 까치 몫을 남기겠는가? 뭐든 심다 보면 처음에 그러지 않는데도 콩 세알의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모두 심은 사람이 가져야 한단 생각에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가을 감나무의 까치밥이 남겨진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집주인의 인정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림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닐과 그물을 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땅과 사람들에만 색을 넣고 다른 배경에는 색을 넣지 않았다.

앞 장면 8개의 펼침면이고, 뒷장면은 7개의 펼침면과 한쪽 그림으로 총 31쪽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장면에서는 콩밭과 함께 다른 작물이 보이는 반면에 뒷장의 그림들은 콩의 새싹이 나기 시작하고, 나비가 날아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모습까지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앞 장면은 분주하게 콩 심기 전반부를 보여주고 있다면 뒷 장면들은 클로즈업 되어 콩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우리는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에서 뒷장면이 중심인 된 그림책을 더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책은 독특한 판형, 병풍책의 구성, 글에서의 사투리, 판화 등등 독특함이 묻어나 있지만 무엇보다 글에서 콩 심기 전에 과정이 잘 나와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본문 펼침면

[……꽃이 많이 달려야 나중에 꼬투리가 많이 열리는 거여. ……콩알은 몇 개나 될까? 시방 많이 열렸어도 까 보면 다를 수 있어. 콩은 안에 열매가 잘 맺혀야 혀.]

할머니가 말한다. 꼬투리는 콩처럼 생긴 콩과 식물의 씨앗을 싸고 있는 껍질을 말한다. 꼬투리는 다른 말로도 쓰인다. '꼬투리 잡는다는 말'처럼 어떤 이야기의 사건의 실마리나 남을 해코지하거나 헐뜯을 만한 거리로도 쓰이는 말이다.

할머니 말처럼 꼬투리 속을 까보지 않고는 콩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꼬투리 속에 콩알이 잘 여물면, 꼬투리가 살찌듯 통통해진다. 하지만 다 잘 여물었다고 생각되는 꼬투리도 까 보면 한두 개 쭉정이가 있기 마련이다.


뒷장면은 새싹이 자라 꽃이 피고, 여러 곤충들이 날아와서 수분활동을 하고, 그 꽃에서 꼬투리가 열리고, 콩이 여물고, 가을이 되어 콩잎이 누렇게 지는 모습까지 그려진다. 이런 콩의 성장 과정과 함께 배경 하늘의 색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과정도 아름답다. 하늘색에서 연한 주황색, 그리고 진한 주황색, 보라색으로 넘어가서 마지막으로 검은색으로 끝이 나는 색의 변화도 볼거리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본문 마지막 장면

[할머니 나 콩 다 주웠어. 같이 가. 그랴.]

뒷장면의 글은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체로 되어 있어서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묻고, 할머니가 알려준다. 뒷장면의 대화체는 앞장면의 글보다 더 빨리 눈에 들어오고, 쉽게 읽힌다.

콩 줍기가 다 끝난 빈 들녘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흰 보름달은 까만 밤과 흙을 덮은 까만 비늘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떨어진 콩 알 하나가 남겨졌다. 이 그림을 통해 콩이 흙에 남아있는 느낌을 받으며 생명 순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콩은 여전히 검정 비닐 위에 있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콩을 키우는 과정을 검정 비닐을 씌운 것이다. 물론 검정 비닐을 씌우는 이유는 풀이 자라지 않기 위해서다. 병충해에 약한 콩에 약을 치지 않고 키우기 위해서는 검정 비닐을 씌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흙 위에 남겨진 검정 비닐을 보는 마음은 편치 않은 건 나의 과한 걱정인가?



나는 들과 산에 다닐 때면 풀꽃들을 유심히 살핀다. 꽃의 빛깔, 형태를 관찰하고, 마음에 두는 풀과 나무는 그 자리를 익혀둔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그것들의 씨앗을 조금씩 받는다. 올해는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차나무 씨와 동백꽃 씨, 청파랑 나팔꽃 씨를 받아서 냉동실 씨앗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나는 나팔꽃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아침이면 어김없이 올라와서 한 여름 내내 환하게 텃밭을 가득 메운 나팔꽃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친구네에서 머물 때에도 동네를 산책하다가 짙은 연분홍 나팔꽃 담벼락을 발견했다. 담벼락이 어찌나 크고, 온통 나팔꽃으로 가득 덮여서 정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했는데, 며칠 뒤 나팔꽃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주인이 모두 나팔꽃을 없앤 것이다. 그 허탈감과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언니와 함께 살다가 이사를 하면서 베란다에서 키우던 나팔꽃을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곧 제주로 돌아가게 되니 냉동실에 잠자고 있는 나의 씨앗들을 깨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타샤 튜터처럼 넓고 멋진 정원을 만들 수는 없지만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 생각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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