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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Feb 22. 2022

호주 vs 한국, ‘지적 재산’을 다루는 문화 차이는?

요즘 또다시 유명인들의 학위 사칭, 논문 표절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사회가 들썩이며 그 특정인만 한정해서 뭇매를 때리는데, 솔직한 나의 생각은 ‘왜 이들만 매를 맞아야 하는데?”이다. 이들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고,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지식인이 대한민국 안에 몇이나 될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는 거다. 한국사회에 논문 표절이 줄을 잇는 이유는 내가 볼 때 한 가지다.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지적 재산’ 보호에 대한 개념이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호주에 살면서 겪었던 ‘지적 재산 보호’와 관련된 문화 충격을 몇 가지 나눠 보겠다.

첫째, 초등학교부터 ‘지적 재산’에 대한 개념을 가르친다.

아들이 다니는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만 돼도 ‘지적 재산’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가령 멜번으로 4일간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탐방했던 곳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반학기 동안의 프로젝트인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모든 정보는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기 마련이다. 선생님은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부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인용할 때 출처를 어떻게 밝힐 것인지, 밝히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교육한다. 남이 공들여 적은 글을 훔치는 것은 범죄라는 것을 인지시킨다.


둘째, 불법 다운로드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10여 년 전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를 돌아볼까. 주변엔 한 학생 천지였다. 부모의 도움 없이 공부를 하다 보니, 청소며 식당일이며 닥치는 대로 해가며 근근이 사는 호주 학생들. 그런데 그렇게 번 돈으로 몇 백 불짜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정품으로 사는 것이었다. 조금만 돌아보면 공짜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렇게 산 프로그램을 보여주면 옆에 있는 친구는 가격이나 산 곳을 물어보다가 자기도 가서 비싼 돈을 주고 또 사는 것이었다. ‘친한 친군데, 한 번쯤 빌려줘서 깔아주면 안 되나…’ 둘 다 가난한데, 둘 다 각자 비싼 정품을 사서 쓰면서 더 가난해지는 모습을 보고 당시엔 답답함을 느꼈다.

“정말 융통성 없네… 거 한 번쯤 눈 감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인간미도 없네. 친구 돈 없는 것 뻔히 알면 기왕 산 거 같이 좀 나눠 쓰지.” 사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즈음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충격을 받았었다. 호주에서는 컴퓨터를 살 때 아무것도 깔리지 않은 기기만 팔고 각자 자기가 필요한 소프트 웨어를 정품으로 구입해서 사용한다고. 그러니 당연히 소프트 웨어 회사는 크게 번창하고. 그런데 이 소프트 웨어 회사가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조사해보니, 불법 다운로드가 활성화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사업 망할게 불 보듯 뻔해, 아예 프로그램을 기기 안에 미리 깔아서 세트로 판매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나는 그때 삶 속에서 두 사회의 광대한 의식의 차이를 실감하고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셋째, 무형의 지적 재산을 실물 가치로 보는 관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 밖에도 내가 겪은 호주인들의 기막힌 예를 들어보자면,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를 때도 저작권료를 내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정품, 2천 년대 초반이니ㅎ)를 보자고 했더니, 일정 인원 이상이 보면 비상업적 목적이라 해도 저작권 협회에 의뢰를 해야 한다고 관련 법규를 들먹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이들 앞에서 별생각 없이 영화 한 편 불법 다운해서 본 얘기 했다가 범죄자 취급당했던 적도 있고…


이와 비교해서 한국 사회를 보자면, 지적재산 가치 분별에 대해서는 불법 무도덕 천지라 할 수 있겠다.

첫째, 학계가 의식이 없다.

논문 표절이나 학위 세탁 특히 외국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따온 사람의 양심에 맡기는 것 이외에 판별할 수 있는 공적 기관 하나 제대로 있는가? 호주엔 있다. (Overseas qualification unit) 외국에서 따온 학위는 물론 아주 사소한 기능 자격증까지, 그 학교가 호주 내의 어느 교육 수준과 비슷한지, 그 기능은 추가 교육 없이 바로 호주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인지를 판별하는 기관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외국물 먹었다고 하면 따지지 못하고 끔뻑 죽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설치는 사람도 줄지 않고.

조교나 학생들이 번역이나 짜깁기를 다하면, 교수 이름만 달랑 내다 붙여 파는 도둑질도 마케팅이란 이유로, 관행이란 이름으로 용납된다. 굳이 교수의 이름이 필요하고 그가 총지휘를 했다 해도, 각 챕터엔 글을 쓴 당사자의 이름이 당연히 남아야 한다. 이런 이들이 모여서 남의 논문을 심사하니 오죽하겠는가!


둘째, 언론도 개념이 없다.

각 신문사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기사를 복제하면서 원문 출처를 밝히기는커녕, 자기 신문사 기자 이름을 적는다. 그 글을 쓴 당사자의 고유한 노동을 존중하여 이름 석자 집어넣는 것, 출처를 밝히는 한 줄 집어넣는 일에 그렇게 인색하게 굴며 자신의 도적질을 정당화시키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으면, 논문 표절 따위는 근절될 이유가 없다.


셋째, 문화. IT계

초고속 인터넷 국가답게 모든 음원이나 드라마도 당연히 쉽게 거저 봐야 되는 걸로 인식되어 있지 않나. 창작자의 고뇌와 생계는 가끔씩 어떤 계기를 통해(작가가 굶어 죽었다는 기사를 보거나 할 때) 동정하기는 하지만, 너나없이 다하는 도적질이니, 제 값 주고 사보는 유통 경로를 찾기가 더 어렵기도 한 것이다.


작은 빵 한쪽을 훔칠 땐 가슴을 벌렁대면서도, 형태가 없다는 이유로 내 것 네 것 소유를 따지지 않고 제 멋대로 퍼 쓰고 마음대로 공유해 버리는 끔찍한 도둑질을 범죄로 인식하는 ‘지적 재산 보호’ 의식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013/3/21씀)




10년전 글이다.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여전히 반복되는 범죄들을 보면 어릴때 시작하는 체계화된 조기 교육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 사진은 NGV(National Gallery of Victoria) 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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