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파티의 조건은?
지난 주말 지인의 50세 생일 파티를 다녀왔다. 아들 친구의 엄마로 지난 10여 년간 알아온 사이다.
호주의 50세 여인은 어떻게 생일을 보낼까? 한국과는 조금 다른 문화나 정신세계를 파티 풍경과 함께 나눠볼까 한다.
1. 내 나이가 좋아요.
거실과 뒷마당은 완전히 파티장으로 변해 있었다. 소파와 가구를 어디론가 치워 없앴고 풍선도 장식하고 조명도 달아 넓은 마루에서 춤도 추고 서서 대화도 나눌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복고풍 비치 웨어를 입으라는 드레스 코드가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서 인지 한 겹 씩 더 걸쳐 입고 와서 외적으로 덜 드라마틱했다. 날씨가 뒷받침이 되었다면 기발하고 재미난 옷차림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호주인들은 파티에 진심이니까.
그녀는 내내 환한 웃음을 짓고 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춤을 추며 행복해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늙는다는 것에 대해, 세월이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해 조금도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10살 이든 30 살이든 50살이든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특별한 날이고 행복한 일이고 당연히 축하를 받아야 할 뿐인 것이다.
파티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무대 한 중앙에서 관심을 받았다. 그녀가 춤을 추자고 하면 주방에서 일을 하던 남편이 서둘러 나와 아내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허리를 감싸며 스텝을 같이 밟았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두 명의 연주자들이 라이브 반주를 마치면 호흡이 척척 맞게 춤을 추던 남편은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가 다시 음식을 준비했다. ^^ 샌드위치나 김밥, 라이스롤, 미트파이등 간단하게 손으로 집어먹는 음식을 몇 가지 준비했지만 주방 일을 총괄하는 자상하고 조용한 남편은 할 일이 많았다.
2. 다양한 연령과 세대가 한자리에서 건전하게 논다.
그녀의 엄마와 자매와 조카 등등 확대가족이 모였고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인 만큼 학교 동료며 제자들이 있었고, 대학생부터 초등생에 이르는 세 자녀의 친구들과 그 부모들이 모였고 이웃들과, 남편 회사 상사 등등이 모이다 보니 젖먹이부터 80대 노인까지 전 세대가 골고루 뒤섞였다. 이미 알거나 처음 만난 70여 명이 아무런 불편함이나 어색함 없이 한자리에서 같이 웃고 노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전 직장 동료들은 은퇴한 70대의 할머니들이었는데, 날씬한 비키니 차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재밌게 개사한 노래를 불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이런 왕언니들 앞에서 생일자는 이제 겨우 50을 먹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유쾌한 시니어를 보면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3. 다양한 직군과 열린 대화를 나누며 세상을 배운다.
이날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별별 대화들을 나누었다. '나는 아무개요'란 이름 소개로 옆에 서 있는 낯선 이들과 대화를 튼다. '생일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묻고 대답한다. 그럼 거기서부터 다음으로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학교 동료예요'라고 대답하는 몇몇 교사들을 만났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교육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가 그녀가 헝가리 이민자 2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잠시 동유럽 문화와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섬유공예로 전시를 하는 예술가는 이 집 막내딸과 친구인 자녀를 두고 있었다. 작품활동 만으로는 살기가 어려워 유치원 교사일을 병행하는 아티스트 삶에 대해 잠시 고민을 나눠본다.
생일자와 어린 시절부터 이웃으로 알고 지내왔다는 중년의 여인은 무려 멜번 유수의 명문대 건축과 교수였다. 최근 한국에서도 화두가 되고 있는 'AI 부정 시험'에 대해 의견을 물었더니 적극활용을 권장하되 '출처를 정확히 밝힐 것'과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돈 많은 부모들이 의욕 없는 청춘들을 유학 보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정말로 건축을 배우고 싶다면 대학을 오지 말고 TAFE(2년제 전문대와 비슷한)에 들어가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많은 것을 경험할 것을 추천한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들었다. 대학 교수가 대학을 오지 말라고 하다니... 대표 건축물이 있냐고 물었더니 '부모님 집 레노베이션 한 것이 전부다. 독일 부모들은 실용적이고 구두쇠라 돈도 안 내고 자녀들 재능을 이용해 먹는다'며 '독일인은 원래 이런 걸로 유명하다.'라고 한다. 유쾌한 그녀와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무게 잡고 잘난척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힘 빼고 가볍게 나눌 수 있으니 좋았다.
밤늦도록 거실에선 조금 흘러간 8-90년대의 댄스나 발라드 곡들이 흘렀고 사람들은 모여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나누느라 몹시 시끄러웠는데 그 소음과 거리를 좀 두겠다고 주방 옆까지 밀려 나와 꽥꽥 소리를 지르고 침을 튀기며 대화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간만에 목을 너무 써서 따갑고 아프기까지 했다. 나도 잠시 내 나이를 잊고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불현듯 '이 밤이 아름답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모든 인생이 소중하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파티의 목적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좋은 파티란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네오 내오 없이 그 시간을 편안하게 누리고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단정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