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란?
어느날 오후, 소렌토 뒷바다(Sorrento Backbeach)를 걷다가 이 동네 모래언덕에 터를 잡고 사는 에키드나(Echidna)를 만났다. 바늘두더지 혹은 고슴도치쯤으로 분류되는 야생동물이다. 긴 코를 킁킁대며 걷다가 모래 속으로 코를 들이박고 파내기도 하고 또 두리번대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귀여워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나의 존재를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데 내가 다가가도 잠시 멈춰 설뿐 뒤돌아 내빼거나 숨지 않는다.
자신과 나 사이에 있는 공기를 감지하며 내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천천히 하던 일을 계속한다. 사진을 찍어도 괘념치 않는다. 둔한 동물인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호주에서는 캥거루나 퍼숨 같은 다른 날렵한 야생동물들도 종종 놀랍도록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때로는 다가온다. 자기들이 공격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으리란 걸 이미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인간과 야생 동물이 평화롭게 대면하는 이 상황 속에서 나도 행복을 느낀다.
야생 동물이 평안한 사회에서는 공존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긴장을 풀고 산다. 전쟁도 경쟁도 범죄도 덜 흔한 사회일 것이다. 다투고 할퀴고 무너뜨리고 도망가고 움츠러들고 몸을 숨길 이유가 없이 서로 가던 길을 가고 하던 일을 하다가, 만나면 서로 반가운 세상이 확장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도는 제 리듬대로 출렁이고 서퍼는 숨을 고르며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
강아지 풀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하루 해는 오늘도 아름답게 저문다.
고슴도치도 나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