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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ocado Apr 13. 2021

파란색 파카와 스키장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6장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5장: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로 봐! 에 이여서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개개인의 능력에 의지하는 일의 중요성보다 팀워크라는 공동체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를 높이기 위해 조직에서는 많은 정성과 비용을 드리곤 한다. 회사의 로고나 슬로건 같은 것도 그런 맥락과 멀지는 않은데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반듯이 필요한 것들이다. 단순히 복지나 연봉과 같은 부분 보다도 소속감과 일에 대한 자부심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리프레쉬해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고나 복지 같은 것이 Top down이라면 부서 내 혹은 작은 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액티비티들은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Bottom up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이들 경험하였을 것 같은데 나의 경우는 큰 거보다 작은 것에 즐겁고 행복감을 느꼈던 경우가 많았다. 하나의 예로 각 명절날이 되면 여러 가지 선물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라든가,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을 직원들에게 액자 형태로 나눠 준다든가 (90년대 중 후반쯤 받은 어느 작가의 그림이 아직도 집안 거실 한편에 걸려있다), 생일 때마다 예쁜 유리컵을 나눠 준다거나 하는 것들에 소소하지만 즐겁고 또 오래 기억에 자리 잡는 것 같다. 물론 보너스를 많이 받거나 포상을 받는다면 순간 더더욱 좋지만 그런 것들은 왠지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것이 전자에 열거한 것들보다 크지 않다. 



  팀워크의 향상 방법 중 가장 좋은 예가 바로 회식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문화가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먹거리와 즐거운 사람과의 대화는 세대, 직급, 선후배의 벽을 허물고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1995년도 겨울 보광 휘닉스 파크라는 스키장이 처음 오픈하였을 때 DRAM 설계팀 전체가 1박 2일 여정으로 팀 빌드 행사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별달랐던 것은 아니고 같이 밤새 지내면서 먹고 마시고 중간중간 스키를 타면서 오랜만에 쌓여있던 여러 가지 일 들을 풀어내는 시간이 이었다. 그때는 스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지 않아 리프트를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 배운 지 얼마 안 된 실력이지만 재미있게 탔던 기억이 난다. 어디나 그렇지만 스키장에 왔다고 다 스키만 타는 것도 아니고 단체 행사 뒤엔 몇몇 마음에 맞는 그룹끼리 모여 스키보다는 맛있는 음식에 소주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에 쫓기는 평상시 회식보다는 여유 있게 밤새도록 사람들과 쌓여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 가끔 갖게 되는 1박 2일 팀 빌드는 스키를 타던,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던, 축구를 한던 종목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요한 시간은 함께 먹고 마시면서 마음에 쌓여 있던 장벽과도 같은 장작들을 내 던지며 타 없어지는 불신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무실을 떠나 있는 곳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함께 한다면 더 오래 진심으로 남아 있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밤새 음주로 선배들의 반복되는 말들에 귀에 딱지가 지고 다음날 다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지쳐 곯아떨어지는 후유증은 있지만 말이다.



  기억 속에는 유독 겨울에 팀끼리 스키장을 갔던 기억이 있는데 당일치기로 모여 갔던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또 다른 인기 있던 장소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양지파인 리조트 스키장. 슬로프는 다른 큰 스키장에 비해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서울이나 기흥에서 접근하기가 용이하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스키장 중에 하나였다. 평소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각자 본인 장비도 마련하고 화려한 스키복도 입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키복이나 장비들을 구비하지 않은 상황이라 평소에 입고 있던 청바지와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스키를 즐겼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회사에서 바로 스키장 갈 때마다 평상복에 스키를 즐기곤 하였다. 어느 날엔가 간신히 슬로프에서 초보티 팍팍 내면서 거의 구르다시피 내려온 후, 아직도 못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자 내려온 길을 돌아보는데 지금도 있지 못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여러 무리의 파란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정신없이 슬로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당시 직원들에게 파란색 계열 (삼성그룹 색깔이 파란색이다 보니)의 겨울 파카가 지급됐었는데 바로 그 옷을 모두 입고 무리 지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시선을 내려 가슴 쪽을 바라보니 왼쪽에 삼성전자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진 내가 입고 있던 그 겨울 파카였다. 지금 떠올려봐도 웃음이 나오는 즐거운 광경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광고 효과도 있었지만 진짜 소속감을 실천해서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것뿐이었겠는가 내려와 모인 우리들은 또 어디론가 우르르 가서 따뜻한 음료를 같이 마시며 같은 파란 파카에 묶여 우리가 어디서 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나 즐거운 시간 뒤에는 업무로의 복귀가 기다리고 있는데 사기가 올라갔으니 이제 열심히 일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만들어진 반도체 칩을 분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이다.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동작을 시켜보고 동작에 대한 반응이 설계의도 되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하는 장비는 간단한 전압을 측정하는 장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반도체 칩에서 출력되는 데이터를 취합하고 성능을 분석하는 커다란 장비를 사용하였다. 그 당시 메모리 테스트 장비로 가장 많이 사용한 ADVANTEST는 장비 하나의 사이즈가 웬만한 집에 두세 칸짜리 옷장 만한 사이즈라 많은 공간이 필요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테스트 룸에 들어가 보면 이러한 장비들이 커다란 층 안에 여러 대가 빼곡히 놓여 모든 장비들이 열심히 열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한동안 테스트 룸 안에 있으면 귀가 먹먹해지는데 장비가 돌아가면서 내는 팬 소음들과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에어컨디셔너 소리가 어우러져 만든 노이즈들이었다. 테스트 결과에 따라 불량임을 인지한 경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량을 해결해 나가는데 각종 테스트 모드 등을 on/off 해본다거나, 전압 조건을 바꿔 본다거나 혹은 입력되는 데이터의 패턴 등을 바꿔 본다던가 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불량 현상을 정의하고, 불량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회로의 동작을 살펴보게 된다. 회로의 구동 방식을 다시 한번 점검하거나, 서로 다른 조건을 적용하여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던가, 때에 따라서 회로가 그려진 레이아웃 패턴을 점검해 본다던가 하여 불량의 실마리와 해결을 분석과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간혹 휴먼에러로 인해 발생되는 불량도 많았다. 특히 완성된 회로에서 레이아웃으로의 변경 과정에서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는 부분이 있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에러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이 연결이 잘 못된 경우도 있고 아니면 연결의 선로가 설계자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여러 경로를 거치다 보니 필요 이상의 Parasitic loading에 의해 동작 Margin 불충분의 경우이던 실로 다양한 실수가 존재한다. Layout pattern 같은 경우는 회로 설계와 같은지 자동으로 검증하는 LVS, Layout Versus Schematic 이라던가 시뮬레이션 전 Parasitic loading 추출 툴 같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지만 사람이 중간에 개입하여 조건을 세팅하고 혹은 반자동으로 하는 경우에는 에러를 발생시킬 소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현재의 개발 툴들은 이러한 과거의 실제 사례들을 감안하여 에러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발전된 컴퓨팅 파워를 이용하여 다양한 케이스에서 검증 Coverage를 높이도록 기능이 향상되었다. 이러한 툴과 프로세스는 AI를 기반으로 앞으로 점차 더 발전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 이 영역에 있어서 Cadence나 Synopsys라는 회사가 높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며 반도체 칩의 수요가 늘어 나는 한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요구는 점점 증가할 것이다.



  앞서 말한 절차에 따라 불량 현상이 명확하고 해결 방법이 나오게 되면 수정 방법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는 수정된 방법에 따라 실제 적용될 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수정을 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은 수정 영역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나는데 어떤 년도, 가깝게는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도에 발생한 Foundry sortage는 돈이 있다고 해서 반도체 제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심지어 웃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반도체 제조를 바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에러 없이 설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해결을 한 번에 하는 것은 반도체 칩 생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설계보다 중요한 게 검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불량 포인트를 찾은 후 가상의 시뮬레이션 방법 말고 추가적인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FIB (Focused Ion Beam)이라는 과정이다. 우리가 익히아는 미국의 수사기관 FBI가 아니라 불량이 발생한 부분을 쉽게 말해 절개하고 붙이는 일종의 임시 외과 수술 같은 방법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사용하는 Metal 성분이 그 대상이 되겠는데 Ion Beam을 이용해서 연결부를 끊고 메탈로 이어 붙이는 것이 가능한 장비이다. 반도체 제조에는 회로의 복잡성에 따라 여러 층의 Metal을 사용하는데 FIB를 이용한 수정은 깊이 존재하는 메탈층의 회로를 수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로 상부층에 있는 메탈 선로의 작업이 성공 확률이 높다. FIB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장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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