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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17. 2022

호주 '가든 클럽'에서 한국의 정원을 이야기하다

정원을 통해 바라보는 두 나라의 문화 차이는?

얼마 전 이곳 스킵튼 가든 클럽으로부터 섭외가 들어왔다. 동네 할머니 10여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꽃이나 정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잘 가꾼 정원을 같이 구경도 다니는 모임인데, 이곳 정기모임에 나와 한국 가든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난 좀 놀라기도 했고, 한국에 뭐 얘기할 만한 가든이 있는가 생각해보다가(잠깐 숯불 갈빗집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다.ㅋㅋ) ‘한국엔 당신들이 생각하는 앞마당의 가든이 흔하지는 않다.’고 했다. 근데 이분은 내 말이 농담인 줄 알고 ‘한국의 꽃이나 나무 등 회원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얘기를 나눠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대뜸 수락을 한 뒤에 고민을 시작했다. 무엇을 얘기해야 하나...
인터넷도 찾아보고, 책자도 뒤져보고, 주변인들과 의논도 하다가 대충 이렇게 정리하여 모임에 나갔다.

첫째, 한국은 국토가 좁고 인구는 많고, 도시는 붐벼 호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정원이 매우 드물다. 아파트나 주택가 주변에 작은 녹지대가 손바닥만큼 있는 정도인데, 다행인 것은 요즘 그 면적을 넓혀가는 추세라는 것. 또 사람들이 주방이나 베란다 혹은 옥상 위에 미니 화분을 놓고 꽃을 가꾸고 심지어는 야채나 허브도 키워 먹으며 자기만의 초미니 정원을 가꾼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파트 거실 한구석에 화분을 오종종 놓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 드렸더니 매우 신기해하며 보셨다.

 
둘째, 간혹 일부 부유층은 큰집에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호주가 정원을 잘 가꾸고 담장을 낮춰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보며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반해 이들은 높게 담벽을 둘러싸고 경비를 철저히 하여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분들이 좀 있었다.

이곳에서는 자기 정원을 잘 가꾸는 일을 일종의 사회환원으로 여기는 개념이 있다. '내가 열심히 노동을 할 테니 당신들은 지나가면서 즐기시라'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호주 주택은 앞마당과 뒷마당의 기능을 분명히 구분하는데, 앞마당은 꽃이나 나무로 예쁘게 장식을 하는 것에 치중하고 뒷마당은 가족들이 앉아 즐기는 야외식탁을 놓는다던지 야채를 심어 먹는다든지 빨래를 널어 말린다든지 하며 사적인 공간으로 쓴다. 앞마당은 메이크업을 한 공적인 얼굴, 뒷마당은 편안한 생얼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인들은 아파트에 주로 살다 보니 익스테리어(인테리어의 반대말)에 익숙지 않아 집안 청소는 깨끗이 하면서도 마당이나 정원을 그냥 공터라 여겨 짐짝이나 쓰레기를 쌓아놓고 살아 호주 이웃이나 집주인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잔디를 제때 안 깎는 것은 제 평판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한국 서민들은 꽃과 자연을 어떻게 즐기는가?
셋째, 간간히 마을에 공원이 있고 옛날 왕이 살던 궁궐의 정원이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할머니 들은 잘 다듬어진 유럽의 궁 안에 있는 정원들을 연상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준비해 간 경복궁, 창덕궁, 비원 등의 사진을 보여드렸다. 모두들 관심 있게 들여다보시며 감탄을 하시다. 그래서 본격적인 자랑을 시작했다.


넷째, 한국은 호주와 달리 4계절이 분명한 나라다. 그래서 정원의 모습이 계절마다 뚜렷하게 다르다. 봄이 되면 벚꽃 장미꽃 페스티벌이 열리고 온 가족이 고궁 등으로 피크닉을 간다.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이, 겨울이면 설경이 끝내 준다.(자료 사진 돌림) 한국의 정원은 꽃과 나무뿐 아니라 돌과 물의 조화도 중요하다. 연못이나 돌다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구성하는 중요 아이템이다.


다섯째, 한국 국토의 70%는 산인데, 등산을 하면서 야생 자연을 즐기는 것도 큰 재미이다. 산 밑동부터 꼭대기까지 종류가 다른 야생 꽃들이 피는데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여섯째, 한국의 국화는 무궁화다. (호주에도 이 꽃은 흔하고 색깔도 다양하다.)
 

일곱째, 시골집을 가면 작은 마당 앞에 심긴 과일나무들을 보게 되는데, 주로 사과 대추 감나무다. (이 대목에서 감이 잔뜩 열린 나무 사진을 보여줌-호주는 레먼이나 자두나무쯤이 흔한 듯. 다른 유실수도 다양하게 많지만.)
 

여덟째, 딸을 낳으면 아버지가 오동나무를 심었다가 시집보낼 때 베어 장을 짜서 선물하는 전통이 있었었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보니 한국이 대단히 아름답고 자연도 전통도 풍성한 나라인 것처럼 나 스스로도 여겨졌고 듣는 이들도 충분히 그렇게 느끼는 듯했다.


왜 대추나무를 심는가? 오동나무가 빨리 자라서 딸을 낳으면 그걸 심나? 추운 겨울엔 어떻게 야채를 생산해 먹는가? 등등 온갖 질문이 이어졌고, 간혹 대답하는 과정에서 김치나 김장 얘기, 먹거리 얘기 등등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진 다과 시간에도 할머니들과의 수다는 이어졌고 모임을 마칠 무렵 회장이 ‘스타 오브 베들레헴’이란 꽃의 알뿌리 20개를 감사의 선물로 주셨다. 집에 와서 앞마당에 심었다.


한국 문화나 언어 등에 관한 세미나에 강사로 초대됐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두 문화 사이에서 차이점이나 공통점을 찾으며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일들을 계속 하고 싶다. (2009/3/6 씀)

이런 책자의 영어들이 좀더 유연할 필요가 있겠다. 번안해서 출판하기 전에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운데 책은 제목과는 달리 일본 냄새가 짙게 났는데 알고보니 저자가 일본인 이었다.

자신의 정원이 가장 아름다울 때  주인장은 가든 파티를 종종 연다.
라벤더 정원을 잘 가꾼 뒤 카페를 연 어느 할머니. 자부심 뿜뿜.
호주에서 가드닝은 흔하고도 고상한 취미인데, 정원 가꾸며 사는 삶을 이상적으로 여긴다.
동네마다 취미를 같이 하는 가드닝 클럽이 있는데, 이들이 평생을 공부한 가드닝 지식은 심오하고 전문적이어서 놀랄 때가 많다.

15년 전 쓴 글이다. 그 사이 한국에도 여러 수목원이나 정원들이 생겨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즐겁게 거닐고는 했다. 전원주택이나 가드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가고 있다고 느낀다. 한국의 정원을 소개하는 책자들도 지금은 더 많이 나와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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