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호주의 교육 과정이나 진도는 초중고를 떠나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느슨하고 자율적이다. 그런데 호주에도 선행학습(Jump Start)이라는 게 있어서 좀 놀랐다. 그리고 그 목적을 들었을 때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호주 학생들은 11월 즈음이 되면 과제를 마치고 시험을 보며 조금 서둘러 한 학년을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방학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대략 2-4주 정도 일찍 현 학년 과정을 마치고 다음 학년을 선행 준비하는 것이다. 반 배정을 새로 하고 내년에 들을 선택 과목들을 신청하며 새 교실로 아예 옮겨 새 담임 선생님과 새 반 친구들을 만난다. 새 학년 시간표에 따라 전과목 공부를 미리 시작한다. 내 아들을 예로 들자면 9학년 말에 10학년 공부를 한 달 먼저 시작하는 셈이다.
난 학기말에 아이들이 정신줄 놓고 나태해질까 봐 미리 조여 놓으려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옆집 엄마랑 대화를 나누다가 그 목적이 전혀 다름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새 학년 새 학기에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단다. 1년 동안 정들었던 학급 친구와 작별을 하고 긴 방학을 한 뒤 별안간 새 교실에서 새 담임과 반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이 기대되고 기쁘기도 하겠지만 심적 부담도 크지 않겠는가! 새 학기에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이나 며칠밤 잠을 설치는 아이들 심정을 상상해보라.
이런 아이들이 새 학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선행학습 제도를 만들었단다. 학기말 한껏 여유가 생긴 아이들은 옛 친구들과 수강 신청도 같이 하고 새 교실도 이리저리 둘러보고 사물함도 정리하고 옮기면서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하게 된다. 새로운 반 친구들을 기대하며 만나 인사 나누고 점심시간엔 다시 옛 친구들과 모여 놀며 자연스럽게 친구관계도 변동한다. 신청했던 선택 과목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면 이 기간에 변경할 수도 있다.
호주의 선행 학습은 학생들이 다음 학년의 학교 생활을 심리적 정서적으로 잘 준비하고 적응하도록 돕는다. 상급학교로 이동할 때는 특히 그렇다. 아들이 유치원을 마칠 즈음 길 건너 초등학교로 입학할 예정이었는데, 두 달이 넘는 기간에 걸쳐 적응 교육을 했다. 처음 한두 주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유치원을 방문해 같이 논다. 미래의 선후배가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 3-4주에 걸쳐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시간을 늘려가며 유치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첫 주엔 1 시간 정도 교실 운동장 화장실 등 학교 시설을 안내받고 돌아온다. 그다음 주엔 1학년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한 시간 동참하고 돌아온다. 또 그다음 주엔 수업을 하나 듣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나면 마지막 한 두 주는 하루 종일 수업을 함께 하며 한 단계씩 적응을 더해 나갔다. 아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새 학교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했고 즐겁게 입학을 했다.
아들이 중학교를 입학할 때도 여러 날에 걸쳐 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데, 그럼에도 등교 첫날을 앞두고 처음 혼자 타는 스쿨버스를 놓칠까 봐 조금 긴장을 했고 심지어 친구들은 버스를 놓치는 악몽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함께 웃었던 기억도 있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인가 보다.
한국의 선행학습이 남들 쉴 때 미리 치고 나가 우위를 선점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호주의 선행학습은 교육받는 자의 정서와 안전을 배려한다는 것이 큰 차이라 하겠다. 한국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지만 행복 지수가 낮고 한국 성인들은 예전보다 부유해졌지만 늘 피곤하고 불안하다. 성장 과정에서 충격 완화는 커녕 충격을 증폭하는 교육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호주 사회는 어릴 때 이런 교육을 경험해서인지 이후로도 인생 전반에 거쳐 이직 이사 결혼 등 환경의 변화가 큰 상황이 닥칠 때 긴장을 풀고 자리를 잘 잡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가령, 결혼한 커플이 1년쯤 지나서 '결혼식에 와주어 고마웠다, 우리는 잘 산다'는 감사의 말을 카드로 전하기도 하고 새집으로 이사한 이들도 짐 풀자마자 집들이를 바로바로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