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양가 부모님께 여행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여행이 아니라 직장과 일상을 내려놓고 가는 긴 여정이었기에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와이프가 처가댁에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모님, 장인어른 모두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스타일이시지만, 아무래도 딸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장인어른의 반응이 걱정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양가 부모님 모두 이해하고 응원해 주실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아빠 반응이 걱정 돼. 화내시면 어떡하지? 우리 그냥 휴직하고 떠난다고 하자!"
"어차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인생이야. 부모님께서 대신 살아주실 수 없어."
몇 번이고 반복된 와이프의 말에 저는 살짝 강하게 말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말했지만 '너무 강하게 말했나'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마음속 깊이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결혼을 허락받았습니다. 지금 이 결정도 그 행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지만, 단기로 보기에는 충분히 걱정스러워 보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조금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저희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가깝게 사실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꽤 독립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살면서 몇 번 이런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으셨습니다. 제가 먼저 의논드리고 결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큰 결정을 할 때마다 혼자서는 정말 깊게 고민하지만 부모님께는 잘 논의드리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첫 직장에 취업할 때까지, 부모님이 정한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이젠 스스로 결정한 길로만 걷고 싶다는 반항심이 아직 남아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제 삶은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부모님의 서운함을 외면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인데 왜 모를까요. 자식이 아무리 독립적이고 스스로 책임감이 강해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미리 의논해주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그저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것에 서툰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책임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결정 후에 가장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족 관계에 늘 정답은 없는 듯했습니다.
많이 걱정하셨지만,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을 말씀 주시면서 현실적인 조언을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살짝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을 아무래도 접기 힘드신 것 같았습니다.
"아휴! 도대체 왜 안정적인 직장을 놔두고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하니?"
조금 더 안정적인 삶,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
그런 삶을 죽을 때까지 계속 살 수 있다면 아마 부모님 말씀대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삶은 보장되지 않고, 그때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너무 늦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삶에서 도피하고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와 꿈을 찾고 싶어서 떠나는 벗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조금 더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간다는 내용보다는 그곳에 왜 가려고 하는지와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설명드리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 더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말씀드리기 위해 맛있는 브런치를 사드리면서 말씀드린 것은 저만의 애정과 배려였습니다.
"우린 부모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사돈댁을 볼 낯이 없다. 며늘아 괜찮니?"
대화를 마무리하며 어머니가 던지신 한 마디가 제 속에 숨어있는 걱정을 툭 건드렸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 앞에서는 걱정이 없는 척했지만, 아무래도 처가댁에서 안 좋은 반응이 나올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늘 저희가 하는 일을 응원해 주시는 장모님, 장인어른이시기에 더욱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마침 연휴가 겹쳐서 처가댁에 가서 며칠 지내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고, 무거운 마음을 들고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마치 처음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가던 그 마음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얼굴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처가댁에서 늘 그렇듯 맛있는 것 먹고, 푹 쉬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좋으면서 걱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직장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상대방과 성격 혹은 가치관이 어긋나면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족의 존재란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다가올지 모르는 갈등이 더욱 걱정되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장모님, 장인어른과 함께 등산을 하고 삼채비빔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장인어른이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너네 내년에 해외여행 길게 다녀온다며?"
"?!?!"
저와 와이프는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말을 한 것이냐는 눈빛으로 말입니다. 저희는 당황한 채로 범인을 찾아 나섰고, 알고 보니 저희 아들이 장인어른과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세계 여행은 아무렇지 않게 공개되었고, 자연스럽게 삼채비빔밥과 함께 버무려졌습니다.
그동안의 걱정이 솜사탕처럼 녹았고, 처가댁에서 오히려 응원을 받고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결정이고, 바꿀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족의 응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비록 부족한 제가 먼저 논의드리고 결정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응원으로 저흴 품어주신 양가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도 다시 여행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