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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Oct 01. 2021

호주 '교육'의 강점 2가지는?

교육의 현장은 삶과 연결되어 있다.

아들이 호주 시골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몇 달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가 받았던 교육과는 참 다르구나 느낄 때가 많았다. 말로는 흔히 하지만 어렵게 여기는 참교육 산교육의 장을 본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무조건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호주 교육의 강점에 대해서 정리해보겠다. 

1.   현장 교육, 산교육  

  

강연 특강이 많다. 지난 두어 달 동안 학교에서 열린 특강만 다섯 개가 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렇다. 도로관리 공사 (VIC Road)에서 파견한 강사가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들을 앉혀놓고 거리 질서에 대한 특강을 했다. 빨간 불엔 서고, 초록 불에 건너라는 것. 길을 건널 때 왼쪽 오른쪽을 살피고 안전한지 판단을 내린 뒤 건넌다는 등등의 흔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들고 온 자료가 방대했다. 학교 선생님이라면 이만큼 수업 준비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프로젝터로 다양한 도로 상황에서 길 건너는 영상도 일일이 보여주고 운동장에 신호등을 설치한 뒤 같이 건너보기도 한다. 관련 책자나 브로셔 집에 갖다 붙일 스티커나 포스터 등등까지 나눠준다. 

농협(Farmer’s Association)에서 파견 나온 강사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자’는 주제로 수업을 했다. 두 강사는 사과 바나나 토마토 피망 샐러리 아보카도 등등의 야채를 멜번 새벽시장에서 장을 본 뒤 작은 트럭에 싣고 3시간을 운전해 왔다. 근처의 다른 두 초등학교도 버스를 타고 와 스킵튼 학교로 집결했다. 작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세 학교 전교생이 모여도 150여 명 정도다. 과일과 야채가 왜 몸에 좋은지, 하루에 얼만큼 먹고 어떻게 골고루 먹을 수 있을까 등을 얘기하고 토끼가 당근을 먹으며 건강해지는 짧은 영화도 본 뒤 과일과 야채를 골고루 한 접시에 담아 먹었다. 야채 싫어하는 아이들도 친구들과 어울려 한 접시를 다 비웠다.   


호주 학교는 이런 특강에 늘 학부모 동참을 권유한다. 부모도 같이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아이들이 교육 후 야채를 먹기로 작정해도 엄마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의외로 아이들의 그릇된 식생활은 잘못된 부모의 식습관을 전수받는 데서 비롯된다. 대여섯 엄마들이 수업 한 시간 전에 미리 학교로 와 강사가 들고 온 과일과 야채를 썰고 깎았다. 그리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수업에 동참했고 맛있게 같이 먹었다. 


최근에 들은 강연은 주제가 ‘인생 교육(Life Education)’이었는데, 내용은 마약과 유해물질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그런 교육도 하는가 싶어 놀랐는데, 흡연 음주 마약 심지어는 에너지 드링크 (카페인이 많이 들러간 음료들)까지 나열하며 아이들이 자기 주변에서 보고 접하는 약물들에 대해 바른 개념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내부를 교육 스튜디오로 변경한 미니버스를 끌고 발라렛에서 온 강사는 때로는 손에 인형을 들고 장난스럽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때로는 의과대학에서나 볼만한 혈관 신경 해부도까지 상세하게 보여주며 각 연령에 맞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을 했다.   


동물 보호 협회는 애완동물 다루는 법을 가르쳤고 아시아 문화를 배우자며 중국문화관으로 탐방을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중국 요리 책자도 같이 만들고 만두도 빚어먹고 왔다. 

기업은 사회환원의 기회로 다양한 교육에 동참하고, 저마다의 목적이 있는 비영리 단체들은 정부나 여러 기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목적과 주장을 현장에서 활발하게 교육한다. 


2.   부모와 사회가 동참하는 교육 


부모들도 자기 재능에 따라 여러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 텀엔 엄마들이 2주에 걸쳐 매일 수영을 가르쳤고 이번 텀엔 몇몇 아빠들이 방과 후 스포츠로 풋티를 가르친다. 10주간 목요일 저녁마다 한 시간씩 같이 뛰는 것이다. 곧이어 골프 강좌도 열릴 예정이다. 몇몇 클럽 회원(마을의 은퇴한 노인들이었다.)들이 코치로 나서고 9개의 홀이 있는 동네 골프장이 후원을 해서 아이들 수업료는 무료다. 공동체가 아이들 교육이라 하면 발벗고 나서 후원하고 봉사하니 학부모의 부담은 줄어든다.

(나중에 골프장이 오랜 가뭄으로 경영난에 빠졌을 때 학부모들이 나서서 회원권을 구매했다. 나도 200불(20만원) 정도의 연회비를 내고 1년 동안 온가족이 놀면서 필드를 돌기도 했다.)

내 경우는 수업에 들어가 학생들 쓰고 읽는 것들을 개인별로 도와주는 봉사를 하기도 하고 한국 노래와 문화를 소개하는 강의를 몇 번했으며 5-6 학년 아이들과 김밥 만들기 요리 수업도 했다. 부모나 학생 주변의 이웃들이 동참할 수 있는 교육이란 무궁무진하다. 가령 할아버지가 손자 학교에 가서 ‘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란 주제로 강연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막연히 웃어른을 존경하라거나, 니들도 늙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노화에 대한 생물학적 의학적 지식을 나누고 평소 복용하는 신경통 약도 들고 와 보여주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도덕책으로 배우고 시험으로 맞는 답을 찾는 것보다 핵심 내용을 효과 있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당장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는 것을 실천하게 될 것이다. 또 일하는 부모들도 자기들의 직업세계에 대해 소개를 할 수도 있다. 방앗간을 한다면 떡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거고, 고물을 줍는다면 재활용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호주의 대표 인기 스포츠, 풋티. 목요일 저녁 온 가족이 동네 운동장에 집결했다. 초등학생을 학년별로 세 그룹으로 나누었고 각 그룹마다 두 명의 아버지가 지도를 맡았다. 아버지와 아이들이 하나가 되어 몸을 풀고 운동장을 뛰고 바닥을 뒹굴었다. 대략 노는 것 같지만 매주마다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내용이 알차다.   

아들의 첫 수업, 첫 킥이 기억에 남는다. 

공을 앞에 놓은 아들은 등을 돌리더니 펜스 끝까지 한없이 뒤로 걸어갔다. 뭐 하는 거지? 포기하는 건가?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아들이 거기서부터 ==33==33==33 대략 20여 미터는 달려서 맹렬하게 공을 찼다. 다행히 헛발질은 아니었다.ㅎ    


성균형을 중요시하여 여자아이들도 축구나 크리켓을 즐긴다. 축구도 초등학교는 혼성으로 팀을 구성하고 크리켓(야구 비슷)은 중고등부까지도 혼성으로 팀을 구성하여 함께 훈련하고 게임도 한다. 호주 여자는 연약하거나 가련하지 않다.


짧은 가을 해가 넘어가고 비도 부슬거렸던 어느 날. 수업 막판에 주변에서 수다 떨며 서성대는 엄마들까지 다 나오라고 해서 피구 비슷한 게임을 했다. 뛰고 던지고 진흙에서 구르고. 아.. 이 나이에 이것까지 하려니 엄마 노릇 쉽지 않다. 애어른 할 것 없이 진흙 구덩이에서 뒹굴었고 모두 함께 웃었다.      

엄마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된 수영 강습. 어느 엄마는 자기 자녀들이 이미 졸업해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해마다 이 초등학교에서 강습 봉사를 한다. 이들의 자원봉사 동기는 꽤 순수하다.

이곳 부모들은 종종 학교로 동물들을 들고 오기도 온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거나 새로 금붕어를 샀다든지, 뒷 개울에서 잡은 가재도 들고 오고 올챙이도 잡아오고 거미나 메뚜기도 병에 담아온다. 트레일러에 말을 싣고 데려 온 경우도 있었다. 혹은 정원에 새로 핀 꽃이라며 한 다발을 보내고 흥미로운 책도 소개한다. Show and tell 혹은 show and share라고 한다. 크게 가르치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부모들이 수업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선생님께 눈도장을 찍는다든지 하는 개념은 없다. 부모들이 각자 재량껏 아이들 수업의 활기를 위해 하는 일들이고 이런 일들로 인해 선생님이 한 아이를 눈독 들여 예뻐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모두가 합심해서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것, 정말 순수하게 그뿐이다.    

호주 사회엔 이외에도 수도 없는 강사들이 있는데 전문교육을 받은 이들부터 전쟁 용사나 산불 희생자, 스포츠 스타, 혹은 저마다의 독특한 인생 경험을 나만의 스토리로 들려주며 교실 안팎에서 나름의 주관과 철학을 교육하고 용기도 주고 한다.   

교육을 삶의 현장에서 분리하지 않는 것, 교육이 말이나 듣고 씀 시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교육의 주체가 학교나 학원 선생으로 제한되지 않고 학부모나 마을 사람들, 주변인 기업들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있다는 것이 내가 본 호주 교육의 강점이다.  (2012/4/2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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