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생태 세미나에 갔다.
아들이 활동하는 스카우트에서 거미 게(Spider Crab)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다.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너무도 내용이 궁금해서 염치 무릅쓰고 따라나섰다. 사춘기 아들은 따라오지 말라 했지만 막상 가니 리더들이 모두 열렬하게 환영을 해주었다.
영국 출신의 강사는 이 맘 때쯤 라이 바닷가(Rye beach)에 등장하는 거미 게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생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령 이런 것이다. 아기 게는 깊은 바닷속에 살다가 작은 등껍질을 떼어 버리려고 뭍 근처로 나온다. 바위에 몸을 비벼 등껍질을 뚝 제거하면 그 밑에 있던 부드러운 막이 크게 자라며 3-4일 내에 단단해져 새로운 게딱지를 등에 지게 된단다.
그러니 새 집을 만들려고 뭍으로 기어 나오는 게를 과도하게 잡아먹지는 말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인간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때가 게 철이긴 한데. 호주에서는 수자원 보호를 위해 일인당 하루에 잡을 수 있는 게의 개수를 철저히 제한한다.
데이비드 에센보로(David Attenborough)의 다큐 '블루 플라넷' (Blue Planet)중 게의 생태를 다룬 부분을 같이 봤다. 에센보로 경은 셰익스피어 비틀스와 견줄 만큼 영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보급 생태학자인데 90이 넘은 지금도 다큐를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호주는 물론 세계적으로 어찌나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지, 그가 새 다큐를 내놓으면 멜번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콘서트 홀에서 오케스트라 라이브 협연을 배경 음악으로 그의 영상을 보는 시사회가 개최되고, 유명 방송사의 프라임 시간에 이 다큐를 상영한다.
지금까지 수백 편의 다큐를 제작했는데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화면과 따뜻한 생태 이야기가 어우러져 매우 감동적이다.
스카우트 홀은(모임 장소) 라이 바닷가와 3분 거리에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외투를 챙겨 입고 겨울바다 탐색에 나섰다. 바닷가 교각에서 내려다보니 낮과는 달리 엄청난 숫자의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교각에서 바라본 겨울 바닷가의 밤 풍경. (왼쪽) 차가운 바람 따뜻한 불빛.
교각에서 바라본 라이 바다 풍경.(오른쪽) 조용한 파도 소리. 평화로운 낚시꾼들.
달과 별도 총총이 선명하다.
이 추운 겨울밤에 수중 다이빙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머리에 초록빛 조명을 부착해서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초록빛 여울이 바다 위에 진다. 그 빛 덕에 깊은 바닷속 생명체들의 부산한 활동들을 물 위에서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물고기와 다이버,
총총한 별 빛과 오렌지 가로등,
다이버의 움직임대로 이동하는 초록빛 여울,
잔잔한 파도소리, 고요한 바닷가.
처음 겪는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는다.
아이들은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교각을 돌아다니며 게를 찾아 나선다.
두둥.. 기둥에 딱 붙어선 게 한 마리.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고 누가 먼저 찾은 거냐며 감격해하고 즐거워했다.
게 한 마리에 이리 집중해 본 적이 있던가...
게 한 마리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워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더라..
는 시가 떠올랐다.
여 강사는 다음 주 수요일 보름달이 뜰 때 여기서 게를 관찰하기 위한 다이빙을 할 거라며 누구든 관심 있는 자는 오란다. 잠시 고이 접어 둔 다이빙 슈트가 생각났지만, 후덜덜한 겨울 날씨가 나를 망설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