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맨(Little man)

by 곽영미


앙투안 기요페가 지은 그림책 [리틀맨]을 만나 보자. 보림에서 나왔고, 옮긴이는 이세진이다. 보림출판사는 그림책 출판사로 탄탄한 명성을 가진 출판사이다. 그림책 출판사가 적었던 시기부터 그림책 출판사로 자리를 잡았고, 좋은 그림책도 많이 출간한 출판사이다. 최근에는 예술 그림책으로 시장성을 넓히고 있다.

표지

리틀맨의 표지다. 스캔한 화면에서는 백(White)의 느낌이 잘 살지 않았다. 실제 표지는 검은색과 하얀색의 뚜렷한 대비로 쓰였다. 앞표지에는 한 아이의 상체가 보이고, 그 안으로 도시의 빌딩 숲이 보인다. 영문 제목 텍스트를 보자. 영문 텍스트는 타이포그래피 효과가 들어가서 L자가 빌딩처럼 보인다.

뒤표지는 흑과 백으로 표현된 도시의 첨탑이 보인다.

면지는 붉은색 계열의 색이 도시의 상공에 쓰이고 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검은색 빌딩 사이에 있는 붉은색의 느낌은 처음 책을 읽을 때에는 지는 노을처럼 보였는데, 이야기를 다 읽고, 다시 읽을 때에는 마치 핏빛을 연상시켰다.

면지

표제지에는 제목 아래에 한 아이가 두 손을 주머니에 낀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걷는 아이의 방향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페이지터너 기능을 하고 있다.

본문 첫 페이지에는 철조망 밖을 바라보고 있는 33(Bryant)이라는 숫자를 써진 티셔츠를 입은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철조망 밖은 노을이 지고 있다.

본문

두 번째 페이지부터 아이의 이름이 카이우스라는 것, 다리를 달리는 것이 꿈이라는 걸, 아무도 잡을 수 없게, 바람처럼 달리는 게 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는 붉은빛, 진분홍 빛 도시를 달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황홀한 불빛이 있는 도시에 다다른다. 그리고 자신이 전에 여기서 아주 먼 곳에 살았고, 전쟁으로 넓은 바다를 건넜다는 사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본문

아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거대한 모터 같다는 생각으로 그곳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꿈이었다. 곧 소년은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현실은 그 아이의 앞에 놓인 빨간색의 배경과 철조망이다.

본문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소년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가자, 우리 아들,

오늘이 네 생일이란다.

우리 함께 다리를 건너자꾸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은 보는 것처럼 페이퍼 커팅(종이에 칼선)을 넣어 그림책의 입체감을 더했다. 페이퍼 커팅은 예전부터 그림책에서 많이 등장해서, 그리 새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페이퍼 커팅은 높은 수준이다. 커팅을 넣은 앞, 뒷면 그림 구조의 효과도 좋다. 커팅을 넣고 이렇게 예술적인 그림으로 완성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예술적인 기술 또는 기법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줄지는 의문이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예술 그림책의 정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이 그림책은 이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림 출판사에는 소년과 가족은 자국의 전쟁을 피해 넓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 왔고, 소년은 부모님과 함께 생일을 맞으며 꿈에 그리던 브루클린 다리를 건넌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은 ‘빅애플’이라고도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뉴욕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였다.


이 그림책에는 여러 상징적 요소들이 있다.

33(Bryant) 농구 티셔츠, 단절과 갇힘을 의미하는 철조망, 총을 겨누는 총과 군인의 모습, 그들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어려운 이들의 모습들이 보이고, 그 뒤에 경찰이 한가로이 경찰차에 기대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 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모습, 사회적 약속인 신호등, 자유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등등이다.

심지어 소년은 자유의 여신상이 자신을 지켜봐 주어서, 이 도시가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도시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구조에서 오는 빈약함과 이민(사실 난민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이라는 소재를 이런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풀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앞선다.

군인과 대비되는 경찰, 전쟁과 평화, 이동할 자유와 이동할 자유가 없는 곳, 시골과 화려한 불빛의 도시.

이 모든 것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나아가는데, 나는 이 뚜렷한 이분법적 대비가 과연 전쟁 등으로 타국으로 이민을 가는 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흑과 백, 그리고 다른 여러 강조색을 두었지만, 자국에서 아픔과 슬픔을 가진 아이가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오기까지 이야기를 이렇게 단순하게 대비하는 상징성으로 만드는 게 나았을까.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는 그 아이의 말이 와 닿지 않았다. 물론 아이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자유를 원하는 것은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시각적 의미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메트로폴리탄, 뉴욕에 대한 오마주라는 걸 생각하면 왜 이런 이야기 구조가 되었는지 이해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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