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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황초현 Mar 23. 2022

여장 남자, 남장 여자

출생의 비밀 코드




아주 가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조금은 있겠지요.

치장이나 변장으로 겉모습을 바꾸며 즐기는 코스프레가 인기 있는 것도,

소설, 만화, 드라마나 영화 속 남장여자나 여장남자가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특히, 출생의 비밀처럼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은 ‘남장 여자’는

극적인 전개를 위한 소재로 끊임없이 등장해왔습니다.     

남성처럼 꾸민 여성의 묘한 매력, 아슬아슬한 상황묘사가

극적인 긴장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요.     


취직을 위해, 자기 때문에 다친 선수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혹은, 쌍둥이 오빠 때문에...

이렇게, 그들은 남장을 해야할만한 사정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여주인공 역시

어린 시절부터 오갈 데 없는 자신를 위해 생계형 남장을 한 인물로서

내시가 된다는 설정이었는데요,

현실에서는 어려운 극단적인 선택이

극 속에선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대리만족을 주는게

사람들 마음을 끄는 비결이었을 겁니다.


남장 여자이기에 보여지는 행동들이 사랑의 장애요소가 되면서

비밀이 탄로 날까봐 조마조마한 재미를 주고,

사극일 경우,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던 시대였기에 남장을 해야 했던

조선최초 여류소리꾼 이야기에서처럼,

당시의 억압된 시대상을 극에서나마 해소해주기도 합니다.     


남장 여자의 원조로 꼽히는 작품 가운데,

프랑스대혁명 배경의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주인공 세 사람 중 역사 속 실존인물인 두 명 외에

유일하게 작가가 창조한 인물, 오스칼은 금발의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대대로 왕가의 군대를 지휘하는 유서 깊은 집안의 막내딸로

금발의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남자로 살 수밖에 없는 고뇌를 간직한

인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지금까지 흥행코드로 이어지고 있지요.

     

금지된 삶을 누려보는 대리만족...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상상 속 즐거움...!

남장 여자, 여장 남자 코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재미 요소겠지요?!

추억 속,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시나요.          




        

프랑스 루이 15세 때 관리였던 에온(eon)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한 사람이어서

남장을 하거나, 여장을 했고,

덕분에 자신과 다른 성의 옷을 입고 싶어하는 현상을 주로 가리키는 말-

에오니즘이 생겨났다고 하는데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성이 아닌 반대의 성을 갖고 싶어 하거나

추구하는 성향은 늘 존재했습니다.     


특히 신화나 종교에 나타난 남녀의 옷 바꿔 입기 의식은

한쪽의 성을 보완하는 의미를 지녔는데,

남자가 여자의, 혹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으면

남자이면서 여자인 양성적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에 대한 하나의 의식이자 폴리스의 공식 행사였던

고대 그리스의 극에선 종교적 금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의 역할을 담당했고

이 전통은 후세까지 이어져

셰익스피어극에서도 남성이 여자 역을 하지요.


또, 이탈리아 오페라에선 변성기 전에 거세한 남자 가수가

여자 역할을 노래하고

일본의 가부키에선 여자 배역을 맡은 남자 배우가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환관들 역시

거세에 의해 남성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중성화된 음성과 동작을 보이는 것 또한 여장 남자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요,


일반 서민들의 민속신앙을 봐도

몸이 약한 남자 아이에게 여장을 해주면

귀신을 몰아내고 무병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남자아이에게 여자 옷을 입혀 키우던 시대가 있었으니,

남장 여자의 역사 또한 짧지는 않네요.     


서민들의 풍속으로 보자면,

고대 그리스에서도

종교의식과 결혼 풍습에 신랑신부가 옷을 바꿔 입는 관습이 퍼져있었는데

신부가 첫날밤 남장을 한 채 신방에 눕거나

신랑이 여장을 한 채 신부를 맞고, 혹은 초야에 신부가 가짜 수염을 붙이고 남자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뿐만 아니라 유럽, 인도, 페르시아, 아시아까지...

나라와 인종에 관계없이 존재했습니다.     

샤머니즘으로 보면

우랄알타이권의 추크치족은 남자 샤먼이 여장을 하고

우리 민속신앙의 남자 무속인 박수 또한 굿을 할 때, 여자 버선 발과 치마를 입는 여장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이밖에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성 역할 바꾸기와 복장전환으로

‘변화된 사람’을 뜻하는 ‘베르다체’를 기쁘게 생각했다니

남장 여자, 혹은 여장 남자를

자유나 해방 의식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남성과 여성을 영혼에 합하면 마치 신처럼 초인이 될 것만 같은

조금은 허황된 갈망 또한 담겨 있는 듯한데요,

그래서...

이 지구상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남장여자’나 ‘여장남자’도 끊임없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in 산티아고 by 방송작가 황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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