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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Apr 10. 2021

지금이 딱이야

-최은숙 시집

오랜만에 최은숙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주소 좀 보내줘."

시집이 나왔다며 시집을 보내주신다고 했다. 


최 선생님과는 2014년 [글을낳는집] 문학관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복직을 앞두고 마지막 여름방학을 알차게 글 쓰는데 보내려고 문학관에 신청했다. 최 선생님과는 별채에서 단 둘이 한 달을 머물렀다. 학교 교사라는 공통점과 시골 출신, 좋아하는 것들의 취향이 비슷해서인지 우린 정말 잘 통했다. 

열심히 글을 쓰리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선생님과 친해지자 매일 산책하고 수다를 떨며 신나게 놀았다. [글을낳는집] 문학관은 담양에 있는데, 문학관 주변 동네를 매일 산책하며 이것저것 재미난 일을 많이 접했다. 깨를 떠는 할머니를 도와 깨도 떨고, 호박꽃 속에서 잠자고 있는 청개구리도 발견하고, 감잎이 눈에 좋다고 해서 감잎을 따서 눈에 올리며 자기도 했다. 

최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시며 감탄하는 일이 잦았는데, 나는 선생님을 보면서 가까운 지인이 떠올랐다. 그 지인은 오랫동안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산책 동무였는데, 다른 사람 말이나 무슨 일이든지 감동을 정말 잘하는 친구였다. 

"선배, 정말 감동이다. 감동이지 않아?"

그 친구는 늘 그랬다. 나는 속으로는 감동했지만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응. 그래." 하고 수긍하는 정도로 표현한다. 최 선생님도 그랬다. 정말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동하는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두 사람 모두 에세이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 

나는 이들보다는 좀 더 분석적인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 접했을 때 정서적 변화를 표현하기보다는 원인과 방법, 해결법 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래서 에세이 쓰기가 어렵나 보다. 


어제 선생님의 책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우체통에 우편물이 꽂힌 장면을 보니 기분이 들떴다. 요즘 우편물을 이메일이나 문자로 받다 보니 우편물이 오는 일도 많이 드물었다. 대문 우체통이 제 할 일을 잃은 것만 같아 가끔은 쓸쓸해 보였다. 

책을 받자마자 마당에 서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시 안에 선생님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고, 그 모습이 그려졌다.


[선생님은 우리한테 딱이야] 중에서 부분 정리한 내용이다.

지각하는 아이를 세워 놓지 않는 선생님, 

우리가 졸면 오 분간 재워 주시는 선생님,

학교 오기 싫어서 결근했다고 하는 선생님,

우리보다 쪼금 더 알아서 우리를 가르친다는 선생님,

우리한테 딱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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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는 선생님의 일상을 솔직히 보여주신다. 자신도 종종 지각을 하니 지각하는 아이를 세워 놓지 않고, 아이들과 같이 졸고, 아이들에게 배우는 최 선생님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렸다. 현직교사가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 솔직히 써나가기도 쉽지 않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잘 하지 않아서 잘했다]였다.


잘 쓰려고 안 해서 잘 썼다는 말, 이 말이 참 좋다.

선생님의 시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 보이기 위해 잘 쓰려고 노력해서 쓴 시가 아니다. 선생님의 삶이, 함께하는 아이들이,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들어있는 시다. 나는 평론가들이 분석해서 상징성을 찾아 좋은 시라고 말하는 어려운 시가 아니라 이렇게 삶이 묻어나는 시와 글이 좋다. 


오랜만에 선생님 덕분에 좋은 시를 읽었다. 두고두고 여러 차례 읽어야겠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로또와도 같다. 하지만 그 인연을 계속 소중하게 지키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다. 그 인연을 지키는 일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그러기에 지금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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