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뇌,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대하여
마음이란 게 꼭 파도치는 바다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잔잔한 날이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도 있죠. 특히 돈의 문제가 얽힌 투자의 세계에서 우리 마음속 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곤 합니다.
계좌의 숫자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그때 살 걸, 그때 팔 걸' 하는 후회가 밤새 이불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걸 그저 '멘탈이 약해서'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우리가 겪는 감정의 파고가 너무나 생생하고 강력합니다.
이 지독한 마음의 파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까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부자 됩니다' 같은 외침 대신,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슬쩍 엿보며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스스로를 이해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뇌과학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문장이 있습니다.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
Neurons that fire together, wire together.
아무도 다니지 않던 숲에 한 사람이 지나가면 희미한 흔적이 남습니다. 그 길로 열 사람이, 백 사람이 계속 지나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풀이 쓰러지고 땅이 다져져 어느새 뚜렷한 오솔길이 생겨납니다.
우리 뇌의 생각 회로도 똑같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반복하면, 그와 관련된 뇌세포(뉴런)들이 함께 활성화되면서 서로 단단하게 이어집니다. 처음엔 희미했던 흔적이 점점 넓고 빠른 신경 고속도로가 되는 것이죠.
이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의 뇌는 크게 두 가지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벌어야 해!"라는 절박함, 손실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나만 뒤처질 것 같은 FOMO. 이런 감정들은 우리 뇌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를 시끄럽게 울리게 만듭니다. 맹수를 만난 원시인처럼, 뇌는 생존 모드에 돌입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의 스위치를 내려버리죠.
이 길을 반복해서 걸으면 어떻게 될까요? 주가 하락이라는 자극은 어느새 생존 위협이라는 공포와 한 묶음이 되어버립니다. HTS를 켜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는 길이 뇌 속에 단단하게 포장되는 겁니다. 이 길 위에서는 냉철한 분석 대신, 공포에 쫓긴 패닉 셀링과 탐욕에 눈먼 추격 매수를 반복하게 될 뿐입니다.
반면, 우리가 평생의 과제로 삼아야 할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시장의 등락을 맹수의 습격이 아닌, 그저 밀물과 썰물처럼 바라보는 길입니다. 이 길 위에서 편도체는 잠잠하고, 뇌는 비로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마치 아이가 수천 번 넘어지면서도 두려움 없이 자전거를 배우듯, 실수를 성장의 일부로 여기는 넉넉함이 깃든 길이죠.
이 길을 걷는 뇌에서는 시장의 변동성이 '인내심', '원칙', '기회'와 같은 단어들과 손을 잡습니다.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세상을 차분히 관찰하는 지혜가 조금씩 자라납니다.
돈을 좇으면 돈이 도망가고, 돈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된다는 말처럼 돈을 제대로 벌기 위해서는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사적인 마음이 돈을 잃는 뇌 회로를 강화시키고 오히려 결과에 초연하게 과정에 집중하는 마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돈에 국한되지 않고, 인생의 많은 영역에서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이기도 합니다. 내려놓음은執着(집착)을 버리고, 결과에 대한 과도한 염려를 덜어내는 과정에서 오는 자유와 몰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려놓음과 무관심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내려놓음이란 꾸준히 루틴을 해내며 결과에 초연한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활을 당기되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지에는 집착하지 않는 궁수처럼 말이죠. 반면 무관심은 아예 활을 당길 생각도 없고, 어디에 뒀는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투자를 넘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진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받으려 애쓸수록 관계가 어그러지고, 행복을 좇을수록 불행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새로 낼 수 있을까요?
누군가 그려놓은 보물지도가 아니라, 내가 직접 세상을 탐험하며 만드는 나만의 투자철학 말입니다. 이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투자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나는 투자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할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나의 태생적 한계를 꾸준히 파헤치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기법들을 내재화해서 체화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지도가 있다면, 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나의 원칙은 이것이다'라는 생각의 축이,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여러분을 지켜줄 겁니다.
시장을 매일 들여다보는 것은, 미래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파도에 내 마음을 익숙하게 만들어, 사소한 너울에 놀라지 않도록 훈련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위협이 일상이 되면, 뇌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나의 지도를 굳게 믿는 확신과, 언제든 지도를 수정할 수 있는 겸손 사이의 균형. 냉철한 데이터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직관 사이의 균형.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야말로 우리를 성숙한 투자자로, 그리고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투자의 길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느끼게 되는 수많은 태생적 한계를 시장이라는 무자비한 거울을 통해 비춰보게 됩니다. 시장은 우리의 탐욕, 공포, 조급함, 오만함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그 대가는 때로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죠. 시장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정말 누구인가? 위기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성공했을 때는 또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그 답변이 손익계산서에 고스란히 기록됩니다. 위선이나 변명이 통하지 않는, 가장 날것의 진실과 마주하는 공간입니다. 그렇게 보면 투자는 나의 본질과 투자의 본질을 배우고 깨달으며 나의 그릇을 꾸준히 키워나가는 인격완성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투자는 숫자를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길을 닦아나가는 긴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의 뇌는 어떤 길을 새로 내고 있나요? 그 길 위에서 부디 편안하게 지켜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단 한 발자국이라도 고요한 길로 내디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