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오로라 헌터의 자세는?
그러니까 지난 수요일(12일) 저녁이었다. 오로라를 쫒는 이들(사냥꾼, 헌터로 불린다.)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사이트에 많은 알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밤 호주 빅토리아주 여러 지역에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을 거란 예보였다.
이미 한번 오로라를 만난 적이 있고, 또 그전에 예보대로 따라나섰다가 긴 시간 기다림에 지쳐 포기했던 적도 여러 번이라 크게 흥분하지는 않았다. 오로라가 대기권에 형성되어도 그때그때의 날씨나 여러 변수들로 인해 실제로는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밤 9시쯤이 지나자 페이스북에 여기저기서 찍힌 오로라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나 우리 지역은 아니었다. 야카단다, 밴디고 등등은 집에서 3-4 시간 떨어진 거리였다. 남편은 자러 가기 전에 동네 바닷가라도 한번 돌아볼까 했고, 난 우리 동네에서 누군가가 사진을 올린다면 그때나 가보자고 했다. 늦은 밤이고 피곤해서 좀 심드렁했다. 게다가 대학생인 아들은 내일이 마지막 시험이었다.
남편이 뒷마당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 왜 저러실까.. 깜깜한 밤에 여기서 뭐가 보인다고...' 그런데 갑자기 오로라가 찍힌다며 놀라 뛰어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뛰쳐나가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봤다. 내 폰은 갤럭시 S20였다. 아무런 설정 없이 나이트 모드로 그냥 찍었다. 세상에.. 선명한 칼라의 무언가가 모두의 폰에 나타났다.
더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겨울 외투를 꺼내 입고 모자와 목도리까지 둘러 무장을 한 뒤, 집 근처 No.16 바다로 향했다. 집에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뒷바다로 매일 걸어서 산책을 하는 곳이다. 역시나 평소와는 다르게 10여 대의 차량들이 입구에 주차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미 몇 번을 오로라 헌팅에 나섰던 적이 있고, 이 바다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곳이었다. 깜깜한 모랫길을 걷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핸드폰 전등빛을 간신히 한 치 앞만 볼 정도로 밝힌 뒤 조심히 바닷가로 걸어 들어갔다. 세상은 쥐 죽은 듯 조용했지만 간간이 사진작가와 헌터들이 어딘가에 있을 터이고 그들의 작업과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는 묵시적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오로라는 그 어떤 예술 작품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거나 혹은 더 아름다운 가치가 있으니 그 대접을 온전히 하면서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바닷가에 도착해 처음 찍은 사진엔 보랏빛 초록빛 오로라와 총총히 보석처럼 박힌 별빛들이 가득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바다는 썰물인 듯 멀리서 잔잔하게 출렁였다. 늦은 봄 밤바다는 바람도 부드러웠다. 지난겨울, 첫 오로라를 관측했을 때는 칼바람이 온몸을 에워싸 두툼이 입고도 덜덜 떨었는데 말이다.
인적 없는 텅 빈 바닷가를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리저드 락(용머리 바위쯤이랄까)까지 가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육안으로는 그저 휘뿌연 안개가 내린 듯한데, 사진으로 찍어보면 오로라가 선명하게 오르내렸다.
카메라의 장난인가 싶어 반대쪽 하늘을 찍어보면 그곳은 그저 평범한 밤하늘이고 별빛이었다.
그래서 다시 오로라를 향해 걸으며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감격하며 이 시간들을 만끽했다.
그렇게 푹푹 파이는 모래와 울퉁불퉁한 갯바위를 100미터쯤 걸어 리저드 락에 도착했다. 이 지형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감히 걸을 용기를 내지 않았을게다. 그 바위를 배경으로 오로라를 찍으니 또 근사했다. 리저드가 하늘의 오로라를 우러러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 바위를 오르내리며 놀던 아들이 이번에도 기를 쓰고 올라 기념사진 한 장 찍었다. 내일 아침 중요한 시험을 무릅쓰고 야밤에 이 난리를 치자니 웃음이 났다.
난데없는 이벤트, 예기치 않은 환희, 평생을 기억할 순간들, 모두에게 추억이 될 선물 같은 밤, 엄청난 축복이 우리에게 폭우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환상의 세계와 일체가 되었다.
갑자기 시가 나왔다.^^
오로라
바라보다
머리도 가슴도
다 비웠다.
텅 빈 그곳에
오로라만 한가득
찼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도 잊었다.
할 말을 잃고
미친 듯이 감탄하다
셔터를 눌러 대던
그 초록 밤,
붉은 밤,
푸른 밤,
보랏빛 밤,
오로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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