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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27. 2021

호주 바닷가, '등대' 내부는 이렇더라.

등대에서 내려다본 아름다운 세상.

당시 쓰던 렌턴들이 전시되어 있다. 

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 초입에 있는 애리스 인랫 (Aireys Inlet) 바닷가엔 아름다운 등대(Split Point Light House)가 있다. 빅토리아주 해안가에 세워진 35개의 등대 중 하나인데, 자태가 아름다워 '백색의 여왕' (White Queen)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등대와는 달리 대중에게 공개도 하고 가이드 투어도 있다기에 예약을 하고 맨날 밖에서만 보던 등대 안을 처음으로 들어가 봤다.     

소라고동처럼 올라가며 좁아지는 계단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풍광이 뛰어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로 손꼽히지만 한때는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1800년대 초 유럽인들은 신대륙 정착 꿈을 가득 싣고

커다란 범선에 몸을 실었는데, 당시 유럽에서 호주까지는 장장 배로 6개월이 걸리는 여행인 데다가, 막상 대륙 근처까지 어렵게 오고 나서도 해안 지형이 복잡하거나 파도를 잘못 만나거나 암초에 걸리거나 해서 배가 난파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미 정착한 유럽인들은 서둘러 이곳저곳에 등대를 세워 미지의 땅을 향해 불안한 꿈을 품고 항해하는

또 다른 이민자들에게 내비게이터의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다. 당시 신대륙엔 마땅한 기술도 공장도 없었다. 선진 영국인들의 엔지니어링 공법대로 제조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통째로 수입했는데 무쇠 난간이며 계단까지도 호주에서 만든 것은 없었단다. 그런데 2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수공사를 해본 적이 없다며 가이드는 그 설계와 기술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랜턴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자랑하던 프랑스에서 공수해왔는데, 32킬로 밖에서도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단다. 빨간 불빛은 위험한 상황을 알리고 하얀 불빛은 또 어떻고, 20초 안에 4번을 깜박이면 무슨 메시지이고.. 어떤 깃발은 이런 뜻, 저런 뜻...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그 작은 빛의 명멸에 매달려 그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등대지기는 저 작은 깃발 하나 올리고 내리며 또 얼마나 절박하게 소통에 매달렸을까.       


무쇠 냄비 뚜껑만 들어도 무거운데 계단이며 난간이며 모두 무쇠다. 등대 밑동의 콘크리트 벽 두께는 사방이 2미터 씩이란다. 그래서 겉보기엔 제법 등대가 넓어 보여도 막상 입구를 들어서면 겨우 한 사람 들락거릴 만큼 통로며 계단이 좁다. 행여 관람자가 고소나 폐쇄 공포를 느낄 때를 대비해 가이드들은 응급 처치법까지 마스터하고 있었다.

등대 주변에 관광객이 많았지만 막상 등대 안을 들어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주변 카페가 좋아서 그랬는지, 입장료가 있어서 그랬는지.. 어쨌든 달랑 우리 세 가족을 인솔한 가이드는 역사며 건축공법이며 점등 기술이며 무려 40분간이나 등대를 오르내리며 상세히 설명을 해줬다. 관심분야가 아니었지만 모든 게 처음 듣는 얘기라 흥미로웠다. 지금도 이 등대는 맡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이곳에서 거주하는 등대지기는 더 이상 없단다. 


이민역사 때문인지 호주엔 등대지기의 삶을 다룬 책이나 노래 동화 연극 등이 드물지 않게 있다. 어린 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등대지기 노래도 생각났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각 없이 부르던 노래를 수십 년이 지나서야 낯선 땅에서 그게 그런 뜻이었구나, 가슴으로 이해하게 될 때 좀 혼란스럽다.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시절들을 한심하게 여겨야 하는 건지,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하는 건지.


어쨌거나 이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며 매일의 사명을 다하던 한 인간의 거친 숨결이 느껴진다. 바닷바람이 살을 가르는 한겨울에도 얼어붙은 달그림자를 보며 이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올라 저 램프에 불을 붙이던 등대지기의 고단하고 고독한 일상과 숭고한 직업의식 같은 것들이 마음에 와닿는 현장이었다.       


이 투어의 압권은 등대 꼭대기 발코니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작은 쇠문을 밀고 나가니 '우와' 소리 절로 나는 탁 트인 전망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저 아래쪽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오는 도로 양쪽에는 할러데이 하우스나 작은 카페들, 등대지기가 살던 옛날 집 등등이 있다.   

등대에서 바닷가로 나있는 산책길이 아름답다. 언덕 높이 약 60미터, 등대 높이 약 3-40미터, 합해서 백 미터 정도의 높이인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이렇게 다르다니..      

버드 아이 뷰(Bird's Eye view)라고 했던가. 이런 각도로 맨날 세상을 내려보며 사는 새가 질투 날 정도로  등대 꼭대기의 작은 발코니를 360도 돌며 내려다본 세상은 사방이 너무 아름다웠다.    

 단출했지만 매우 흥미롭고 신선했던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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