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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ocado Apr 15. 2021

Focused Ion Beam: 선을 끊고이여 붙이고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7장

첫 직장 그리고 꿈과 도전의 1-6장: 파란색 파카와 스키장에 이여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번 에피소드는 오작동하는 반도체 칩을 수정후 검증하는 방법 중에 하나인 FIB에 대한 것이다. FIB (Focused Ion Beam)를 하기 위해서는 시료가 필요하다. 상태에 따라 Wafer (둥그런 형태의 반도체 회로를 프린팅 하는 실리콘 기판, 제조 공정에 따라 8인치, 최대 12인치가 있다. 원형의 피자판을 떠올리면 된다. 클수록 나눠먹을 피자의 양이 많고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만드는 과정에서 관리/운반/보관이 작은 것보다 어렵다. 상상해 봐라, 커다란 피자를 화덕에서 위치를 바꾸거나 놓고 꺼내는 것, 다 구운 후 보관할 장소, 만드는 기구들, 배달 박스 등 커지고 힘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혹은 Package 형태 (일반적으로 반도체 칩이라 불리는 것이며 검은색 플라스틱이나 세라믹과 같은 물체로 덮어있고 측면에 금속 다리나 바닥면에 볼 형태가 나와있는 최종 단계의 제품)로 되어있다. Package 형태는 보관이나 사용이 용이하며 동작 불량이 일반 사용자 레벨에서 발견되기가 쉬운 형태이다. 우리가 FIB 작업을 해야 할 대상이 주로 Package 단품일 때가 대부분이다. 반면 때에 따라서는 불량 현상의 검증 및 수정을 Wafer 상태에서 작업을 할 경우도 있다. Package 상태에서는 플라스틱과 같은 딱딱한 물질로 둘러 쌓여 있다 보니 수정 작업을 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부분을 벗겨내고 내부의 반도체 기판 부분을 드러내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예전 장 - 에피소드 1-3장 첫 번째 임무 - 에서도 언급하였던 Decapsulation 혹은 줄여서 Decap이라고 부른다.



  발견한 불량의 위치와 해결 방법이 나왔으면 최대한 수정 방법을 현제품에 미리 적용하여 새로운 반도체 제조 전에 테스트해보고 결과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수정 작업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FIB의 목적이자 불량 분석에서 가능하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프로세스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 기본적인 용어나 대상, 취지는 설명하였으니 어떻게 이것을 하게 되는지 당시의 상황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출근 한 어느 날, 점심 식사 전인지 후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선배의 부름 소리가 들려왔고 전광석과 같이 선배의 뒤를 따라 분석실에 도착하였다. 같은 건물이지만 이전에 와본 곳과는 많이 다른 곳이었다. 공기를 빨아드리는 후드와 메탈로 된 작업 테이블 그리고 약품병들과 핫 플레이트 (전기를 가하면 정해진 온도에 따라 열이 발생하는 장비), 핀셋, 스포이트 등, 중 고등학교 시절 화학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기구들이었다. 놓여 있는 작은 병들은 플라스틱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약품인데 하나는 발열 질산, 다른 하나는 아세톤 (일반 알코올이 아니라 아세톤으로 기억)이었다. 선배는 미리 챙겨 온 불량 제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하나하나 설명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1. 각종 장비의 준비 상태 확인 2. 환풍기를 켜고 3. 핫 플레이트에 전원을 넣고 적정 온도 설정 4. 불량 시료를 핫 플레이트에 올려놓고 시료 표면에 온도가 적당한지 손가락으로 수시 확인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4번 과정의 경우는 스킵하여도 된다. 손가락으로 한다는 것이 황당하겠지만 손가락의 감각을 이용한 휴먼 온도계라 할까. 지금이야 비접촉 온도계를 이용하여 측정하면 되고 휴먼 온도계로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5. 준비된 장비 중 스포이드로 발열 질산을 조심히 적정 양을 담은 후 미리 정해진 시료 표면 위치에 떨어 뜨린다. 6. 일정 시간이 지나 발연 질산과 반응한 반도체 Pakcage 표면이 연기와 함께 타 들어가면 아세톤으로 클린 후 반응 정도를 확인한다. 7. 아직 반도체 기판 표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6번 절차를 여러 번 추가 진행하고 원하는 정도 (이것도 경함에서 나온 감이겠지만)의 표면이 드러나면 과정을 마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약품을 다루다 보니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시료의 적정 오픈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경험과 감각을 요구하는 나름 고난도의 작업이다. 조금만 과하게 처리하면 불량 부분을 벗어난 다른 부분까지 반응 영역이 넓어져 시료를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너무 적은 영역만 반응하여 작업 공간이 열리면 FIB 장비로 작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설명하는 선배야 이미 수없이 많이 해 봤으니 아주 쉬운 듯 슬슬 설명하지만 듣는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간단해 보이지만 어디에서 멈추고, 또 추가 진행할지에 대한 감이 쉽게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몇 번의 시범을 뒤로하고 직접 하는 과정에서 왜 이리 손이 떨리던지 작업해야 할 포인트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약품을 떨어뜨리게 되니 선배의 매서운 눈초리가 뒤에 아른거렸다. 굳이 비교하자면 군대에서 영점이 전혀 잡히지 않은 총이나 훈련이 미숙한 상태에서 사격을 할 때 만들어진 탄창 군 (반복 사격을 통한 표적에 형성된 타격 구멍들의 모임 혹은 형태, 사격이 완벽할수록 좁은 범위에 구멍들이 모여있게 된다)처럼 스포이드로 발열 질산을 떨어 뜨릴 때마다 표적 주위를 이리저리 맴도니 말이다. 긴장된 시간이었지만 심호흡을 깊게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하여 반복 또 반복해가며 천천히 하였던 기억이 난다.



  선배와 번갈아 가며 Decap을 진행하고 만들어진 시료를 들고 다음 단계로 이동하였다. 물리적인 처리를 하는 동안 예민한 반도체 소자에 의도치 않은 불량이 발생하여 동작 자체를 못 할 수도 있으니 Decap 후 기본적인 기능 테스트 들을 반드시 해서 동작 불능 시료는 구분하여야 한다. 선배의 스코어는 100% 성공, 나의 스코어는 현재까지 빵 프로, 실망하지는 않았다. 처음이었으니까. 위안을 삼자면 처음부터 잘 나왔으면 모래성 위에 커진 자만심만 가득했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던 건물의 위치는 기흥 반도체 정문 입구에서 바로 들어서면 오른쪽 편에 위치한 농구장 뒤로 높지 않은 하얀색 건물 - 그 당시 연구동이라 불리던 건물 - 이였다. 모든 메모리 설계팀, CAD팀 등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건물 옆으로는 마찬가지로 하얀색인지 옅은 회색인지 U-Line이라 불리던 작은 연구용 반도체 제조 공정 라인이 있었다. 입사 후 초창기 불량 분석이나 테스트 등은 주로 했던 곳으로써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Decap 후 다음 단계인 FIB를 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사실 거의 30년이 다돼가는 시간이다 보니 다른 비슷한 장소와 오버랩이 되면서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는데 한계가 있다. 당시 반도체 표면에 각인된 회로의 패턴 즉, Layout을 확인하는 방법은 커다란 컬러 Dot 프린터로 인쇄된 도면이 전부였던 시절이라 FIB를 하러 갈 때면 도면을 둘둘 말아서 옆구리에 끼거나 손에 들고 이동하곤 하였다. 마치 건축설계사가 건물 도면을 들고 가듯이 말이다. 인쇄된 도면 없이 컴퓨터 모니터로 패턴을 확인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신형 FIB 장비가 들어온 후부터였다.



  당시 구형 FIB 장비는 마치 영화에 등장하는 잠수함 잠망경처럼 생겼다. 시료를 작은 무진동 원판에 올려놓고 기계의 문을 닫으면 일정 시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로딩을 하게 되고 끝나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장비에 불이 들어오는 형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오래된 장비이지만 그때 당시 처음 본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워낙 예민한 장비이다 보니 전문 오퍼레이터가 조절을 담당하고 의뢰를 하는 엔지니어와 바로 옆에서 소통하며 불량 부분을 찾아 수정하는 형식이었다. 장비 안에는 고배율 마이크로 스코프가 있어 반도체 표면을 확대해 패턴을 확인하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확대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곳이 방금 이야기한 잠수함 잠망경처럼 생긴 동그란 화면의 유리 너머로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배와 나는 일일이 도면을 확인해 가며 비슷한 패턴이 보이는지 이리저리 오퍼레이터와 함께 옮겨가며 어렵게 작업할 위치를 찾은 후 반도체 상단에 위치한 Metal 표면을 구멍 (보통 Matel과 Matal을 연결하기 위한 준비로 Matel 표면에 작은 Whole을 만들어 놓는다. 마치 접착제가 만들어 놓은 구멍에 스며들어 붙일 수 있듯이)을 내기 위해 벗겨 내거나 혹은 선로를 끊거나 붙이는 작업을 하였다. 첨단 반도체 작업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작업이라 할까. :-) 그 후로 들어온 신형 장비들은 레이아웃 데이터와 좌표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 자동화가 되어 있어 눈 빠지게 쳐다보며 위치를 찾는 번거로움이 덜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미래이니 지금은 현재 상태에 적응하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선로를 붙이는 작업은 연결 거리에 따라 꽤 시간이 오랜 걸린다. 그도 그럴 것이 미세한 물질을 Ion Beam을 통해 차곡차곡 길을 만들어가니 시간이 오랜 걸릴 만도 하다. 장비에 일을 시키고 짧은 이 시간만큼은 여유가 있어 화장실도 갔다 오고,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동근 란 화면에 두 눈을 부릅뜨고 작업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에 바빴다.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아날로그 같은 정감 어린 예전 형태의 작업을 재현할 수는 없고 편의성이나 성공 확률은 좋아졌지만 그때와 같이 중간중간 돌아보는 여유는 찾아보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디지털 장비에 묻혀 사는 요즘은 자주 아날로그 손목시계에 밥을 주고, 귀에 대어 짹 각 짹 각 초침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때의 모습을 추억하곤 한다.



  혼자 하는 Decap, 어느 정도 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나에게 시료가 담겨 있는 Tray (기억 하기에는 가로, 세로 대략 6 x 12 정도의 반도체 칩을 담을 수 있는 케리어) 2개가 주어졌다. 2개의 트레이니까 꽉 차면 불량 시료가 144개 정도 몇몇 비어있는 거 빼면 그래도 얼추 100개는 넘는 시료였다. 선배 왈 "가서 다 Decap 해와라, 불량 위치는 여기니까" 동그란 눈과 함께 나의 대답은 "이것을 다 까요" 돌아오는 선배의 해맑은 눈빛 ㅇㅇ. 필요한 시료가 10개 정도인지라 성공 확률은 고려해서 가능한 많이 시도해서 시료를 확보하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100개의 시료는 적은 숫자가 아니므로 제시간에 퇴근 하기는 이미 물 건너 간 거나 다름없었다. 자 이제 나만의 시간, 흥미진진한 불량 시료와의 싸움. Decap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너무 면적을 넓게 오픈하거나 너무 좁게 오픈하였을 때이다. 너무 넓게 되면 혹시라도 작업 중 작은 파편들에 의해 다른 부분의 손상으로 시료가 상할 확률이 높다. 또한 너무 작게 오픈하면 FIB 장비의 노즐이 들어갈 각도가 확보되지 않아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감인데, 이 감의 시작은 그 날 시작한 100개의 시료로 90%까지 끌어올릴 수가 있었다. 그 후 하면 할수록 요령도 늘어서 적당한 표면 오픈 영역을 확보하고자 물방울이 크게 나오는 스포이트 보다 선수들만 쓴다는 주사기를 사용하여 약품을 떨어뜨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시료에 일정한 온도를 가하여 발열 질산의 반응을 높였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하면 너무 빠른 반응으로 인해 시료에 구멍을 뚫어 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하나의 온도로 세팅하여 작업을 하기보다는 표면 반응에 따라 감각적으로 온도를 조절하여 반응 속도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균일하게 플라스틱 표면이 타들어 가도록 하였다. 불량 시료가 다행히도 (불량이 많은 게 다행은 아니지만) 많다면 여러 번 시도해도 되지만 어느 때는 단 하나의 불량 시료만 있는 경우도 있어서 항상 주의해야 했다. 물론 중요한 시료의 작업은 설계팀 내에 고수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도 그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있어야 오를 수 있었다.



  Decap을 하고 나면 시료 표면의 플라스틱과 반도체 기판 표면에 덮여 있는 절연 물질, 보통 Polyimide 같은 물질, 이 발열 질산으로는 깨끗이 제거되는데 한계가 있어 일부 타다 남은 찌꺼기가 표면에 잔존하게 된다. 이러한 찌꺼기들이 FIB시 시야를 가리거나 혹은 작업 시 잔존 물질을 제거하는 시간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타다 남은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 약한 황산을 짧은 시간 사용하여 깨끗한 표면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진정한 고수들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황산은 메탈 성분을 녹이는 성질이 있어서 사용 정도를 잘못하게 되면 반도체 표면의 Metal을 녹여 완전히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어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사용하지는 않는다. 처음 Decap의 고수로 스스로 자축하며 철 모르던 시절 나름 전수받은 황산 기법의 내공을 이용하여 찌꺼기라는 적을 제거하고 의기양양하게 FIB 룸으로 이동, 연결할 Metal 라인을 찾았으나 있어야 할 위치에 1번 metal은 없고 공허한 땅덩이만 덩그러니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순간 Metal이 아닌 Mental이 나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후로는 자만심을 내려놓고 항상 주의하여 작업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였고 고수임을 숨긴 체 강호에 몸을 맡기며 묵묵히 임무에 충실하였다.



  우스개 소리로 FIB 에피소드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주고자 하였는 데 성공하였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반복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고 익숙함을 기반으로 창조를 하는 것처럼, 하는 일에 있어 작고 크고,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음을 따지지 말고 묵묵히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커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 경험해 왔고 아직도 믿고 있다. 너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 있게 하고자 하는 바를 즐기면서 만들어 간다면 언젠가는 강호에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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