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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Feb 28. 2023

뉴질랜드 크루즈, 타우랑가 키위 농장은 이렇더라.

크루즈에서 구매한 투어관광 이야기

이 날 아침 일찍 도착한 타우랑가 (Tauranga)는 항구와 도심이 붙어있어 크루즈에서 내리자마자 그대로 이어진 바닷가 산책로를 걸을 수 있었다. 날씨가 청명하고 온화해서인지 아침인데도 물놀이를 하거나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평화로운 아침 풍경을 즐기며 좀 걷다 보니 눈앞에 아름다운 작은 산이 나타났다. 걸어서 3-4킬로였던가, 왕복 1-2시간 정도의 등반이라 오르내리기 딱 좋은 코스였지만 아쉽게도 아래만 돌아보았다.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버스투어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크루즈를 예약하면 여행사는 선심 쓰듯 몇백 불의 돈을 돌려준다. 현찰은 아니고 배에서 쓰라는 용돈을 주는 것이다. 다 마케팅의 한 방식이겠지만 어쨌든 공돈이 생겼고 배에서만 쓸 수 있으니 사람들은 쇼핑을 하거나 투어 상품을 사거나 한다. 크루즈 안엔 값비싼 보석이나 그림부터 자잘한 군것질 거리나 기념품을 파는 다양한 상점들이 있다.

우리는 크루즈 여행이 익숙해질 즈음에 좀 다른 경험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이날 버스투어 상품을 구매했는데, 막상 타우랑가에 도착해 보니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냥 바닷가 산책하고 마우아오 산을 등반한 뒤 마을의 예쁜 카페에서 차 한잔 마셔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온천물로 만든 수영장도 마을 한가운데 있어 다음에 오게 되면 수영복을 챙겨 오자고 얘기를 나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다음에 온다면 하루 전인 네피어에서 버스투어를 하는게 나을 듯 싶었다.

배구대회라도 있는 건지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모여 게임을 한다. 활기차고 행복한 모습에 여기가 지상낙원이 아닌가 싶었다.

아담한 마을은 대략 한 시간 걸으니 다 돌아본 듯했다. 다시 크루즈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투어 버스에 올랐다.

10여분을 달린 첫 도착지는 엘름 선교 센터. 200여 년 전 사역을 위해 이 땅에 첫 도착한 선교사님이 황무지를 개간하고 벽돌 한 장 한 장 올려가며 지은 교회와 도서관 사택 등등을 돌아보았다. 당시의 의상을 입은 가이들들이 문 앞에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도 사연이 깊다. 유럽에서 물 건너온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엔 영국에서도 책 한 권의 가치가 어마어마할 때라 그 몇 권을 고이 구해 배에 싣고 모진 풍파를 몇 달 동안 헤쳐 신대륙에 들여오는 일은 보통의 모험 이상이었단다. 그럼에도 이 목회자는 자신의 사택을 짓기에 앞서 도서관부터 지었고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이 방에 모여 사역과 신대륙 개척에 대한 논의를 했었단다.

이 지역 유럽 이주민과 마오리 원주민의 선교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곳은 몇 세대에 걸쳐 한가족이 관리하다가 지금은 국가에 헌납돼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사택 공간들.

주인장은 마오리 공예품도 수집했다.


작은 예배당은 지금은 결혼이나 특별한 모임 장소로 쓰인단다. 친절한 가이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석구석 돌아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다시 버스에 올라 이 동네 특산물이라는 키위 농장으로 향했다. 10여분을 달렸나 멀지 않았다. 농장입구에서 부터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는 동안 천지사방이 모두 키위 덩굴이었다. 텐트를 세우듯 끈을 타고 올라 자라는 모습이 독특했다.

버스에서 내려 덩굴 밑으로 들어가 바라본 키위들은 흠하나 없이 싱싱했고 보기만 해도 침이 돌을 만큼 탐스러웠다. 포도송이 같기도 하고 수십 개 열매의 무게를 버티는 줄기의 힘이 놀랍기도 했다. 평생을 이 농장에서 일했다는 분이 거의 반시간에 이르도록 세세하게 키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뭐 그리 할 얘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듣다 보면 놀라웠다.

키위의 당도를 늘이기 위해 열매를 많이 맺게 하기 위해 벌레를 막기 위해 어떤 연구를 했고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극복했는지에 대한 역사다. 농학 유전공학 자연과학 기상학 경제학 노동법을 총망라하는 태어나서 첨 들어보는 키위 키우는 이야기다. 부드럽고 예민한 과육을 짓무르지 않게 장기 보관하는 방법을 마침내 개발해 한국등 해외로 수출까지 하게 됐다는 대목이 클라이맥스다.^^

수확철이 되면 세계 각국의 워킹홀리데이 젊은이들이 몰리고 피지나 파푸아뉴기니등 주변 섬나라의 노동자들이 국가 간 협정에 따른 단기 워킹비자를 받아 대거 이주하여 이곳에서 몇 달간 생활을 한단다. 그러니까 이 키위 농사는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주변 섬나라들까지 먹여 살리는 중요한 수입 파이프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노동자를 제때 구하지 못해 큰 타격을 받았단다.

근처 마을회관에 들러 키위도 맛보고 키위 주스와 스콘도 먹었다. 키위로 만든 사탕이나 잼 와인 주스 등등을 판매했다. 키위 이미지로 만든 키위 농장 본사 건물.

그렇게 두 군데를 방문하고 투어를 마쳤다. 버스 기사분이 배로 돌아갈 시간이 좀 남았는데 바닷가 마을을 한 바퀴 돌겠냐며 즉흥 가이드를 해주었다.  

이 분은 주로 부동산 얘기를 해서 관광객들 귀를 솔깃하게 했다. 이 마을이 예전에 소박하고 조용한 어촌이었는데 보시다시피 경치도 좋고 바닷가와 마을이 인접해 있는 등 조건이 좋아 인기 휴양지로 부각되었다는 것.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도심을 벗어나 사는 것에 관심이 늘고 해외 유명인들까지 몰려와 값이 미친 듯이 뛰었는데 이 작고 허름한 집이 얼마 전엔 80억에 팔려 뉴스에도 나왔다는 등등.

사람들은 '어흐, 말도 안 돼' '어쩌자고 집값이 이리 오르냐'며 혀를 차다가 풍경에 감탄을 하다가 한다.

시원하게 뻥 뚫린 듯하면서도 아담하고 평화로운 듯하면서도 여기저기 뭔가를 개발하고 있고 조용한 듯 세상의 흐름을 타는 타우랑가.

아침엔 두 발로 걷고 오후엔 버스로 한 바퀴 돌아 둘러보니 또 이렇게 하루가 간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타우랑가가 이 매력을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겠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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