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칭찬하기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이 지구의 동물들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한 편의 충격적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각자에게 한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번 다녀오는 것....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하는데 기타 줄이 끊어져서.. 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아무도 성지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후 독일군이 쳐들어왔고
집단수용소로 끌려간 그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사람들은
발가벗기운 채 가스실로 향하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떠나지 않았어.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기타줄이 없으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는데...”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영화가 끝이 났다.
....
영화관을 나온 뒤 난 곧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1주일 뒤 밤 열두시에 인도 뭄바이 공항에 내렸다.
지구상의 동물 중에 미루는 걸 발명(?)한 건 인간 뿐...
그렇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들도 미루지 않는다.
꽃들도 때가 되면 질 줄 알고,
씨앗 안에 생명을 품었다가 다시 피어난다.
나무도 때가 되면
모든 걸 비울 줄 알고,
봄, 가장 적절한 때에 잎을 틔운다.
'오늘은 귀찮으니 내일 하자...'
이렇게 미루지 않는다.
오늘.
무얼 미뤘는지
무얼 그냥 덮어버렸는지
한번쯤 뒤돌아보되
자책하지는 말자.
내일은 더 잘 할 거야.
수고했어. 잘 했어.
오늘도 스스로
칭찬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