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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Nov 08. 2022

호주, 승마 문화는 이렇더라.

전국 승마 점핑 대회 참관기

내가 사는 동네는 (Mornington Peninsular) 곳곳에 승마장이 있을 만큼 말과 관련된 산업이나 스포츠가 활발한 곳이다. 그중에도 보니오 승마장은 국제 경기를 치를 만큼 시설과 규모가 넉넉한데 이번 주 내내 전국 승마 대회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 오후 잠시 들러봤다.

광활한 주차장에 이동식 마구간(트레일러)이 가득한 걸로 보면 많은 이들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데 막상 무료로 개방된 경기장 주변은 관계자들만이 삼삼오오 모여 여유 있게 그러나 나름 열렬하게 응원도 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순서대로 나와 경기장에 설치된 다양한 장애물들을 넘으며 한 바퀴를 돌아 나온다. 장애물에 걸려 막대를 떨구지 않아야 하고 빠른 시간에 돌아오면 가산점이 붙는 듯했다.  

규칙을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안타까운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박수갈채가 나오기도 했는데, 참가자와 말의 집중을 흐리지 않기 위해 절제를 하는 듯도 보였다.   

저 트레일러 안에서 경기 중계자가 경기 내용도 설명하고 참가자도 안내하고 했다.

언뜻 보면 그들만의 호화 스포츠 혹은 비인기 종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호주인들은 승마나 경마를 무척 사랑한다. 멜번컵 경마대회가 열리는 날을 빅토리아주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이다. 학교도 직장도 문을 닫고 온 국민이 게임에 몰두하며 티브이로 하루 종일 중계도 한다. 멋지게 차려입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플래밍턴 경마장을 찾는 이들로 시내 열차가 가득 차기도 한다.

아들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애완동물을 데려와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개 고양이 새 물고기 기니피그 햄스터 등등의 모든 동물 사이로 말을 끌고 온 아이도 있었다. 그걸 보고 놀란 사람은 나 하나뿐..^^ 그냥 말 한두 마리쯤은 키우는 집이 그 동네엔 흔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이웃들도 말에 대한 지식과 저마다의 경험들이 풍부했다.

승마 선수들은 일 년 내내 이 동네 저동네로 온 가족이 장거리 여행을 다니며 경기를 치르는데, 이런 고비용들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산업 자체가 크고 다양하고 활발하다. 말을 교배시켜 새끼를 팔기도 하고 트레이너로 활동도 하고 말 전문 수의사 영양사 미용사 체중관리사도 있다. 이들이 말에 들이는 공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말을 사랑하는 층이 두터운 유럽 국가나 일본 한국 등으로 수출도 하고 기술도 전수한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 재미있다.

경기장 주변에서 일상을 나누고 휴식하는 이들.
또다른 경기장과 관중석. 말에 관한 다양한 서비스 광고.
경기장 뒤 개인 훈련장.
이동식 마굿간 트레일러는 1억이 넘는다.


10년 전에 쓴 승마대회 글도 덧붙여본다.


호주 '알파 걸'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이런 것. (2012/05/01 씀)    

            

스킵튼 집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이웃마을 캠퍼다운에서 재미난 대회가 열렸다. 'Horse Trials'.

한국말로 마장 마술 대회쯤 될 듯한데 말 구경이나 할 겸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다.   

주말 오후 쨍하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무엇보다 좋았다. 캠퍼다운 양옆으로 블린 메리와 그노툭이란 두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 마을을 여러 번 지나다니고 둘러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

그 호수를 지나니 길 양옆으로 여러 대의 말 트레일러(이동용 마구간)들이 보였고 타운 스포츠 컴플랙스란 경기장이 나왔는데 그냥 경계를 알 수 없는 광대한 벌판이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 햇살을 받으며 아이스크림 따위를 먹고 있었고 항상 그렇듯이 경기를 하는 사람이나 구경을 하는 사람이나 각자 자기가 알아서 하고 싶은데로 하는 분위기였다.     

드레시지 경기 장면

경기는 대략 세 가지로 구분됐다. 정확한 한국 용어가 있겠지만 모르겠고 내 맘대로 명칭을 붙여보자면  

Dressage (고등 마술-말을 타고 달리다가 물구덩이에 뛰어들고 장애물을 건너뛰고 다시 들판을 달린다),

Cross-country (들판 달리기), Showjumping disciplines (장애물 넘기-이미 설치된 다양한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말을 통제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   

드레시지는 좀 더 긴 호흡으로 여러 기술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쇼우 점핑은 단기적 집중적으로 기술을 선보이는 것 같은데 나의 설명은 그야말로 한번 훑어본 뒤의 느낌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너무도 새롭고 재미난 스포츠였다. 드레시지 경기가 펼쳐지는 물 구덩이 앞에 앉아 있으면 저 멀리서부터 힘차게 달려오는 기수와 말의 숨 가쁜 호흡과 찰떡같은 대화가 그대로 들린다. '자! 이제 물이다. 할 수 있지? 가자!'

철퍼덕대며 물에 뛰어들었다가 주저 없이 튀어나오고 숨 고를 새도 없이 다시 눈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을 가뿐히 뛰어넘고 다시 벌판을 한 바퀴 돌아 유유히 사라지는 말과 기수들. 여유와 긴장, 스릴과 품위가 골고루 느껴졌다. 호주 전역과 일본 포르투갈에서 온 선수까지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알고 보니 이 대회는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국제대회로 수차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으며

독일 벨기에 미국 뉴질랜드 등의 선수들이 참가를 하고 일본은 국가대표들이 아예 이곳에서 직접 말을 키우고 생활하며 다른 국제대회에 참가할 만큼 마장인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소개했던 '캠프 드라프트'와는 분위기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달랐는데 캠프 드라프트가 주로 카우보이들이 경쟁하는 터프하고 남성적인 분위기였다면 호스 트라이얼은 어린 10대 소녀들의 모습이 꽤 자주 보이는 여성적이면서도 좀 더 섬세한 느낌의 스포츠라는 것.   


=> '캠프 드라프트'를 더 알고 싶다면? 19화, 이색 승마 스포츠 '캠프 드라프트' 아시나요? (brunch.co.kr)

 

칼라풀한 폴로셔츠에 딱 달라붙은 재킷과 바지, 긴 가죽 부츠를 신은 금발 소녀들의 모습은 참으로 귀족적인 품위를 느끼게도 했는데, 경기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또 낯선 풍경이 이어진다. 이 아름다운 소녀들이 똥 치우고 풀을 뜯어다 먹이고 말을 씻기고 온몸에 기름 발라주고 털 빗겨주고 온갖 더러운 허드렛일을 직접 다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망치를 들고 말발굽을 가는 일까지 했다.    

   

이들은 말과 함께 마구간에서 잠을 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이다 보니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데 트레일러를 사람용, 말용으로 따로 끌고 올 수도 없고 사람이야 마구간에서 어떻게든 끼어 잘 수 있지만 말이 사람용 트레일러에 들어올 수는 없으니 말 위주로 트레일러를 끌고 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똥내 나는 마구간, 말 틈에서 소녀들은 짐승처럼 구부러져 잔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 이유 외에도 정서적 이유가 있는데, 말과 기수가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함께 하고 일상적으로 교감 함으로써 더 좋은 경기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스포츠는 결국 기수와 말의 호흡으로 승부가 난단다.   

대부분의 기수들은 네댓 살 때부터 자기 말을 소유하는데 그때부터 그들을 먹이고 씻기고 관리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러 해왔으며 경기를 앞두고는 먹고 자는 등 하루의 일상을 거의 붙어서 같이 한다니 그저 놀랍다. 대회 참가자의 상당수가 10대 소녀라는 것도 놀랍지만 이 나이만 돼도 벌써 자기 말에 대해서는 모든 부분에 있어 엄마나 박사쯤 되는 것이다. 소녀들이 땀과 눈물로 돌보는 말들은 그래서인지 정말 호사스럽다. 털도 부들대며 빛이 나고 잘 발달된 근육이 탄탄하고 아름답다.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에 이만큼 매진할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햇빛 아래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한 컵에 세상만사를 잊는 나 같은 구경꾼들도 그들로 인해 잠시 행복했었던 그런 날이었다.

크로스 컨츄리
소녀들은 말발굽도 직접 갈고 마굿간에서 말과 일상을 같이 한다.
말들은 VIP, 기수들은 노예...
쇼우 점핑 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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