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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08. 2021

호주, '폭력 예방'은 '유아교육'에서 시작된다.

성폭력 학교폭력을 막으려면.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스톱’을 외치거나 ‘호루라기’를 불어 경고하는 제도를 의무화하겠다는 기사를 읽었다. 호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화’(제도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사회적으로 구성원 사이에 체화되어 있다.)가 있어서 내가 체험한 대로 나누어보겠다. 

  

1.   유아들의 사리분별력을 키운다. 


아기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우는 단어가 ‘예스’나 ‘노우’ 일 만큼 아기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도 사리분별력이 있고 자신을 방어할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호주 사회는 본다. 호주 아기들은 ‘No’란 말을 할 줄 알 때부터 (즉, 한 살 즈음) 그 단어를 어떤 상황에 써야 하는지 익힌다. 부모들은 누군가 

1) 너를 밀었을 때, 

2) 네 과자를 빼앗아 먹었을 때, 

3) 네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 

4) 놀이터에서 새치기를 할 때 

 ‘No’ ‘Stop’ ‘Don’t do that’ 같은 말들을 크게 외치도록 가르친다. 그렇게 교육받은 아기들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정말로 울지 않고 상대를 노려보며 이 말을 외친다.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


유아들의 세계는 의외로 (혹은 짐작하는 대로^^) 매우 무질서하고 거친 면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 하고만 생활을 해서 사회를 잘 모르고 타인에 대한 의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 제 몸도 제 맘대로 못 가누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잘못을 했을 때 그냥 ‘아기니까’ 라며 덮어버리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데 이유는 통제되지 않는 한 아기가 야기하는 문제들도 인해 부당한 피해자가 아기 사회에서 다수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기가 뒤뚱대고 걷다가 옆 아기를 한대 치거나 민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은 아기를 사이에서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런데 한 대 맞은 아기는 중심을 못 잡고 나가떨어져 뒹굴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호주 엄마들은 상황을 보는 대로 내 아기 네 아기를 따지지 않고 밀은 아기에게 ‘No! We don’t do that!’ (그만해! 우리 사회는 이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아!)을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외친다. 남의 아기에게 ‘노우’라고 외치는 거 쉬운 일 아니다. 특히 내 아이가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일들이 엄마들 사이에서 마음의 부담이나 감정적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하는 훈련도 어른들 사이에서 필요하다. 애들 싸움이 엄마 싸움이 되면 그 사회는 그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만인의 규칙으로 사회 안에서 공포되어야 한다. ‘쏘리’란 단어를 말할 줄 아는 나이라면 (보통 두 살 미만도 가능하다.) 아기들끼리도 사과를 시키고 서로 포옹하며 화해하도록 어른들이 주선한다. 


아들과 함께 세 살 미만의 아기와 엄마들이 모이는 ‘플레이 그룹’(동네 엄마들 10여 명이 자체적으로 구성한 모임이다. 교회 홀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였다.)을 3년 여간 다니면서 이 점이 매우 놀라웠다. 엄마나 어른이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아기들은 알아듣고 상대에게 사과를 한다. 같은 실수가 무수히 반복되지만 서너 살만 돼도 아이들 사이에 질서가 잡힌다. 엄마들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방어하거나 주변 어른에게 잘못된 일에 대한 보고를 하거나 한다.    


2.   어른들은 공정하고 객관적이다. 


3살, 1살 자매가 다퉜다. 동생이 자기 과자를 먹다가 언니 접시에 손을 댄 것이다. 언니는 ‘No’를 외치다 울었고 엄마가 달려왔다. 


한국 엄마 : (세 살짜리에게) 너는 언니가 돼서는. 애기가 뭘 안다고. 동생인데 좀 주면 어때서 그래? 이렇게 욕심부리면 나중엔 동생만 과자 줄 거야. 

호주 엄마 : (한 살짜리에게) 너는 네 접시의 과자만 먹어. 언니 접시에 손대지 마. 남의 몫을 탐내면 안 되는 거야. 더 먹어야겠으면 엄마한테 말해. 


문화의 차이겠지만 그 폭이 아주 크다. 나는 호주 양육 방식에 한 표를 던진다. 

한살이나 세 살이나 다 어린데(약자인데) 언니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건 무리이다. 게다가 자기 몫을 잃었는데 왜 혼나야 하는가. 자신을 방어하라고 ‘노우’라고 외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동생을 미워하는 맘이 커지고 한입으로 두 말하는 엄마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엄마 안 볼 때 힘을 이용해 동생을 괴롭힌다. 엄마가 인정해 준(?) 언니라는 권위를 이용해서. 또 엄마도 권위적으로 자기 맘대로 규칙을 어긴 거라며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고 추후에도 반항하게 된다. 

호주 엄마의 경우 한 살 아이는 당장 엄마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자기 행동이 문제가 있음을 감지한다. 다음엔 조심한다. 세 살 언니는 엄마의 공정성을 신뢰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에 동생에게 잘해준다. 


왕따 사건이 확대되는 이유는 공정치 못한 주변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 선생들 가해자 부모 등등.. 가정이나 사회 안에서 공정에 대한 체험을 충분히 못한 아이들과 어른들은 약자를 괴롭히거나 혹은 고통을 받아도 침묵을 하게 된다. 아기들은 유아 때부터 가정에서 사회에서 공정함을 배워야 한다.   


3.   자식의 공격성을 유아 때부터 철저히 통제하라. 


그런데 ‘노우’만 외친다고 방어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노우’라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던 행동을 멈추도록 하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왕따 피해 학생이 30만 이란 기사가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해 학생이 150만이 넘는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당 5명이 붙어 괴롭힌다고 가정했을 때, 기사를 보면 대부분이 그 이상이지만) 고로 자기 자녀가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5배나 많다고 볼 수도 있는 건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내 자식이 피해를 보지 말아야 될 텐데 라며 걱정을 한다. 행여 내 자식이 가해자가 되면 어쩌나 같은 걱정은 덜 하는 것 같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향해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는데, 한국 부모들이 특히 그렇다. 


호주 아기들은 신생아 때부터 자기 침대에서 혼자 잔다. 엄마가 아기를 눕히고 동화책을 한 권 읽어준 뒤 불을 끄고 나오면 그만이다. 간혹 중간에 잠을 못 자고 나오는 아이도 있지만 조용히 타일러서 들어가 자도록 한다. 한국 엄마들은 아기들 재우느라 밤마다 생고생을 한다. 옆에 누워서 토닥이고 노래하고 어르고 다시 일어나 업고 밤마다 난리이다. 호주 아기들은 수저를 쥘 때부터 (한 살 넘으면) 스스로 밥을 먹는다.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지만 한자리에서 스스로 먹는다. 한국 엄마들은 밥그릇을 들고 쫓아다니며 어르고 달래서 한 숟가락씩 떠먹인다. 

난 단순히 육아 방식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아기와 같이 자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문화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호주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통제하는 능력이 대체로 있고 한국 부모들은 놀라울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도대체 자기 아이를 제어하지 못한 채 뒤만 졸졸 쫓아다니고 애들한테 휘둘리면서 육아가 어렵다고 애들은 다 이렇게 크는 거라고 체념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부모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사회적으로도 위험하다. 내 체험을 토대로 감히 말하지만 한국 유아(한국에 살든 호주에 살든-즉 엄마가 한국 사람인 경우)들은 호주 유아들보다 다루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럼 또 매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만큼 위험하고 추악한 경우가 없다. 폭력 없이도 얼마든지 대화로 할 수 있다. 일관성 지속성 이성이 주 관건이다.) 


4.  ‘No’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한 가지로만 해석한다. 


‘No’를 No로 듣고 해석하는 사회적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가령, ‘여자들은 좋으면서도 싫다고 한다’며 ‘노우’에 대한 해석을 잘해야 한다는 낭설이 한국 사회에 있는데, 이와 같이 ‘노우’에 대한 해석을 주관적으로 하는 사회라면 백날 ‘노우’를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뒷날 억울한 부분에 대해 따로 호소를 할지언정 상대가 ‘노우’를 외치면 즉각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았을 시에는 그에 따른 불이익이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모든 구성원이 주지하고 있을 때에만 이 단어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또한 유아 때부터 조기 교육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기가 아니라 적기이다. 유아 때 배운 것이 평생 간다. 얼마 전 유아교육을 잘 받은 사회는 성인 범죄율이 떨어진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맞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영어 유치원이나 발레 클래스 등 무슨 활동을 하느냐 따위로 기관의 우수함을 따지는데, 유아 교육의 방향을 진지하게 잘 잡아야 향후 수 십 년이 편안한 것이다.  (2012/1/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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