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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Feb 15. 2023

뉴질랜드 크루즈, 크라이스트처치

재난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도시

한 밤 자고 일어나니 크루즈는 리틀튼(Lyttelton)항에 도착해 있었다. 어제처럼 항구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남섬의 대표도시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제와 달리 버스를 근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근처에 선 임시 마켓과 작은 가게라도 둘러볼걸... 아이나 노약자가 있는 일행들은 긴 줄에서 벗어나 우버 택시를 부르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다리며 앞뒤로 줄 선 사람들과 사는 얘기나 나눌 수밖에. 대체로 멜번 어드매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나름 동질감을 느끼며 투덜대다 보니 버스가 왔다. 주말이라 배차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운전기사는 일일이 동전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며 친절하고 느긋하다.

붉은 트램도 멜번과 동일하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호주와 풍경도 분위기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다른 나라에 왔다기보다는 호주의 어느 다른 도시에 왔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대부분의 것들이 친근하고 익숙했다. 다만 땅덩이가 작아서인지 집이나 건물들이 좀 더 작게 촘촘히 있어서 미니어처 호주를 보는 것도 같았다. 또 나라나 경제규모가 작다 보니 많은 뉴질랜드 젊은이들이 호주로 일자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시내 중심부에서 버스를 내리니 가장 먼저 성공회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2011년 대지진으로 이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 첨탑이 무너져 내렸을 때 전 세계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크루즈 안에서 가이드에게 듣자 하니 뉴질랜드는 1년에 70,000회에 달하는 지진이 일어난단다. 다만 대부분 강도가 약해 느끼지 못할 뿐. 피해 정도가 심하고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워 복구를 포기하기로 했다가 시민들의 거친 반발로 재건축을 나선지도 수년이 지났다. 보수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기금도 여전히 모금 중이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시내물.

날씨가 일주일 내내 무척 좋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너넨 축복받은 거다. 지난주엔 파도가 높아 크루즈가 정박도 못하고 이동했다' '비가 내려 사람들이 배 안에만 있었다'는 등등의 말을 했다.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멜번에 도착 했을 때 오클랜드에서 역사상 없던 큰 폭우로 홍수가 났고 무수한 이재민들이 피난을 떠났다. 어제는 갑자기 태풍이 전 국토를 덮쳐 건국 이래 3번째 국가 재난 비상령이 내려졌단다. 뉴질랜드 재해 소식이 뉴스를 덮을 때마다 지인들이 '너넨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하니 감사하다 못해 기분이 좀 얼떨떨하다. 

세계 버스킹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별별 거리 공연이 이곳저곳에서 열렸다. 오늘도 커피 한잔으로 가볍게 점심을 때우며 이름도 모르는 어느 밴드의 감미로운 연주를 즐겼다.

시냇물을 따라 시내를 걷다 보면 

복고풍 선착장에서 카누를 타는 이들도 보이고 

아름다운 보타닉 가든도 나오며 

블루스톤이 멋들어진 미술관도 나타난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  지진 피해로 5년여를 문 닫았던 미술관이 다시 문열었을 때 어느 작가가 이 지역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만들었다는 유명한 네온 작품. 밤에 불이 들어오면 메시지가 칼라풀하게 눈에 뜨일 텐데.... 지금 지진 재해로 고통 속에 있는 터키나 시리아등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관 안을 둘러볼 시간이 부족해 아쉽지만 지나쳤다. 걷다보나 오늘도 만보를 넘겼다.

요청을 하면 무릎을 꿇겠다는 따뜻한 버스 안내문. 입구가 낮아져 장애인이 탄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한국의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얻겠다고 그 몸을 끌고 지하철에서 투쟁 중인데...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상식적일 때  그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은 안도한다. 한국 사회가 부유해졌지만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을까.


버스를 내려 항구로 걷다가 멀리 크루즈가 보이자 또 마음이 느슨해진다. 피곤한 다리를 뻗고 잘 방이 저 안에 마련되어 있다. 맛있는 저녁밥도 챙겨주겠지. 오늘도 하루 해가 아름답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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