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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18. 2021

호주 교육-'강연 문화'는 이렇다.

발표 비판 토론 교육은 유치원 때부터.

호주에서 ‘강연’을 하거나 찾아 듣는 활동은 모든 이에게 아주 일상적이며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유명한 강사가 인기스타처럼 큰 스테디움에서 대중을 몰고 다니며 하는 강연도 있고, 평범한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 몇 명 모아놓고 봉사의 체험 등을 나누는 강연도 있다. ‘강연’이란 상품이 수요나 공급이란 측면에서 다양하게 생산되고 잘 팔리니 시장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고나 할까. 호주 시골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강연 문화를 살펴보겠다. 


1.     강연 교육은 어릴 때부터 


호주 교육에서 발표력은 아주 중요하다. 유치원 때부터 ‘Show and share’(보여주고 생각 나누기)를 통해 아이들이 반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한다. 가령 테디 베어 하나 들고 와서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며, 생일 선물로 받았던 거고, 매일 밤 침대에서 같이 잔다.’ 같은 평범한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므로(물론 철자며 문법이며 다 틀리지만) 원고를 작성하여 읽고 발표하는 ‘Presentation’을 배운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표하고 다른 이의 의견을 수렴해서 듣는, 발표 토론 교육까지 이루어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일 학년 교실을 예로 보자면, 아이들은 큰 원으로 빙 둘러앉아 친구의 발표를 듣고 나서 ‘I like~’(동의, 격려) 혹은 “Next time~~’(조언, 비판)으로 시작하는 의견을 담담하게 나눈다. 별 내용도 없고 어버버 대는 아이들로 인해 얼핏 수업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산만해 보일 때도 많지만, 발표 비판 토론이란 것들을 이렇게 조기 교육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건설적인 비판이나 토론이 희귀한 이유는 이런 교육이 사회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이 툭하면 편을 먹고 대립하는 것이나,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는 자들조차도 개인의 감정을 서로 긁으면서 비판과 비난, 풍자와 조롱을 구분하지 못한 채 이성보다 감정만 내세우는 말장난을 서슴지 않는다. 주먹이 안 나가면 다행일 정도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이런 문화를 비판하고 잘해보자고 하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마치 콘서트에서 명 연주에 감명받아 ‘나도 피아노를 잘 쳐 보겠다’고 백날 다짐해도 안 되는 것처럼, 좋은 레슨 한 두 번 듣고 결심만 굳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건반 앞에서 한심하고 지루하게 딩동 대던 어린 시절부터의 일상이 없다면 좋은 연주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발표 강연 토론 비판이란 것도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야 이루어지는 부분이란 생각을 했다. 


2.     다양한 강사를 통해 사회를 배운다. 


6학년 아이들은 지난 반 학기 동안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했다. 리더에게 필요한 기본 덕목은? 당신이 존경하는 리더는? 등등 무수한 소주제를 놓고 인터넷으로 리서치를 하고 팀을 만들어 토론을 하고 자신만의 원고를 작성한 뒤, 그것을 토대로 실제의 학생회장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는 5-6 학년 전학생이 단체로 멜버른에서 열리는 리더십 콘퍼런스(National Young Leaders Day)까지 하루 다녀왔다. 유명 축구팀 주장부터 동네 경찰서 서장까지 각계각층 리더 백여 명이 한자리에서 강연을 했다. 이 강연 팀은 해마다 대도시를 순회하며 주제에 맞게 자신만의 강연을 하는데, 참가하는 초등학생이 3만여 명에 이른단다. (초등학생 대상 리더십 콘퍼런스를 더 알고 싶다면 : http://www.halogen.org.au/event/melbourne-primary )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강사를 선택해서 강연을 들은 뒤, 그것을 토대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것이 과제다. ‘리더십’이란 주제를 놓고 두어 달을 고민하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리더들을 실제로 만나 그들의 고충이나 활동에 대해 듣고, 자기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며 공부한다. 


한국 아이들은 교실에서 사회에서 누구를 보고 만나는가? 그들의 선망의 대상은 ‘돈 잘 버는 연예인, 유튜버’ 말고 누가 있을까? 그들은 어떤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고민하고 사색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하는가? 


3.     강연장에서의 토론과 대화 


학교 안으로 찾아오는 강연자들도 시도 때도 없이 많지만, 가끔은 강연을 들으러 찾아 나선다. 5-6학년 아이들은 발라렛 재활병원 강연장에서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스포츠 영웅(루이스 서베지)을 만났다. 휠체어 타고 마라톤까지 한다는 그녀는 정신도 육신도 너무 건강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아이들은 이미 그녀에 대한 리서치를 마쳤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기소개를 간단히 5분 정도 하는데 그쳤고 대부분의 시간은 질의와 응답으로 채워졌다. 무슨 질문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20명 남짓한 아이들이 50여 개가 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장애에 초점을 둔 호기심 어린 질문들, 스포츠 정신과 국제무대 진출에 대한 존경심, 때로는 가족 등 사적인 질문, 주제와 관련 없는 이상한 그러나 묻는 이는 진지했던 그런 것들 까지… 사회자가 이제 두 개만 더 받고 끝내겠다고 나서서 정리할 때까지 질문이 그치지 않는 것이 놀라웠다. 


기껏해야 10살 좀 넘는 아이들이 이런 강연을 즐겨 듣고, 질문과 토론을 꽤 잘하는 것을 보면서 일학년 아이들이 교실에서 산만하게 보내는 토론 시간들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시간에 영어 철자를 가르친다면, 구구단이라도 외우게 한다면 아이들은 훨씬 성적이 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들의 시야는 그만큼 좁고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이란 인풋과 아웃풋이 너무도 정확한 분야일 뿐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은 부모와 사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2013/4/1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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