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자라는 빌딩(윤강미 지음/ 창비)
요즘 한국에는 조물주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지 않을까 싶다. 조물주보다 더 전능한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바로 건물주다. 건물주의 힘이 얼마나 크면 이런 웃픈 얘기가 나왔을까 싶기도 하면서 우리는 모두 조물주보다 몇 수 위인 건물주가 되길 꿈꾼다. 돈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어린 자식들을 건물주로 만들어 그들을 마치 조물주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한 부모들은 얼마나 씁쓸할까.
여기 빌딩이 있다. 그런데 빌딩 건물주가 어린 소녀이다. 그리고 그 빌딩은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상가나 학원 등이 들어선 것이 아니고 나무가 자라는 빌딩을 만들려고 한다. 윤강미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빌딩] 이야기이다.
[나무가 자라는 빌딩] 표지에는 앞표지에는 나무가 풍성히 자라는 빌딩들을 색을 넣어 그린 그림으로, 뒤표지에는 연필로 소묘한 빌딩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보통 그림책은 앞표지에서 이야기의 전 그림이나 사건의 시작 그림이 많이 그려지고, 뒤표지에 이야기 이후나 결말, 사건 해결 장면을 많이 그리는데, 이 그림책의 표지는 반대로 그려졌다.
면지는 거대한 숲이 개발되는 공사장 모습이 보이고, 뒤로는 높은 아파트들이 들어선 모습이다. 표제지에서는 시선이 뒤로 가서 높은 아파트만 보인다.
본문의 시작은 창문을 통해 아파트가 건설되는 모습을 구경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는 아직 어린데 그 또래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보통 아이의 방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와 같은 장난감이나 인형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아이의 방에는 여러 화분들과 두 개의 물조리개, 그리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와 같은 미술 도구들이 보인다.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휴! 오늘도 공기가 안 좋네. 또 집 안에서만 놀아야 하는 거야? 음, 그림이나 그려 볼까?]
글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니 밖이 미세먼지가 가득한 뿌였다는 사실이 이제 보인다. 그리고 아이의 방에 많은 식물 화분이 놓인 이유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듯 그림책은 글과 그림을 오가면 여러 차례 읽을수록 많은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성인과 같이 글에 익숙한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림을 먼저 읽고 글을 나중에 읽어야만 더욱 그림을 꼼꼼히 볼 수 있는데, 이미 문자 학습에 길들여지면 나이를 떠나 그림보다는 글만 읽게 된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앵글이 어느새 소녀의 스케치북 안으로 들어가서 소녀는 짓는 건물들이 완성되는 모습을 여러 컷의 건물 그림으로 보여준다. [일 층, 이 층, 삼 층.] 여기까지 읽고 “뭐야? 진짜 건물주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네.” 하며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는 말한다. 이 빌딩은 다른 건물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마법사의 꽃이 자라는 놀이터라고.
그림에서는 빌딩에서 자라는 여러 식물들을 보여준다. 파랑 빌딩 속 빨강, 노랑, 초록빛의 식물들. 그리고 그 식물들 사이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건물주 소녀의 모습도 함께 보인다.
소녀는 그 빌딩에서 꽃이 어떻게 피어나는지 지켜보며 이름을 지어 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로 끝내지 않고 나무가 자라는 자신만의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맑은 공기를 뿜어내는 식물 연구소를 세우고, 커다란 온실을 만들어 동물들이 따듯하게 지낼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읽고 독자는 역시 아이답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황당하고 허풍스러운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현실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에 얼굴이 알려진 청년 농부나 어린 환경운동가를 보면 어른인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지 않는가. 나이를 먹는다고 꼭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아마 중년 이후의 삶은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달라질 뿐 사고는 여전히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소녀의 꿈처럼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살아가면서 자연환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다행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좀 더 자연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2020년 우리는 새로운 바이러스로 삶이 급격하게 변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가 이런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해졌고, 인간의 누릴 수 있는 호사를 우리는 누리고 살았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 보니 많은 환경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가 과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인정을 하면서도 지금의 삶을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경제가 멈추니 자연환경이 달라졌다. 그 많던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맑은 하늘이 보이고, 사라졌다고 여겼던 동물들이 사람이 사는 거리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든 일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수질이 개선되면서 수많은 해파리가 보이고, 인도에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홍학 떼가 등장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내가 죽기 전에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 기사를 보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달려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 이야기의 후반부는 자신이 살 집을 짓는 소녀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식물을 키우는 집, 동네 사람들이 편히 놀러 올 수 있게 방이 많은 집, 길고양이가 지낼 집, 누구나 맛있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는 집,
[마지막으로 꽃과 나무를 심으면…….]
그리고 꽃과 나무를 심어 나무가 자라는 빌딩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 그림은 책날개를 위쪽으로 붙여서 빌딩의 모습을 크게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꽃과 나무라는 말을 잘 쓴다. 이 말은 풀과 나무를 뜻한다. 꽃은 풀이나 나무에 모두 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초본류인 풀보다는 꽃으로 풀과 나무를 분류한다. ‘풀’이라는 단어보다 ‘꽃’이라는 단어가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 같다. ‘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한결같이 초록색으로 된 것, 작고 화려하지 않은 꽃을 피우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고 화려하지 않은 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들을 피우는지는 가까이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른다. 또한, 작약, 국화, 튤립, 붓꽃 등 크고 화려한 꽃 역시 풀꽃들이다.
소녀가 꿈꾸는 동네는 식물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길고양이와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편히 놀 수 있는 동네를 꿈꾸고 있다. 얼마나 환상적인 꿈인가? 얼마나 많은 성인이 이런 꿈을 꿀 수 있을까?
도시에서 숲을 만들고 동식물과 공존하려면 인간이 포기해야 할 것들 많다. 그림책 소녀가 꿈꾸는 세상은 냉정히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우리가 누리는 편한 것들은 그대로 누리면서 아름다운 것, 자연스러운 것들을 모두 영위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포기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영리하거나 열정이 많아서기보다 욕심이 많아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책의 그림 형태와 색감을 선호하지 않는다. 빌딩이어서 그림의 한계가 있었겠지만 형태가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가득하고, 그림책을 가득 채운 직선이 답답함을 일으켰다. 원색에 가까운 색상과 빨강, 파랑, 노랑의 색상이 주를 이루고, 채도가 낮아 탁해 보이는 그림이라 나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림책은 그림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그림 스타일과 이야기의 그림책을 선호하고 그런 부류로만 책을 읽게 된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도 숲의 다양성을 인정하듯 다양성을 존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그림도 자주 접하다 보면 눈에 익어서 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