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보트 쉐드 이야기
호주는 지금 겨울이다. 온도만 따지자면 영상 15도 안팎이지만 체감온도는 뚝 떨어진다. 바람이 찬 것도 그렇고 바닷가라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늦은 오후 주로 나가는 산책을 날씨 때문에 좀 망설였는데, 친구를 만나 공을 차겠다는 아들을 동네 운동장에 내려준 뒤 포트씨(PortSea) 주변을 걸었다.
마침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는지, 서쪽 하늘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빛이 구름에도 바닷물에도 바닷가에 늘어선 작은 오두막에도 스며들었다. 오늘도 이 놀라운 풍경을 독점해서 즐기며 걷자니, 이 호사에 대한 감사와 혼자만 누리는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그래서 몇 장의 사진을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냈다.
석양의 아름다움, 인적이 없음에 놀란다. 나도 가끔은 내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 같다고 느낀다. 누군가가 한 발 앞서 내가 도착하기 전, 인원을 모두 정리해놓는 것이다. 이토록 조용한 바닷가는 너무도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바람이 차가웠지만 불평할 것은 못된다. 멀리 소렌토와 퀸즈 클리프를 잇는 페리선이 보인다.
보트 세드(Boat Shed). 성냥갑처럼 아담하게 다닥다닥 붙어있다. 말 그대로 보트를 뭍에 정박해 놓을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오두막이다. 한 때는 동네 사람들이 그저 통나무 몇 개 옮겨다 뚝닥 짓고 여름이면 수영하며 놀던 곳인데, 정부가 환경보호를 이유로 더 이상 증축을 허가하지 않기로 한 이래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렸다. 작년에는 이 오두막 한 채가 무려 12억에 팔렸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 동네 웬만한 개인주택 가격인 것이다. 그럼에도 매물이 잘 안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소박한 토박이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가족끼리 공유하며 이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외지의 슈퍼 리치들이 돈 싸들고 와 달려들어도 물리치며 버텨내고 있다. 누가 소유하든 어차피 나와 상관없으므로 난 그냥 토박이들을 응원하며 그 앞길을 조용히 산책한다.
나도 외지인이면서 외지인에게 텃세를 부리려는 건가? 여름휴가 시즌이 오면 지역 전체 인구의 10배가 넘는 관광객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여러 문제를 야기할 때,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쓰레기를 많이 버린다고, 밤늦도록 파티 소음이 시끄럽다고 불만을 호소하는 이웃들과 의기투합할 때가 있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주민으로 사는 동안 이 마을을 이 자연을 아름답게 지키고 싶다. 동시에 세상의 모두가 이 평화를, 아름다움을 한 번쯤은 누려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아름다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