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
이번에 만날 책은 이현주 작가의 [나무처럼]이다.
표지는 커다란 나무의 몸통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제목과 작가 이름이 적혀 있다. 가지에 단 나뭇잎을 보아 누구나 한눈에 이 나무가 은행나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채 같은 나뭇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어느(이외수) 시인은 은행잎을 ‘인어의 비늘’이라고 했다. 사실 그의 표현을 본 뒤 내 머리에는 은행잎은 부채 모양이 아니라 인어의 비늘 모양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박였다. 늦은 가을, 인어의 노란 비늘이 떨어진 거리를 걷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
나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소나무와 은행나무, 단풍나무의 나뭇잎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다들 그렇게 자부하겠지만 소나무나 단풍나무는 사실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소나무, 단풍나무와 비슷한 나무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나무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야기의 끝에 알려주기로 하겠다. 한번 짐작해 보시라. 은행나무는 가로수나 공원, 아파트 정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가로수에 많이 심어지는데 공해나 추위, 소음에 강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또한 옮겨 심어도 잘 살아 기르기 쉽다.
표지 다음 면지는 어떤 그림이나 디자인 없이 색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면지의 색은 살구빛이 감도는 연한 노랑빛이다. 마치 은행나무의 나뭇잎을 연상시킨다. 은행나무의 몸통 색과도 흡사하다. 그림책은 면지의 색마저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림책 전반적인 분위기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색을 고심해서 고른다.
약표제지 그림에는 트럭에 실려가는 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나무와 트럭을 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도 함께. 자,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은행나무가 그 아파트 단지에 실려와 내리는 모습과 글이 보인다.
[나는 열 살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제목과 달리 이 그림책은 나무가 주인공으로, 말하는 화자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은행나무가 자라서 일층 장미 피아노 교습소에 다다른다. 다음장에는 피아노 학원 아이들이 피아노 창밖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음장에 나무는 열네 살이 되었다. 일층에 머물렀던 나무는 이제 이층 집 아저씨를 만난다. 아저씨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화가 아저씨는 많은 은행나무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은행나무는 화가 아저씨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처음으로 내 모습을 보았어요. 몹시 기쁘고 설렜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그림책은 은행나무가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여 한 층 한 층높이 올라가면서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들을 2바닥 또는 3바닥으로 묶어서 배열하고 있다. 펼침면(2쪽)을 바닥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는 행복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만나고, 홀로 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은행나무가 점점 커가면서 이제 더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날이 늘어간다. 깊은 밤, 나무는 어디까지 자랄지 생각한다. 이 장면은 텍스트를 밤하늘 위에 두고, 나무의 그림을 아래에 두어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옮기며, 글과 그림의 거리감을 통해서 독자에게도 좀 더 오랫동안 그림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 뒤 장면은 나무초리가 나오고 은행나무의 어린잎들이 나무초리에서 돋아나는 그림이다. 나무초리는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끝부분을 말한다. 봄이 되면 은행나무 나무 초리에서는 다 자란 은행잎과 정말 똑같이 생긴 아기 손톱보다도 작은 은행나뭇잎들이 빼곡히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 은행잎의 형태가 다 자란 은행잎과 똑같은 모양이라 놀랍다. 그 앙증맞고 귀여운 어린 은행잎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나는 가을날의 노란 은행잎도 아름답지만 봄에 피어나는 어린 은행잎이 더 생동감 있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다음 봄에는 꼭 은행나무 나무 초리에서 나오는 어린 은행잎을 꼭 보길 바란다.
아마 성인인 우리는 대부분 나무의 명칭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나무의 명칭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먼저 나무는 땅 속 아래에서 자라는 부분을 뿌리라고 부른다. 그 위에 올라와서 높게 자라는 부분을 줄기라 부르고, 줄기가 땅과 맞닿은 부분을 밑동이라고 부른다. 줄기에서 가는 가지가 나온다. 가지에서는 나뭇잎이 달린다. 그리고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끝부분은 나무초리. 여기까지는 쉽게 아는 부분이다. 혹시 나무 꼭대기 줄기를 지칭하는 이름을 알고 있는가? 아마 그곳의 명칭까지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그곳은 우듬지라고 한다.
우듬지는 우리가 나무 그림을 그릴 때 빼놓지 않고 그리는 부분 중 하나이다. 우듬지를 그려야 균형 잡힌 나무를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듬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언젠가 우듬지를 연구하는 학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듬지를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데, 그들이 우듬지에 사는 곤충과 주변 환경들을 조사하는 다양한 일들을 해서 더욱 신기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우듬지는 나무에 있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기이다. 나무를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래 가지들을 제멋대로 자라는 것을 막고, 일정한 수형을 만들도록 돕는다.
그림책의 마지막은 오래된 아파트 너머에서 자신과 비슷한 키의 은행나무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주인공이 다른 나무가 아닌 은행나무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작가가 은행나무가 생물 분류에서 1속, 1종의 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은행나무가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여서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었을 것 같다. 앞에서 질문한 것처럼 우리는 확실히 은행나무를 구분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은행나무가 친척이나 형제 나무가 없는 오직 혼자인 외로운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은행나무여서 좋다. 지구 한가운데 자신과 닮은 나무가 없는 외로운 나무, 그런 존재가 창문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모습이 더욱 따듯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과 똑같은 은행나무들을 만나서 외로운 은행나무가 더는 외롭지 않고,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연상되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나무처럼]이다. 나무가 화자인데, 제목은 나무처럼이다. 왜 이런 제목을 지은 걸일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림책 본문으로 돌아가 다시 나무의 인생을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은행나무가 만난 인물들을 살펴보자. 먼저 피아노 학원에서 자기처럼 어린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림에 열정을 가진 화가 아저씨를 만난다. 그리고 가족을 만나고, 홀로 사는 할머니를 만난다. 인간의 유년기, 성장기, 장년기, 노년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는 나무의 삶 역시 인간의 삶과 같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무를 통해 인간의 삶을 보여준 것일까? 어쩌면 우리에게 나무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무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주는지 모르겠다.
[내 가지를 다듬을 때면 아파서 기운이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참 신기했어요. 가지를 자를수록 키는 더 쑥쑥 자랐거든요.]
나무나 사람이나 모두의 인생에는 아픔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 누구나 아픔이 없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아픔을 겪어야 행복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나무는 상처가 나면 나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상처가 난 부위를 덧씌우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나무처럼 우리 역시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