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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다시 묻다.

by 부자백수

인생의 목적과 의미: 나를 찾아가는 여정


인생의 목적과 의미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게 아니라, 삶의 굴곡을 지나며 내 안에서 서서히 자라난 씨앗이었다. 나는 20년차 개발자다. 코드와 시스템 속에서 20년을 보내며 잘난 줄 알고 살았다. 그러다 호되게 넘어졌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니,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부터 하나씩, 천천히 다시 올라가고 있다. 이제 "인생 2라운드"를 준비하며, 나는 왜 사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탐구이자, 어쩌면 당신에게도 작은 울림이 될 이야기다.


인생의 목적: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축


인생의 목적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나침반이다. 개발자로 살면서 나는 목표(Goal)에는 익숙했다. "이 프로젝트를 끝낸다", "기술을 익힌다" 같은 구체적인 과제는 늘 명확했다. 하지만 목적(Purpose)은 달랐다.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잘난 줄 알던 시절, 나는 외부의 인정과 성취가 목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넘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런 것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 뿐, 뿌리 깊은 줄기는 아니었다.


목적을 찾는 건 나를 마주하는 작업이다. INFP로서 나는 세상이 무의식적으로 심어놓은 프레임—"성공은 돈과 지위다" 같은 틀—에 소심하게 저항해왔다. 남들처럼 화려한 삶을 꿈꾸기보다는, 내 안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축"이라는 개념이다. 감정의 파도—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가 몰아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내면의 기둥. 이 축을 세우는 게 바로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는 진정한 의미 아닐까?


예를 들어, 내가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는 목적을 정한다면, 실패나 좌절이 와도 "그래도 이 길을 가야 해"라는 중심이 생긴다. 개발자로서 버그와 데드라인에 치일 때도, 그 축이 나를 지탱해준다. 이건 단순히 "뭘 할까"라는 목표가 아니라, "어떻게 나로 살아갈까"라는 존재의 뿌리다. 목적은 고정된 답이 아니라 여정 속에서 발견된다. 넘어진 뒤 다시 일어서며, 나는 이 축을 조금씩 단단히 세우고 있다.


인생의 의미: 모든 경험을 포용하며 성장하기


인생의 의미는 목적과 다르게 "과정"에서 피어난다. 밑바닥에 있을 때, 나는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다. 잘나가던 시절의 자만, 동료들의 인정, 안정된 삶—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깨달은 건, 기쁨과 슬픔을 포함한 모든 경험이 나를 다채롭고 깊이 있는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는 사실이었다. 철학에 투자하며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아픔은 내게 뭘 남겼을까?" 답은 단순했다. 회복력, 겸손, 그리고 나를 다시 바라보는 용기.


모든 경험을 포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슬픔이 밀려올 때, 우리는 도망치거나 억압하고 싶어 한다. 나도 그랬다. 넘어진 뒤 한동안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원망에 빠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태도를 바꿨다. "이것도 나의 일부야"라고 받아들이자, 그 아픔이 나를 무너뜨리는 대신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가 됐다. 예를 들어, 실패한 프로젝트는 "나는 완벽하지 않아"라는 어둠을 보여줬지만, 그걸 통해 "그래도 다시 해볼 수 있어"라는 밝음을 발견했다.

이 과정을 포용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길이다.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복잡계 인생에 정답은 없고, 내가 정한 해답만 있다. 밑바닥에서 올라오며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뭔가"를 알아갔다. 자유, 따뜻함,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걷는 삶. 이 깨달음이 내 인생에 의미를 더해줬다.


감정의 스펙트럼과 차원의 높이


감정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편이었다. 기쁠 땐 세상이 완벽해 보였고, 괴로울 땐 모든 게 끝난 듯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중심을 잡기 힘들다. 반면 초연한 사람은 감정을 관찰하며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스펙트럼을 "차원"으로 본다. 민감한 사람이 낮은 차원이라면, 초연한 사람은 높은 차원에 있다.

하지만 이 차원은 타고난 기질에 얽매인다. 나는 INFP로서 감정에 예민하고, 넘어진 뒤에도 그 흔들림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뇌의 편도체가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훈련된 탓이다. 높은 차원으로 가고 싶어도, 이 기질이 발목을 붙잡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억지로 초연해지려 하기보다, 작은 관찰부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괴롭구나" 하고 한 발 물러서 보는 연습. 이 작은 습관이 중심을 잡는 첫걸음이 됐다.


목적과 의미의 조화: 자아실현으로의 길


목적과 의미는 서로를 보완한다.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축(목적)이 단단해야 모든 경험을 포용(의미)할 수 있다. 반대로, 경험을 포용하며 성장하면 그 축이 더 강해진다. 나는 이 조화가 진정한 자아실현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자아실현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나로 살아가는 충만함이다.

예를 들어, "세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을 세웠다. 이 축이 있으니, 힘든 날에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잊지 않는다. 동시에 실패와 좌절을 포용하며 "이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어"라는 의미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나"가 된다. 개발자로서,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넘어져도 일어서는 사람으로서.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서 끝나는 여정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틀은 세상이 심은 프레임일 뿐이다. 답은 내가 정한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도, 오롯이 평가할 사람도 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서 끝난다. 넘어진 뒤 다시 일어서며, 나는 이 진리를 깨달았다. 인생 2라운드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 모른다. 하지만 철학을 투자하며, 나를 마주하고, 내면의 축을 세우는 이 여정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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