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노래해

- All the World / 온 세상이 하나의 생명체

by 곽영미

리즈 카튼 스캔런 글, 말라 프레이지 그림 [온 세상을 노래해]을 처음 접한 것은 지인의 추천이었다. 추천을 받고 처음에 읽었을 때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지 크게 와 닿지가 않았다.

‘뭐지? 나와 취향이 이렇게 다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사건 전개가 뚜렷하고 위트가 있는 책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잔잔한 글과 그림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몇 년 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을 때 그림의 글을 지우고 그림을 먼저 보고, 그 뒤 글과 함께 보는데 그때, 아이들을 통해 이 그림책에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이 그림책을 보게 되자 그녀가 왜 이 그림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noname01.jpg 표지(앞-뒤)

앞표지에는 언덕 위에서 하늘 위 구름을 보는 두 남녀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고, 뒤표지에는 해변 놀이를 마친 두 아이와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면지는 색 면지로, 초록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지는 제목과 함께 작은 소라 모양의 고둥이 보인다. 이 책은 특이하게 표제지 뒤에 본문이 바로 펼침면으로 들어가는데, 본문 페이지 왼쪽 면에 서지사항이 들어가 있고, 오른쪽 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noname02.jpg 본문(첫 페이지)

[바위, 돌멩이, 조약돌, 모래]

남매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돌멩이를 나르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다음 중에는 두 아이가 모래성을 만들고, 노는 모습과 함께 뒤표지에 나왔던 놀이를 마친 두 아이와 엄마, 아빠의 모습이다. [온몸, 어깨, 팔, 손, 도랑을 파요. 조가비를 주워요.]인데 글이 그림 위에 물결치듯 놓여있다. 이 그림책에는 이처럼 ‘타이포그래픽’이 자주 쓰인다. 글에 움직임을 주어 그림과 함께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타이포그래픽’은 활판 인쇄술이라는 뜻으로, 활자를 이용해서 조판하거나, 활자의 배치 등을 뜻한다.

아이와 가족들의 모습으로 클로즈업되었던 화면은 점점 줌아웃되면서 다음 장에서는 가족이 타고 떠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보여주고, 뒷이야기에 나오는 장소들이 멀리 보인다. 글로는 [세상은 넓고도 깊어요.]라고 적혀 있다.

noname03.jpg 본문 펼침면

이 그림책은 시적인 글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플레이밍’ 기법이 가장 잘 나타난 그림책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앞 장면에서 다음 장면에서 보일 장소와 사람들을 보여주고, 다음 장에서 줌인해서 그곳으로 들어가 있다. 앵글의 각도도 다채롭게 변화를 줘서 마치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듯하다. 처음 가족들이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멀리 보였던 프리마켓이 그 뒷장면에서 나타나고, 나무 위에서 보았던 먼 곳의 탑이 뒤에 이야기의 장소가 되는 식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다 보면 뒤에 어떤 장소가 등장할지, 어떤 사람들이 보일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 그림 장면에 따라 어떻게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 찾게 된다. 아이들은 이런 그림 구조를 보며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에 즐거워했다.


[나무, 둥치, 가지, 우듬지. 기어올라요, 앉아요. 아침 햇살 빛나던 하늘, 어느덧 새파란 한낮]

우듬지는 나무줄기의 끝부분이다. 위의 글을 떠올려 보시길. 그렇다면 둥치는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가? 어렴풋이 밑동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둥치는 큰 나무의 밑동을 부르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늘 쓰던 어휘만 사용해서 말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휘가 빈약해진다. 일부 작가들은 그래서 어린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낯선 어휘를 넣어 아이들이 새로운 어휘를 익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책 [피터 래빗]의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가 그런 작가 중 하나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그린 그림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아마 어려운 어휘가 많아서 놀랄 것이다.


[온 세상을 노래해] 그림은 모두 펼침면에 들어가 있는데, 배경색이 있고, 없는 것으로 차이를 두었다. 자연의 구체적인 대상물이 나오거나 인간의 움직임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배경을 빼고 인물에만 색을 넣어 집중하게 만들었다. 반면 [온 세상이 커다란 뜰이에요]와 같이 세상을 비유한 글이 있는 장면에서는 배경색을 넣어서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비유가 들어간 장면에서 우리는 더 깊게 그림에 빠져들 수 있다.


noname04.jpg 본문(펼침면)

[세상은 오래되었어도 새로워요] 글과 커다란 나무가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 커다란 나무 가지에 올라 노는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수레에 어린 나무가 그려진 장면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의 하나이고, 지금도 아이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성인들 중에는 어린 시절 저렇게 나무의 굵은 가지를 올라타 앉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탈로 칼비노가 쓴 [나무의 남작]이라는 소설에는 아버지와의 마찰로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남작의 일대기가 나온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무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를 며칠 고민한 적이 있을 만큼 나무 위에서 노는 놀이나 삶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과 이 장면을 보고 이 글이 의미하는 바를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어린 나무와 커다란 나무가 있는 그림이기에 아이들의 생각이 나무 중심으로 이해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의 생각은 단순히 나무에 한정적이지 않고, 자연의 순환, 과학, 문명, 인간의 삶들과 연결해서 조금 놀랐다.

이 그림책을 읽을 때 이 장면에서 다소 헤매게 된다. 분명 우리는 해변에서 놀던 가족을 따라 이야기를 옮겨 갔는데, 갑자기 할아버지와 어린아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 읽으면서 ‘대체 그 가족은 어디에 간 거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장을 넘기고 그 아이 가족이 나오자 안도하며 다시 그 가족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갔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어린아이들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프리마켓에서 그 아이 가족과 할아버지와 어린아이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다시 처음 가족으로 그리고 다시 할아버지와 아이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다 같이 모인 그림이 등장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사촌들, 온 가족,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 가슴에, 무릎에, 귀여운 아기]

이 글을 읽고 그림 속에 그 가족과 할아버지, 아이들이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가족과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사촌들이었다. 작가는 정말 재치 있게 이야기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그림 속 곳곳에 배치해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이런 작가의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야기의 주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너와 나, 우리가 온 세상이에요.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세상이지요. 그 모든 것이 너와 나, 우리랍니다. …… 세상은 우리 모두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작가가 그림과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온 세상,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단지 아름다운 자연만이 아니라 그 자연 속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사랑하는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책을 다 읽고 나면 평화와 위안을 느끼게 된다.


이 그림책에서 마지막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다. 물론 풀샷으로 그린 장면들은 제각각 아름다운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로 아름다움을 전하지만 마지막 아이가 손에 들린 무언가를 보는 장면이다. 대체 아이 손에 무엇이 놓인 것일까? 얼마나 소중한 것이면 아이는 저렇게 골똘히 보고 있는 것인가? 그림 작가는 왜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세상은 우리 모두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그렸을까 고민이 된다. 나는 아이 손에 들린 것은 표제지에 나온 소라처럼 생긴 고둥이라고 생각한다. 본문 두 번째 그림 장면에서 소녀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모습과도 연결된다. 물론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이가 해변에서 주운 속이 빈 소라고둥이었으면 좋겠다. 쓸모없다고 여기는 빈 소라고둥마저도 세상의 일부분이고, 아름다움이며, 그런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아이까지.


noname01.jpg 본문(마지막)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고르라면, 물론 고르기가 너무 어렵지만 나는 주저 없이 마지막 장면이 아이의 모습을 고를 것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All the World] 제목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참 아름다운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리틀맨(Little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