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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14. 2021

호주 초등학교, 재테크 교육이 놀라워

학교는 교과서 책정을 어떻게 하나?

얼마 전 아들 학교에서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작은 세미나가 있었다. 주제는 ‘Money Smart Teaching’. 물질만능 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돈의 의미와 관리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교재를 개발한 출판사의 관계자가 강사로 나와 요즘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테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교재를 활용해서 이런 교육들을 할 수 있다고 제시하는 식이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서 내 생각도 섞어보면 이렇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요즘 호주의 젊은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부유해졌음에도 부모 세대보다 훨씬 많은 빚을 지고 산단다. 그중에는 교육비나 주택 구입 등으로 인해 발생한 긍정적인 부채가 있는가 하면, 무절제한 소비나 잘못된 관리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부채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후자의 경우가 늘어 부채의 질이 좋지 않다고 한다. 어릴 때 돈이나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이 부실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나이에 독립을 못하고, 균형 잡힌 수입과 지출로 삶을 건설할 시기에 파산을 하고, 안정된 미래를 위한 재테크를 제때 못해 불안한 노년기를 보내게 되는 거란다.  


10여 명의 교사들이 교무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듣는 작은 모임이었는데, 그중 몇몇은 나도 노후 준비를 못하고 있다,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하냐며 푸념했다. 그러자 강사가 신나서 교재를 펼쳐 보이며 유치원 때부터 경제관을 확실히 세우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열변했는데, 교재의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까지의 경제교육이라 하면 호주에서도 (가령 초등생의 경우) 돈 세는 방법, 더하기 빼기, 혹은 아껴서 저축하자 정도였나 보다. 그런데 이젠 그 단계를 넘어서 ‘돈이 굴러야 사회가 구른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개인 인생의 재테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설계를 대학 전에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을 두고 개발된 교재의 대략의 주제를 학년별로 보면 이렇다. 


초등 1-2학년: 팬케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자선행사에 대한 교육이다. 아이들이 직접 팬케잌을 만들어 판매하고 기금을 모아 원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왜 자선을 해야 하는가, 어느 단체를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부터 필요한 재료는 무엇인가? 재료 구입비를 줄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가격 책정은? 광고는? 판매방식은? 등등을 6 시간에 걸쳐 토론하고 마지막으로 교내에서 직접 행사를 진행한다. 

3학년: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Needs and wants) 

나에게 만원이 있을 때 어떤 재화와 용역을 얼만큼 구입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들. 무엇을 우선으로 소비할 것인가? 

4학년: 광고를 어떻게 볼 것인가? 

넘치는 광고의 유혹 속에서 진실 찾기. 마음잡아 현명하게 소비하기. 광고에 나오는 장난감이나 게임기는 다 갖고 싶은 시기이다.

5학년: 지혜롭게 옷 사 입는 법. 

한참 외모에 관심을 갖는 시기라 정한 주제인 듯. 재활용, 재사용에 대한 개념과 환경문제 연구. 

6학년: 예산, 계획, 이윤(저축) 남기기 등등 인생설계 노하우.  


호주 안전 투자 금융기구와 교사협회에서 개발했다는 이 교육과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moneysmart.gov.au/teaching-kids-about-money 


이날 생각했던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1.     자본주의 사회, 돈의 효용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는 인간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개념을 잘 잡아주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느꼈다. 

2.     경제원론은 물론이고 미시 거시 경제학을 모두 공부했음에도 내 인생 재정계획을 제대로 세워본 적 없는 나는 뭔가, 내가 받았던 교육은 시험 이외에 내 삶과 무슨 연관이 있었던 건가 충격받았다. 

3.     교과서 책정하는 과정이 너무 투명해서 교사와 학부모가 교재를 일일이 살펴보며 이걸 쓸까 말까 토론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역사 교과서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학부모와 선생이 다같이 모여 함께 읽으며 교육을 고민한 학교가 한국엔 몇이나 될까 의문이 들었다. 

4.     로비도 떡값도 없는 출판사와 교사들의 관계도 놀랍다. 출판사는 일정액 이상을 판매하면 교사가 아닌 학교 측에 얼마간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도서관에 도서를 기증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교재 내용도 교과서 책정 과정도 신선했다. 또 이런 일까지 일일이 참여하며 (물론 안 해도 되지만) 작게는 자녀교육에 관심을 쏟고 크게는 건설적인 미래시민 양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부분이 사회적 책임감으로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면 너무 거창한가?  (2014/2/26 씀)

팬케잌을 만들어 팔아볼까?
엄마들도 수업에 동참해서 함께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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