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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ocado Apr 11. 2021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로 봐"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5장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4장: 이제 겨우 한걸음 내디딘 설계 쟁이의 걸음마, 뒤에



  어느덧 일 년이 지나고 2년 차에 접어드니 드디어 내게도 후배가 들어왔다. 어찌나 기쁘던지 더불어 생긴 책임감도 잊게 만들었다. 같이 있다 보면 어려운 일도 함께 하고, 가끔 퇴근 후 술 한잔하며 험담도 하고 마음 또한 든든해졌다. 위에 있던 선배님들이던 이제 갓 들어온 1년 차 후배들이던, 다들 비슷한 시기에 군대도 갔다 오고 80년대 고등학교, 대학 생활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상명하복의 문화에는 익숙하지만 당시 설계팀의 분위기가 그렇게 딱딱하거나 무겁지만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들어온 지 1~2년 차 되는 신입사원들은 팀 내 막내로서 업무 외적인 것도 눈치껏 처리해야 했다. 팀 회식 장소 알아보기, 여러 가지 팀 내 행사 준비하기, 장기자랑 경연하는데 나가기, 문서 정리나 물건 나르기 등등. 일에 특성상 머리수가 많아야 서로 의지하며 아이디어를 모아 더 즐겁고 다양한 일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동문회나 학과 활동을 통해 다들 익숙한지라 설계하는 것보다는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아마 예나 지금이나 어느 조직에서든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때의 열정은 돌이켜보아도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져 같았다. 나이가 한 살씩 더 들어가는 요즘은 경험이 차올라 요령이나 방법에 대한 혜안은 있지만 그때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잠시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에 와서 근무하게 된 회사들에서도 한국의 업체들과 일을 많이 하게 되었고 출장을 가서 업체분들을 만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심지어, 지금 예전 기억을 더듬어 에피소드를 써 내려가는 삼성전자 반도체도 협업하는 업체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자주 일을 같이 하다 보면 업체 직원분들의 일하는 모습이나 혹은 업무 외적인 면에서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중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선임 간부나 임원분들도 있고, 한참 후배 되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예전의 딱딱함보다는 유연하고, 강요보다는 자율에 맡기며 흘러가도록 하는 모습이 신선해 보였다. 과거에도 자유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90년대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지금과는 많이 다름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지금도 출장길에 업체 구내식당이나 사무실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거나 일하는 후배분들을 보면 거꾸로 부럽기도 하고 다시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더 잘했으면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 회사에서 느낀 문화적인 충격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된 것과 반대로, 과거 한국의 회사생활 특히 첫 직장생활의 모습에서 투영되었던 일상이 지금의 신선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변해가는 것을 보고 느꼈을 때 받는 충격은 무한한 발전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내가 바라본 자신은 꼰대가 아니라고 외치더라도 다른 사람이 꼰대처럼 느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며 변해가는 시간에 적응하고자 수정할 수 있는 용기를 활기차게 움직이는 많은 젊은 후배들께 배울 수 있어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틈틈이 한국에 있는 많은 업체분들과 일하면서 업무 외적인 경험이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변화에 도움이 되길 늘 바라고 있다.



 다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보자. 자주, 아주 자주 늦게까지 혹은 주말도 나와서 일한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게 재미있게 흘러갔다. 어쩌다 정신 줄 한번 놓는 날이면 무엇인가 등골이 싸늘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식은땀을 흘리면서 해놓았던 일을 다시 뒤적거리며 실수한 부분을 남몰래 고쳐 놓을 줄 아는 건강한 긴장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이었다. 많이 일이 비슷하지만 한 번의 실수가 많은 비용, 시간 그리고 인력의 낭비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는 턴어라운드 타임이 짧지 않은 분야라 한번 잘못 진행된 부분이 다시 수정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설계실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어느 부분은 단순하더라도 반복해서 체크하고 또 개발 프로세스에 절차를 반영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다 같이 노력하였다. 신입사원 때부터 이러한 생활이 몸에 자연스럽게 베이도록 교육과 선배들의 가르침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준비된 사수 (군대에서 보통 실거리 사격훈련을 나가면 멀리 있는 250m 거리의 표적판이 튀어 오르기 전 훈련교관의 우렁찬 목소리로 "준비된 사수로부터 250 사로 봐"와 함께 사격훈련을 했던 기억에서 차용해 보았다. 별것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사용하였던 함축된 용어들을 실생활에서 자주 쓰기도 한다.)가 마침내 현업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문제없이 자기 케리어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는 문화는 지금도 어디에서 일하던 나에게 있어 일에 본질이자 기본이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 고생은 감수해야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내 책상은 프로젝트 리더 즉, 과장님 자리에서 멀리 않았고 약 30도에서 45도 각도로 뒷모습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머리를 들고 시선을 조정하면 컴퓨터 화면에 무엇이 떠 있는지 자세히 응시하며 볼 수 있는 명당(?) 자리였다. 보통 사무실 밖에 있는 분석실이나 관계부서와의 업무가 아니면 거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당시 개인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컴퓨터는 지금 우리가 쓰는 유저 프렌들리하고 멋있게 생긴 퍼스널 컴퓨터가 아니라 조금 딱딱한 워크스테이션이라는 UNIX 베이스의 설계 작업용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SUN Microsystems의 SPARC 시리즈. 2009년 오라클에 흡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 놓였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워크스테이션계의 지존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 내가 처음 썼던 기종은 그 유명한 추억의 시리즈 SPARCstation1+로 1994년 당시로 보면 조금 지난 모델이었으나 작업하는 데는 별다른 지장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설계실도 위아래가 있는지라 복잡한 일을 많이 하시는 선배들이 상위 기종을 가지고 있고 연차가 낮을수록 선배들이 쓰시선 손때 묻은 예전 기종을 깨끗이 닦아서 쓰곤 하였다. 업무용 Wrokstation이다 보니 별다른 기능이 install 돼 있지는 않았고 회로 설계나 레이아웃, 그리고 시뮬레이션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간단한 게임이 있었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삼성에서 만든 Inhouse word editor 툴이 내장되어 있어 시뮬레이션 자료를 정리한다던가 하는 작업들을 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유일하게 한글 버전을 지원하는 소프웨어이고 초기 버전이다 보니 종종 작업하던 것이 날아가는 버그가 자주 발생하였다. 하도 여러 번 같은 에러가 생기다 보니 문서 작업  때문에 날밤을 지새운 게 여러 번 있었다. 나중에 터득한 것인데 소프웨어가 불안해서 죽는 임계점 전에 그때그때 저장하는 것이 그나마 일을 단축시키는 방법이었다. 바로 옆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IBM 계열의 컴퓨터가 있었는데 기종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386이나 486 기종쯤 되었을 것 같고 사내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터미널용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처음 팀에 배치되었을 당시 매일 반도체 Wafer 공정 진행 상황을 모니터 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아무튼 불행인지 다행인지 과장님의 눈이 내 뒤통수에 있으니 그 당시 컴퓨터로 인터넷 (HTML이니 WWW, WorldWideWeb이니 하던 시절 전이다 보니)이나 게임같이 다른 것을 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한동안 자리에만 앉으면 등 뒤가 늘 따가웠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적응하면 그보다 좋은 것도 없었던 것이, 조금 집중에서 정신없이 일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으니까 말이다. 어떤 때는 일을 가르쳐 주시고자 거짓말 조금 보태 며칠씩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내 옆에 앉아 하드 트레이닝할 때도 많았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긴장되던지, 지금도 일에 지쳐 과장님 몰래 졸고 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제품 개발에 있어 초기 설계완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 제품의 검증과 불량분석 그리고 에러 수정에 대한 부분이다. 설계 초기에도 에러를 없애고자 충분한 시뮬레이션과 다양한 검증 프로세스를 통해서 진행하게 되는데 의도치 않은 제조공정상의 변수라던가 휴먼에러, 제조 스펙의 오류 등으로 제조 후 불량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요즘은 이러한 설계 검증 프로세스가 많이 발전되고 자동화로 상용화된 것들이 많아 조건이 잘못되지 않는 이상 설계 에러는 거의 대부분 걸러지게 돼있다. 하지만 여전히 각 회사별 특화된 검증 단계나 조건들에 쌓여있는 노하우들도 많아서 이것들이 하나의 경쟁력과도 같이 작용하기도 한다. 옛날의 경우라면 더더욱이 그러한 노하우나 경험이 중요할 때라 설계의 질을 좌우하는 커다란 부분이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현재 구조에는 전혀 상용할 일이 없어 보이는 회로들도 설계도 한 구석에 놓여 있을 때도 많은데 들여다보면 대부분 예전에 사용하고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옵션들인 경우가 많다. 만일을 대비해서 남겨 놓은 지혜라고나 할까, 한번 넣은 옵션은 잘 없애지 않는 것이 설계 쟁이들의 룰 아닌 룰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의도치 않게 사용할 날이 올지 그리고 어느 누구도 지워서 발생하는 불행이라는 리스크를 가지고 싶어 하지는 않으니까. 예비 회로들도 사용하기 쉽게 필요한 연결 부분은 Metal 배선 (반도체 공정의 보통 끝부분에 놓여있는 알루미늄이나 텅스텐 같은 메탈 처리 공정인데 주로 선을 연결한다거나 파워 배선을 배치한다든가 하는 부분에 사용되며 사용되는 메탈 layer 수에 따라 공정의 스텝수와 시간, cost에 많은 영향을 준다. 메탈 이전 공정까지도 많은 스텝을 거쳐야 하는데, 한번 회로를 만들고 그것을 수정할 때 메탈 layer만 사용하여 수정할 수 있다면 수정 후 새로운 칩을 만드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보통 이것을 Metal revision이라 하며 그렇지 않고 전부를 수정하는 것은 Full layer revision이라 한다. 이 내용만 가지고도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다른 글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으로 깔끔히 처리해 놓는 것도 설계를 마무리 짓는 내공이라 할 수 있겠다.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남겨 놓은 의미도 없고 진짜 필요할 때 아쉬울 수 있으니 말이다. 경험에 의한 배려는 작은 삶의 공간 같은 반도체 칩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영역으로까지 삶의 공간이 이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사는 것이 팽창되어 갈지 또 그러한 확장 속에 수많은 새로운 제품이나 Application의 발전이 올지 기대되는 미래이다. 쓰고 있는 글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 마치 미래를 보고 있는 착각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 재미있기만 하다. 자,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무엇일지 다음으로 넘겨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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