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미술관에서 무엇을 배울까?
요즘 한국도 '체험 교육'을 점점 강조하는데 반가운 변화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경험하지 못하고 모르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둘러대고 시험지 위에서 답을 찾도록 훈련시키는 일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내가 경험한 호주 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을 강조하는데, 이날 우연히 미술관에 갔다가 만난 예체능 체험 교육 현장을 나눠볼까 한다.
얼마 전 국립 빅토리아주 미술관(NGV-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을 다녀왔다. 호주는 각 주마다 국립 미술관을 하나씩 두고 있는데, 각 주의 아트 수준을 대표하는 곳이니 만큼 규모와 시설이 매우 훌륭하다. 멜번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곳에 어린이 미술관이 새로 문을 열었다기에 놀러 갔었다.
미술관 일층 전시관 한쪽, 어스름한 조명 사이로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의 것들이 보였다. 'Kaleidoscope of Art and Colour: 미술과 색채의 만화경'이 주제였다. 주제에 맞는 여러 작품들과 놀이 기구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엄마 손 잡고 온 유아부터 유치원 또래의 아이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 논다.
단순하게는 색연필이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부터 쫒아다니는 조명을 뒤로 보며 뛰어다니는 디지털 작품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조종판 위에 있는 핸들이나 버튼을 돌려 색을 섞고 모양을 만드는 칼레이도 스콥 등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가득하다.
엄마들은 크게 열의를 낸다기보다는 아이들 옆에 앉아 들여다보거나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정도이다. 급한 데로 미술관 안에서 아기 기저귀를 가는 엄마도 있었다. 구석구석 소파나 쉴 공간이 있어 자연스럽게 수유도 한다. 어린이 미술관은 이런 행동도 용납하는 분위기다. 예술뿐 아니라 편의 시설 면에서도 엄마와 아이를 배려한다.
잠시 아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오다 이런 현장을 만났다. 미술관 로비 중앙에 있는 홀인데 종종 세미나도 하고 음악회도 열고는 했다. 이날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단체로 놓고 금관악기에 대한 교육과 콘서트를 하는 듯했다. (어느 학교인지 아시안계와 중동계의 이민 자녀들이 많아 보였다.)
5명의 연주가들은 짤막한 연주를 마치더니 각자 연주하던 악기를 소개하고 소리가 어떤 식으로 전달되는지를 설명했다. 그런데 그런 설명을 하면서 연주자들이 무대 위부터 객석 끝까지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시연을 하는 것이었다. 소리가 어떻게 입체적으로 들리고 악기 소리들이 섞이는지를 알리려고 연주자들은 수시로 헐떡대고 뛰어다니며 위치를 바꿨다.
심지어는 빨간색 플라스틱 깔때기까지 준비해서 음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몸개그에 유머에 연주까지 너무도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자기가 연주하는 악기에 대한 애정일까 아이들을 향한 교육의 열정일까 이들은 참으로 열심히 했다. 집중력 없는 아이들도 딴짓할 틈이 없을 만큼 숨 가쁘게 재미있었다. 이런 음악수업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많이 놀랐다. 클래식 음악 하면 어렵고 고상하고 비싸고 우아하고 문턱 높다고 주입받았었는데,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이란 엿장수 가위소리만큼이나 익숙하고 재미있고 쉽고 친절해서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는 세계란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을 연주했는데 아이들은 듣고 나서 '슈렉에서 나오는 군악대 같다'던가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가 생각난다' 던가 하는 자기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 아이들은 이렇게 음악을 배우고 즐기는구나!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아이들을 따라 미술관 뒷마당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주섬주섬 싸들고 온 도시락을 까먹는다. 샌드위치나 사과 따위이다. 학교급식이 아니고 일 나가는 부모들이 이른 아침 만든 도시락을 먹는다. 나도 간단하게 싸온 도시락을 아들과 함께 잔디 위에 앉아 먹었다. 로뎅과 헨리 무어의 조각을 양 옆에 두고.^^ (아들이 어릴 땐 때 맞춰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도 번거롭고 먹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서 도시락을 많이 싸들고 다녔다. 이곳에서는 피크닉 런치라고 하는데, 공원이나 야외등 펴놓고 먹을 만한 곳이 어디든 있어 편리했고 주변 사람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자유로웠다.)
인생에 있어서 미술이고 음악이고 예술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허영도 아니고 인정받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돈 놓고 돈 버는 생존의 한 방편도 아니다. 예술은 인생을 살면서 적당한 거리를 옆에 둔 채 즐기고 대화하는 대상이 아닐까 싶다. 그 거리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삶의 희로애락을 가까이서 나눌 평생 친구라고 생각한다. 기쁠 땐 흥겨운 음악의 볼륨을 높여 춤을 추고 슬픈 땐 어두운 음악에 잠겨 흐느끼듯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친구를 이렇게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소개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녀들에게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전에 미술학원에 밀어 넣기 전에 부모와 교육자와 아이 스스로의 예술관을 잘 점검해 봐야 한다. 그래야 진도와 기술 습득에 짓눌려서 진저리 치는 것이 아닌, 예술과 진정으로 즐겁게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미술관 뒷마당에서 너무 오랫동안 둘러보고 잡생각을 하느라 저 근사한 비엔나전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유치원이 개학하면 혼자 나와서 나를 위한 관람을 하고 싶기는 하다. (2011/7/14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