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꿈

-그림책 [엠마] 이야기

by 곽영미


웬디 케셀만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강연숙 옮김 [엠마]를 만나 보자. 표지를 살펴보면 다홍 색깔의 프레임 안에 그림이 들어가 있다. 앞표지의 그림에는 엠마로 보이는 할머니가 장롱에서 그림 한 점을 꺼내는 모습이다. 다른 한 손에는 그림이 들려 있다. 그림책 그림들을 보다 보면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물건을 많이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그림 역시 오른손으로 그림을 꺼냈다면 그림이 좀 더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뒤표지에는 할머니가 붓을 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상단 두 그림과 하단 고양이 그림에는 색이 들어가 있고, 다른 부분에는 색을 빼서 두 그림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바바라 쿠니는 <달구지를 끌고>로 칼데콧 상을 받은 작가이다. 이 작품 외 <제프리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유>라는 작품으로 칼데콧 상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스 럼피우스] 작품을 좋아한다.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작가로는 <온 세상을 노래해> 그림 작가인 말라 프레이지가 있다. 대체 이들의 그림에는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칼데콧 상은 2014년 이전까지는 그림작가에게 주는 상이었다. 일생일대에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이 상을 두 번 받았다는 건 이 작가들의 그림에 상을 받을 만한 이유들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부러움이 가득하지만, 감히 내가 이들의 그림세계를 다가갈 수 없으니 시기와 질투와 감정이 일지 않는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를 먹어서이기도 하다.


엠마 표지

면지가 생략되고, 바로 표제지로 들어간다. 제목 옆에 작은 연못이 그려진 그림이 보인다. 두 마리의 오리, 두 남녀처럼 보이는 커플이 서로 다정하게 위치하고 있다. 원형의 파란 연못, 그 연못을 둘러싼 초록의 나무들이 그림이 편안하고 좋다.

본문

본문 이야기는 왼쪽에 서지사항을 넣고, 오른쪽 바닥에서 바로 시작된다.

[엠마 할머니의 생일이었어요. 할머니는 일흔두 살이었어요.]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꽃을 사는 멋진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옷 색깔에 맞춰서 회색 모자도 썼고, 작은 핸드백도 들고 있고 있다. 꽃 향기를 맡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다음 장에는 할머니와 가족들이 만나는 모습이 보인다.

[엠마 할머니에게는 아들 딸이 네 명, 손자가 일곱 명, 증손자가 열네 명 있었어요. 가족이 찾아오면 할머니는 행복했어요. 푸딩과 초콜릿 크림 파이를 굽고 집안 곳곳에 꽃도 꽂아 놓았지요. 할머니의 가족은 선물을 많이 가져왔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어요. 할머니는 혼자 지낼 때가 많았지요. 그래서 가끔씩은 무척 외로웠어요.]

혼자 사는 노인들의 삶이 그러하듯, 할머니의 모습도 문화가 다른 외국인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장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집이 굉장히 따듯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집 안 배경에 빨간 양탄자, 주황빛 계열에 벽지, 그리고 빨갛고 파란 다양한 꽃들이 놓여서 그렇다. 할머니의 일상을 보여주듯이 책상에는 책들이 조금 놓였고, 벽에는 가족사진들이 걸려 있다.


본문

그 뒤 할머니의 반려묘인 주황색 고양이, 호박씨를 나무 꼭대기에서 구해주는 일, 둘이 함께 눈이 내리는 밖을 쳐다보는 일상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 모두 외부 프레임을 주어 마치 독자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액자 속 그림을 보는 것처럼 그려졌다.

할머니는 가족에서 작은 마을 그림을 선물 받는다. 자식들에게는 멋지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할머니는 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고향 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그려진 이 장을 이상하게 오랫동안 보게 된다. 할머니가 오랜 시간 저 자세로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액자 속 갈색 계열의 마을 풍경과 벽지가 같은 색을 이루고 있다.

그 뒤 어느 날 할머니는 결심을 하고, 물감과 붓, 이젤을 산다. 다들 짐작했을 거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자신의 고향 마을을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걸어 놓는다. 그러면서 날마다 자기 그림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다. 가족들이 찾아오면 그들이 준 그림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그 일을 깜빡하고 가족들이 모두 할머니의 그림을 보게 된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그린 그림임을 알게 되고, 그림을 더 보여 달라고 한다.

이제 앞표지의 그림이 등장한다. 가족들의 요청에 기뻐하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꺼내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당당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 뒷이야기는 할머니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고향인 산 너머 마을도 그리고, 반려묘의 그림도 그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쉬지 않고 그린다. 누군가 와서 자신의 그림을 볼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떠나면 언제나 혼자이기에, 할머니는 날마다 창가에 앉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엠마 할머니는 자기가 좋아하는 곳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어요.]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난다. 이 장면이 그림책 뒤표지 장면이다. 뒤표지와 달리 그림 전체에 색이 들어가 있다. 동일한 장면인데 왜 뒤표지에는 색을 뺐을까? 그렇다. 강조를 위한 것이다. 할머니가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 그림과 하단 고양이 그림에만 색을 두고 나머지 그림에 색을 빼서 이야기의 주제를 강조하고, 그림에서 그림색이 역삼각형을 이루며 중심의 색을 뺀 그림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본문 마지막

이 이야기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 엠마 스턴이라는 화가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다.



외할아버지는 진도에서 한 평생을 사시다가 큰삼촌의 성황에 못 이겨, 제부도로 이사를 왔다. 나는 한동안 제부도 할아버지네에서 지냈는데, 그때 할아버지를 보면서 할아버지에게도 취미 생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 동물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힘에 부쳤는지, 의미를 상실했는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게 할아버지의 일상이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그리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그림책 속 엠마처럼 할아버지도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려갈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외로움은 줄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올 때면 베란다에서 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던 할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이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 집 안으로 들어설 때 “누구쇼?”라고 물으며 나를 알아보고 환해지던 그 모습도 또렷이 기억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외로움을 사라지지 않는 법

노년의 외로움은 마치 인생의 마지막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의 삶에 스며든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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