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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송작가 황초현 Jul 03. 2018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평화로운 지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누군가를 파단하는 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사람 왜 저래?!
저게 뭐야!
참 한심하군... 등등...

그런데,
좀 더 깊이 내면을 관찰해보면,

내 잣대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못마땅해 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나와 남을 분리하는 마음,
내가 옳다는 마음,
내가 우위에 있다는 마음,
나는 '안다'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가장 깊은 속에서 습관처럼 판단하며 
상대는 틀리고,  나보다 못하고,  내가 더 잘 안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가 보입니다.

그는 그저 나와 다를 뿐입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  책 읽기.
     -몸 건강, 마음 건강으로 행복찾기-     (저자: 송명희)



 p.96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약사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많은 환자들과 만나고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 해 왔다. 

초창기 약사 시절에는 겉으로 드러난 질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질병의 근원적인 치료는 육체적인 치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치유까지 포함한다. 

정신적인 치유란 무엇일까? 합일이다.
합일의 상태가 되어 내면에서 근원의 에너지를 퍼 올려 쓸 수 있어야 가능하다. 
치유자는 그 길을 인도하며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유자가 먼저 그러한 상태가 되어있어야 한다. 
에너지 근원과 연결이 되어있어야 한다. 
치유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합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합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와 자기 자신의 경계를 없애야 한다. 
‘무경계’가 떠올랐다.
‘무경계’란 경계가 없어진, 공의 상태에서 ‘하나 됨’인데, 에고가 사라진 상태에서 참나와 만나는 경지이다.


심리학자인 융의 비유를 빌리자면 
우리들을 바다에 떠있는 빙산에 비유할 수 있다
전체 우주의 모습이 바다이고 우리 각자가 빙산이라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빙산에 해당하는데, 빙산의 형체를 갖춘 것이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빙산 중 물 위로 올라와 있는 부분이 현재 의식에 해당하고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은 잠재의식이다



우주 전체인 바닷물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데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집단 무의식’ 
양자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양자 포텐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불교에서는 불성이라고 한다
작은 나인 에고에 대비해 참나로 표현할 수 있다


빙산의 비유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계가 없어야 하나로 녹아든 합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초 양자 포텐셜에 해당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내 것으로 끌어다 쓸 수 있다. 
빙산도 물이고 바닷물도 물이지만, 경계를 짓고 빙산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 개별 존재로 분리된 상태이다. 

경계가 없어질수록 내가 바닷물이고 바닷물이 나이니, 우주와 교집합이 높아진다. 
우주와 교집합이 커지면 근원으로부터 무한 에너지를 전달 받는 통로가 커진다.
 이때는 다른 사람의 부정 파동에너지도 어렵지 않게 지워줄 수 있고 긍정 에너지를 전달 할 수도 있다. 

누구나 빙산처럼 자신만의 경계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본인이 둘러쳐놓은 두꺼운 껍질에 쌓여서 그 껍질이 벗겨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에고의 욕구들이 경계를 두텁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나를 분리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경계를 짓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경계를 녹여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있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는 ‘
상대방에 대한 관찰과 판단’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판단을 내려놓고 관찰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내리는 판단은 분리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경계를 두텁게 한다. 
반면 판단과 달리 경계를 만들지 않는 행위가 관찰이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그만두고 관찰을 하게 되면, 그 경계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꽃을 좋아하는구나.”
“저 사람은 열정이 있구나.”
“저 사람은 생각이 아직 어리구나.”
“저 사람은 인색하구나.”
  
관찰은 
상대방을 알고 그에 맞춰 관계를 해나가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항이다.

판단이란 무엇일까? 
판단이란 관찰 위에 시시비비를 가려서, 좋고 나쁨을 추가하고 우등과 열등의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상대방이 인색하거나 도덕관념이 부족한 것을 보고 나쁘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꽃을 좋아하고  열정 있는 점에 대해서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판단이다. 
내가 상대방의 평가를 내리는 것이 판단이다. 


인색한 상대방이 평생 가난에 찌들어 빈곤의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온 것을 알게 된다면,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의식 수준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유치원생과 대학생의 차이처럼 
서로 다른 것일 뿐, 
열등과 우등의 차이가 아님도 알 수 있다. 

유치원생도 앞으로 성장해갈 테니 말이다. 


우리의 시야를 확장하면 상대방의 태도에 대해서 인과관계를 알 수 있고, 
거기에 대해서 싫고 좋고, 옳고 그름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판단은 전지의 시각을 가진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판단과 관찰의 개념을 새로이 알게 되면, 
대부분이 습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판단을 빼고 관찰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만들어져 있고,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경계를 허물어뜨려 
무경계로 가기 위한 방법이 ‘
관찰하기’이다. 



판단을 멈추고 관찰이 몸에 익어 시야가 바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판단을 없애버린 시각과 변화된 의식이 나의 경계부터 무너뜨린다.
 나와 남을 가르던 분리의 담이 사라지는 것이다. 


상대방을 판단하던 잣대는 사회로부터 주입되고 세뇌되어 

나에게 먼저 적용해오던 척도이다. 
그 척도로부터 내가 먼저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정죄하면서 죄책감에 빠지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판단이 빠지고 관찰에 의해서만 만나게 되는 있는 그대로의 너, 있는 그대로의 나! 
상대방에게 굴레를 씌우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때, 느낄 수 있는 자유이다. 







자연은
상대를 탓하지 않습니다.
정말 작은 들꽃들도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 자신을 꽃피울 뿐.

저기 저 꽃은 빛깔이 왜 저래~
쟤는 왜 저렇게 잘난 척 하는 거야~
그렇게 판단하지 않지요.

서로 인정하며
함께 피어있을 뿐입니다.

나무들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잎을 틔우고,
새들에게 그늘을, 열매를,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줄 뿐입니다.
                                                                                                                                                                                              

움직일 수 없다고 불평하지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지요.

나무를, 새를, 꽃을...
자연을...
그들의 평화로운 지혜를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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