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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03. 2021

호주 초등학교 교장협회가 발간한 '왕따 가이드'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가 할 일은?

아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리엔테이션을 지난 12월에 다녀왔다. 그때 몇 가지 책자를 받았는데, 그중 한 권이 ‘Your Child’s first year at school: A book for parents’였다. 호주 초등학교 교장 협회(APPA : Australian Primary Principals Association)와 유아교육 협회(Early Childhood Australia)가 공저한 초보 학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는데,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책자의 내용이 신선하고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한국의 교육자나 학부모들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맘 같아서는 일일이 번역하여 매 문장마다 상세한 각주를 덧붙여 보고도 싶지만 일단 여기서 왕따에 대한 설명 중 한국사회가 간과하는 부분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볼까 한다. 


1.   왕따(Bully)란 무엇인가? 

1)    장기적,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왕따는 종종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형태로 드러나는데 그 힘이란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세다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 지지하는 무리들로 인해 힘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것. 즉 육체적으로 작은 아이가 지지 권력을 이용해 큰 아이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종종 피해자의 덩치가 작지도 않은데 당했다는 사실을 의아해한다. 

2)    아이들은 종종 순간적으로 감정을 잃거나 자기 방어 차원에서 치고받고 싸우는데, ‘동등한 상대를 놓고 힘을 겨루는 것’과 ‘왕따’는 큰 차이가 있다. 폭력의 형태는 비슷해도 내용과 결과는 판이하다. 똑같이 한 대 맞아 코피를 흘린다 해도 전자는 콧구멍에 휴지만 박으면 되는 거고 (그렇다고 이런 폭력은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니고.;;) 후자는 장기간 심각한 정신적 치료를 요하며 전 생애에 걸쳐 후유증 재발 등을 염려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가해자 부모나 선생들이 이 명백한 개념의 차이를 무책임하게 섞어버린다. 

3)    왕따는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는데, 가해자의 경우 공격적인 성향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배우자와 자녀에게 폭력을 쓰게 된다. 

4)    왕따는 종종 이른 시기에도 시작되는데, 한 가지 장점(?)은 어릴수록 가해자나 피해자를 교정하기 쉽다는 것이다.  


2.   왕따에 포함되는 구체적 행동들. 

1)    때리기, 꼬집기 등 물리적인 괴롭힘. 

2)    조롱하거나 모욕주기 

3)    이름 가지고 놀리기, 별명 짓기 (한국 사회에서 아주 보편적인;;) 

4)    겁주고 협박하기 

5)    놀이나 모임에 포함시키지 않기 

6)    돈 점심 소지품 빼앗기 


3.   아이가 왕따 당하는지 알아채는 방법 

아이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1)    학교 가기 싫어하거나 등교 전에 긴장하고 우울해한다. 

2)    용돈이나 소지품이 없어진다. 

3)    학교에서 복통 두통을 호소한다. 

4)    수면 장애 

5)    밤에 이불을 적신다. 

6)    외출을 꺼린다. 


4.   아이가 왕따를 당할 때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대략 아이 말을 잘 듣고 감정적으로 다독여 주라는 류의 10가지 항목인데 중략. 

그러고 나서, 

1)    담임선생에게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한다.. 

2)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교장을 찾아간다. 만약 이런 일로 학교에 방문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면 지지를 해줄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다. (너무도 친절한 교장들^^) 

3)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에게서 원인이나 실수를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지질하거나 모자라도 왕따 당할 만한 이유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이다. 비난은 쌍방이 아닌 가해자에게만 돌려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약자의 약함을 비난하며 힘을 키우라고 압박하는 경향이 있다. 약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당연시한다. 또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이유도 사회성이 모자라다거나 이기적이라거나 하며 피해자를 들볶는다.) 


5.    당신의 아이가 가해자라면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부정적 언어나 폭력이 아닌 ‘일인칭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가르치라. 

이게 사소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데, 특히 한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좀 취약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상대의 어떤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령 고객 서비스 센터에 불만을 신고할 때, 내가 기분이 나쁜 만큼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조차 폭력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불만을 제기할 때 자기감정 위주로 호소하라고 가르친다. 

-“당신의 잘못된 서비스로 인해 나는 지금 매우 불편합니다. “  (일인칭 언어) 

-“서비스를 이렇게 해놓고 당신 이제 어쩔 겁니까?”라고 하면 폭력이고 모독이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이 되는데, 피해를 호소하다가 본의 아니게 폭력 가해자로 몰릴 수 있으니 영어권 문화에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뜻이 그게 그거라도 듣는 이의 수용 폭이 달라진다.   


6.   당신의 아이가 왕따 목격자라면, 

1)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설명하고 가능하다면 가해자의 행동을 중재하도록 시도할 것. 

2)    선생님께 보고 할 것. 

3)    절대로 가해자의 행동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7.   왕따 문제를 놓고 선생에게 이의를 제기할 때, 

1)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 전체적인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라. (Sleep on it before acting) 

오해일 수도 있고 대화로 풀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    감정을 자제하고 문제를 공개할 준비가 됐을 때 선생님에게 상담을 신청하라. 

3)    선생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라. 

4)    마음을 열고 선생의 견해를 들어라. 

5)    공정하라. 가해자나 그의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6)    대부분의 상황은 복잡할 때가 많다. 섣불리 결론으로 치닫지 마라. 

7)    모든 연루자의 의견을 종합해서 듣고 모두가 이기는 방향(win-win solution)으로 가야 한다. (‘너 죽고 나 죽자’로 나서면 정말 다 죽는다. 그렇다고 이게 무조건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뜻은 아니다.) 


8.   이의를 제기하는 부모를 만날 때, 선생님들은 

1)    적극적으로 듣고 대화에 참여하되, 방어하지 마라. 

2)    부모를 존중하라. 그들이 자기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라. 

3)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의 의견과 관점을 현장에서 같이 들어라. 

4)    협의한 부분은 서류로 작성하고 부모에게도 알려라. 


이밖에도 구구절절 내용이 많지만 내가 진정 놀랐던 것은, 

1.    이 책자는 빅토리아주 모든 초교를 통해 신입생 학부모에게 배포된다. 학교 부모 학생이 일관된 학교생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있다. 

2.    교장 협회가 발간했다는 것. 

3.    입학생과 학부모가 염려하는 모든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다루었고 내용이 구체적 실용적이었다. 8개의 챕터 중 왕따는 한 챕터 중 소항목일 뿐이다. 그런데도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 학부모 선생 학교 등 모든 이의 입장을 케이스 별로 꼼꼼히 다루고 있었다. 

이와 비교하면, 학교 폭력 문제로 어수선한 한국 사회 내의 무수한 논쟁은 왠지 체계도 진실성도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아 안타깝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 알고 싶다면 www.earlychildhoodaustralia.org.au 

(2012/2/2 씀)

이전 10화 호주, '폭력 예방'은 '유아교육'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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