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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Dec 07. 2022

호주 바닷가, 친구와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들..

맨날 이렇게 놀고 싶구나..

원래는 3 커플이 모이기로 했었다. 

20년이 넘도록 이 커플과 저 커플과 따로 알고 만나고 지냈는데, 세월이 흘러 우리가 다 같이 서로 알게 되었고 우연히 결혼기념일이 며칠 간격으로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다 같이 모여보기로 했고 함께 기념일도 축하해 보자고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미식을 좋아하는 커플이 제법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나름 기대를 했는데 하루 전날 한 커플이 몸이 좋지 않다 하여 취소를 하게 됐다.

우리는 원래 친구가 아니었다. 나이 차이도 20살이 가깝게 날만큼 어려웠던 선배이기도 했고 이민 초기에 여러 도움을 받기도 한 관계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너나없이 늙어갔고 자식이며 지병이며 되는 대로 얘기 나누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영어를 언어로 하고 문화가 수평적인 사회여서 가능한 관계이지 싶다.

우리는 만남을 연기할까 하다가 두 커플만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재택근무 중인 그가 우리 동네로 이미 휴가를 와있는 상태였고 회사 줌 미팅은 오후에 잡혀있으니 간단하게 점심이라도 먹자는 거였다. 동네 골프 클럽 레스토랑에서 금요일 점심 때는 저렴한 메뉴를 팔았다. 음료를 포함해 15불. 호주에선 김밥 두 줄만 먹어도 이 가격이다. 모로코식 쿠스쿠스 샐러드는 따뜻하고 맛있었다. 이 풍경에 이 음식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니... 자주 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주부터는 여름 시즌이 시작되어 더 이상의 특가는 없단다.ㅡㅡ

그녀는 네덜란드계 이민 2세다. 그래서 나름 같이민자인 나를 잘 이해한다고 스스로는 믿는다. 언어며 문화며 인종이며 경제력이며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이민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는 부분을 간과한다. 그래도 가끔은 같은 이민자로서 통하기도 한다. 그녀는 종종 친척들을 만나러 암스테르담을 가는데 그곳에서 묘하게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낀단다. 말기 암환자인 고모가 안락사를 결정하여 조만간 그녀를 보러 갈 예정이란다. 호주와는 달리 안락사가 합법화되어 있고 이미 가족들도 동의를 다 한 마당에 외국에 사는 먼 친척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생명을 주관한다는 것을 믿는 그녀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자기를 너무 예뻐해 주는 고모랑 보내는 시간이 좋고 그곳이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지만 개방적인 사고나 급진적인 법들이 불편하고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간혹 한국인들은 서양인들을 모두 미국인으로 퉁쳐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아시아인을 모두 중국인으로 여기는 서양인들의 시각이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편견 일 수 있다. 가끔 호주인과 다른 외국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비교하고 차이를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서 좀 흥미롭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의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 문화가 있는지 심지어는 작은 스위스 조차도 독일 쪽 마을과 이탈리아 쪽 마을의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느껴보면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놀랍기도 하다.

휴가 계획, 크리스마스 선물, 가족, 의료보험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이어가다 보니 그의 회사 미팅 시간이 다 되었다. 커피는 테이크 어웨이 해서 반쯤 마시다 헤어졌다.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세상은 저마다 다르면서도 또 계속 변해간다. 그래도 친구와 만나서 밥 먹고 노는 사교의 방식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조금씩 달라도 우리는 시간과 가치를 부족하지 않게 공유해왔다. 세월이 흘러도 이 친구들과 결혼기념일을 빙자해서 같이 모여 계속 삶을 나누고 싶다.

이날 저녁 드로마나(Dromana)의 석양은 또 이렇게 변함없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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