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Jun 16. 2023

한국 vs. 호주 ‘서비스’ 문화, 이렇게 다르다.

저출산 원인도 여기에 있는게 아닐까?

한국인들이 호주나 외국에 나와서 살거나 여행할 때 답답해하는 부분이 있다. 공공 서비스든 개인 서비스든 느리고 친절하지 않다는 거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점원이 쫓아다니지도 않고 불렀는데 제때 안 오거나 돈을 지불했는데 고마워하지 않고 헤프게 웃지도 않는다, 등등의 이유로 ‘이 나라 서비스는 정말 후졌다.’ ‘영어 못한다고 무시하나 보다. 내가 돈 없어 보이나’ ‘한국에서 이러면 난리 난다’고 말한다.

나도 호주에 살며 이런 문제로 답답함을 종종 느끼고 실제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고 동감하지만, 그렇다고 그 발전 모델이 더 빠르고 더 친절한 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살 수록 커진다.

행복한 노동, 공정한 거래, 달콤한 휴식-해질녘 바닷가엔 퇴근 후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늘 있다.



1.   친절한 서비스의 이면 


한국을 다녀온 호주인에게 ‘문화충격’을 받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다.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걸’이란다. 한국인은 버튼을 누를 줄 모르냐, 글씨를 읽을 줄 모르냐, 왜 그녀가 하루 종일 엘리베이터를 층층마다 타고 내리며 버튼을 누르고 ‘이번 층은 의류입니다… 어쩌고’하면서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짙은 화장과 미니 스커트, 온종일 신고 서있는 하이힐은 뭐냐며 혀를 찼다. 그건 서비스가 아니고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멀쩡하게 일어나는 인권 유린 학대의 현장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런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용주의 상식도 의심스럽고 그런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받거나 기대하는 고객의 수준도 얼마나 형편없는가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돈만 있으면 다 되거든. 사무실에서 젖을 짜 퀵서비스로 아기에게 배달할 수도 있고, 공원 나무 밑에서 치킨과 짜장면을 주문할 수도 있고, 와이셔츠도 모아놓으면 들고 가서 빨아 싹 다려서 가져오지.”하며 한국 사회의 서비스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저렴하고 빠른 서비스가 있는 사회가 부럽기는커녕 불쾌해 보이기 까지 하는 것이다. 손님은 왕이고 종업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고 불만이 접수되면 노동자의 목이 날아가는 사회. 돈 몇 푼 받는 대가로 허리 숙여 인사하고, 대꾸하지 말아야 하고, 웃어야 하고, 비위 맞춰야 하고, 성희롱 성추행도 견뎌야 하고 그 앞에서 벌벌 떨어 줘야 하는 행위가 ‘서비스’로 통하는 사회에서 과연 몇 퍼센트의 구성원이 인간적 자존감을 유지하며 노동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란 의문들.


호주의 경우는 반대다. 가령 식당에서는 사 먹는 손님이 '고맙다’(Thank you)는 인사를 하고 주인은 ‘맛있게 먹기를’(Enjoy) 정도의 인사를 한다. 손님과 주인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정당한 거래를 할 뿐이다. 식당 주인 돈 벌게 해 주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내 배가 고파서 사 먹는 것이며, 주인 입장에서는 재료비와 자신의 노동비를 공정하게 계산해서 가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거래에 대해서는 가격을 인지한 손님이 주문을 할 때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으니, 더 할 말이 없고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제공받은 물질과 서비스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일 뿐, 돈을 쥔 자가 ‘갑’이 되어 군림하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라’ 해놓고 저 쪽 가서 제 볼일 보는 당당한 점원이 오히려 맘 편하다. 그들의 헛웃음과 계산된 친절로 위로받아야 할 만큼 내 삶이 공허하지 않고, 그들이 띄어주지 않아도 내 주제를 실존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런 추가적 서비스에 지불할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추가로 노동을 하며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2.   빠른 서비스의 맹점 


한국인에겐 불친절보다 견디기 힘든 게 느린 서비스일 게다. 그러니 모든 서비스가 신속하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가전제품 AS를 요구하면 부품 주문에 몇 주, 담당자가 오는데 또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예전엔 이런 서비스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이 속도에 대해 불만이 줄어든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일 년에 몇 주간(정규직 노동자의 법정 휴가는 5주다.)의 휴가를 정기적으로 계획한 데로 누리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자리를 비우고 일을 쉬며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내 삶을 온전히 누리는 동안 누군가가 나의 빈 시간을 불평 없이 기다려 준다는 놀라운 사실이 피부로 감사하게 느껴지는 시점이 있었다. 그러니 나도 내 냉장고에서 물이 흐르고 그 안의 음식들이 썩어 나가도 수리공에게 있어 그의 휴가는 내 냉장고를 고치는 것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와 가족의 사생활과 추구하는 총체적 삶의 행복이 가차 없이 무시되며, 돈을 건네는 이들에 의해 휘둘리는 것을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사회 문화보다는 고객 소비자 구매자가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개인의 행복을 우선으로 쳐주자는 문화가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 예는 약간의 비약이 있고 내가 늘 이렇게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와서 해결을 보라고 상대를 다그치지 않는 느림과 여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인간 존중의 가치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라고 한국 사회에 제안하고 싶다. 이런 느림이 게으름과 무능함 답답하고 심한, 고객을 만만하게 보는 배부른 서비스라고 비웃고 말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느림을 그대로 배우라고 예찬하는 것도 절대 아니지만.


저임금과 처절한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는 명품가게 종업원들의 기사를 읽다 들은 생각이다. 어디 이들뿐인가. 대한민국엔 이런 근로자들이 너무 많다. 엄연히 노동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것인데도 돈을 건네는 자들이 힘을 주고 횡포를 부린다. 인간이 존중되는 노동현장이 절실하다. (2012/06/05 씀)        

          



다른 글을 쓰려고 잠시 예전 파일을 뒤지다가 찾아낸 글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내 생각엔 큰 변화가 없다. 이런 과도한 서비스 문화와 노동 괄시 문화가 결국 저출산으로 연결되었구나란 생각도 해본다. 다만 왜 이리도 빡빡하게 글을 썼지? 란 생각은 좀 든다. 그땐 지금보다 젊어서 그랬는가?


코로나 이후로 호주도 서비스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온라인 주문 배달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졌다. 식료품은 주문하면 다음날 어김없이 배달된다. 그러나 고장 난 히터는 부품이 오기까지 2주째 기다리고 있는데 여전히 소식이 없다. 겨울이 다 가도록 기다려야 하는가 걱정도 좀 된다. 그래도 가지고 있던 임시 전기 히터와 지인이 빌려준 미니 히터를 돌리며 버티는 것도 썩 나쁜 건 아니라고 주문을 외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에서 바라본 '아이유 열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