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레이트 오션 로드'가 놀라워

by 몽기

여름휴가를 받아 여행을 다녀왔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거쳐 포틀랜드까지 400여 킬로를 열흘간 달리며 여러 생각을 했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고 많은 사진을 찍었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다양했다. 그런데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약간의 무기력증이 글을 쓰겠다는 행동을 막아섰다. 생각들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러다니는데 AI가 글도 빨리 잘 쓰고 더 많은 정보도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내가 굳이 수공업으로 글을 하나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의도 들었다.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일수도 있겠다.ㅎ)

2주를 그렇게 보내다가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대해 내가 예전에 쓴 글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다. 2009년 10월 19일에 쓴 것이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해안로드 입구의 첫 간판.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시드니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면 빅토리아주엔 단연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가 있다. 멜번 여행 브러셔 맨 앞장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다. 시티에서 차로 오자면 2시간쯤을 지나서 슬슬 근사한 바닷가와 석회암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멋지고도 멋지다. 하지만 너무 흥분하면 안 된다. 이런 멋진 길들이 240여 킬로를 넘게 이어지기 때문에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즐겨야 한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꼬불꼬불 길은 절묘하지만 멀미를 하기도 쉽다.;;

그렇게 즐기면서 두 시간쯤을 더 달려오면 이곳에 이른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절정은 단연 여기, 12 사도상 (12 Apostles)이다. 거친 파도는 이 단단한 석회 절벽을 수천만 년 동안 치고 밀어 작은 동굴을 내고 그 구멍을 들락이면서 끝내 절벽의 한 조각을 바닷가에 우뚝 떨어뜨려 놓았다. 이 기둥들은 또 풍파로 인해 매일 눈곱만큼 침식되고 그러다가 또 어느 날 사라지고 쓰러지고..

지금은 8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내가 호주에 온 이래로 이 기둥 2개가 무너졌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사이 인공 구조물이 생겨 더 가까이서 바위와 절벽을 즐길 수 있다.(사진 오른쪽)

런던 아치(London Arch-12 사도에서 차를 타고 10분쯤 더 달리면 나온다.)는 20년 전 중간 부분이 갑자기 내려앉아 관광객 2명이 바다 쪽 바위 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헬리콥터가 날아와 이들을 구조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연이 살아온 시간들.. 그들이 알아서 빚어낸 장관에 그저 말을 잃는다.

절벽 사이로 파란빛 녹색 빛깔의 바닷물이 하얀 포말과 함께 넘친다.

곱고 따뜻하게 반짝이는 모래도 눈에 들어온다.

차를 몰고 이동하다 중간중간 내려 걷는 게 보통이고 관광용 헬리콥터를 타고 내려볼 수도 있다. 이 장장한 거리를 배낭 메고 며칠 동안 걸었다는 젊은 청년도 만났다.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여행 후 얼마나 많이 자랐을까나... 나도 언젠가는 이곳을 걸어 돌아볼 테다.

1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엄청난 날씨였는데, 언제 여길 또 와볼까 싶어 기를 쓰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는 아직 호주에 있고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이곳에서 불과 2시간 떨어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행정구역상 우리는 한 지역으로 묶여있다.(Corangamite Shire)^^ 처음 이사를 오고 그 사실이 나를 얼마나 놀랍고 기쁘게 했던지..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란 생각에 오히려 지척에 두고도 자주 못 가는 것 같다. 날이 좀 풀리면 만사 제치고 한번 찾아가야지...


2011년 1월 4일에 쓴 글엔 이런 부분도 있다.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여행을 갔다가 이 동네(톨키 바닷가 마을) 어디메에서 잠시 쉬었었다.

그때 별생각 없이 홀로 바다에 내려갔는데 잊지 못할 장관이 내 앞에서 펼쳐졌다. 시커멓고 넓적한 바위들이 대평원을 이루는 가운데 시퍼런 바닷물이 그 사이사이를 맹렬하게 파고들다가 하얀 포말을 하늘 높이 뿜어대며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무섭기도 했고 의식이 끊긴 듯 잠시 멍하기도 했고 그러다 정신을 수습하니 가슴이 먹먹해왔던 기억이 있다. 그땐 내 평생 다시 못 올 곳이라 생각해서 더 마음이 꽉 차 올랐었던 것도 같다.

그 뒤로 난 이곳을 꽤 여러 번 지나치게 되었다. 주로는 한국에서 누군가가 왔을 때 유명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모시기 위함이었다. 그때마다 난 톨키에서 잠시 내려 예전의 그곳을 찾아 헤맸다.

내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 이곳저곳 다 들쑤시고 다녔는데도 그 바다와 바위를 다시 볼 수는 없었다.

같은 장소라도 물이 찻는지 빠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상황이 달라 같은 눈으로 찾을 수 없기도 할 테고...

그냥 그렇게 아쉬움과 감동으로 내 가슴에 남은 그 바다가 이곳 어드매에 있는 것이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같은 모래를 두 번 쥘 수 없다.

같은 바위를 두 번 디딜 수 없고 같은 이끼를 두 번 더듬을 수도 없다.

무언가를 찾았을 때 무언가를 느꼈을 때, 그곳에 정지해 있어야 한다.

내내 머물러야 한다. 원 없이 누려야 한다. 시간을 재서는 안된다.

그 순간은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까..


내가 정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사진 찍고 돌아서는 여행을 기피하는 이유다.


쨍했던 날씨가 급변해 이곳을 떠날 때쯤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먼 길을 달려와서도 비구름에 덥혀 바위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비바람이 몰아쳐 입장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몰리는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자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 길을 여행하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있었는데, 잠시 정리를 미룰까 한다. 그냥 옛글을 들척이면서 이 사진들을 올려본다. 2026년 2월 2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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