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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an 03. 2023

호주 바닷가, 새해 풍경

조용히 산책하며 한 해를 시작하다.

한여름에 새해를 맞는 일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보통은 이즈음에 방학을 맞아 캠핑을 떠나고는 했는데 올해는 몇 가지 이유로 루틴을 바꿨다. 호주에서는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고 신년엔 친구들을 만난다. 십 대 아들이 친구들과 송년 파티를 한다며 나가자 남편과 둘이 집에 남게 됐다. 연말이나 설날엔 뭔가 특별한 일을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들이 늘 있어서였는지 우린 몇 번씩 서로에게 '외로운가? 심심한가?' 되물었다. 그런데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조용히 지난해를 정리하고 신년 계획들을 세워보는 이 시간이 소중했다. 가볍게 점심을 먹고 뒷바다를 산책하기로 했다. 이 즈음엔 피서객과 방학을 맞아 여행을 오는 사람들로 인해 모닝턴 반도의 모든 바닷가는 평소보다 10배로 불어난 인파로 북적대고는 한다. 그래서 평소에 다니던 앞바다나 잘 알려진 곳들을 피해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 St. Andrew 바닷가로 왔더니 다행히도 여전히 조용한 모습이었다.

텅 빈 바닷가를 걸으며 며칠 전 이곳 티브이에서 우연히 보았던 판타지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 (Red Turtle)을 떠올렸다. 아들이 학교에서도 보았던 좋은 영화라고 추천하기에 별생각 없이 나란히 앉아 봤는데 서정적 그림과 별다른 대사도 없이 자연과 인생을 잔잔하게 반추하는 내용들이 아름다웠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아카데미와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꽤 유명한 벨기에 작품이었다.

이 바닷가가 그 영화의 배경과 꽤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거북이와 게, 철새 등등 바닷가의 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이곳 바닷가에서도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작은 새를 보호종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지금이 마침 산란기라 알과 아기새를 보호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림판과 보호구역을 설정해 놓았다. 사람들은 이들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선을 넘지 않는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바위 사위나 모래밭 위에서 홀로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사색을 즐긴다. 새도 사람도 평화로운 새해 풍경. 그 안에 슬며시 스며들어 감사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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