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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05. 2021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방법-Aborigin Art

호주 원주민들의 예술세계

얼마전, 벽에 그림을 걸었다. 미완이었지만 당분간 더 그릴 것도 같지 않았고 몇달 동안 방 구석에서 먼지에 덮여가는 모습을 계속 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볼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거실 한가운데 떡 내다 걸었는데, 벽이 훤해지면서...복잡했던 내 마음이 환해지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꿈틀대며 되살아 나오는 것이었다.

구글이미지

호주 원주민(Aborigin)들이 원색의 점을 똑똑 찍어가며 그리는 그림들은 그 자연을 닮아 있어서 좋다. 호주 대륙 한가운데 혹은 북부 지역에 주로 사는 검은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레드센터(Red Centre)라 부른다. 말그대로 붉은 모래의 땅이다.


메마른 모래알 사이로

새가 콩콩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다니거나

리저드가 슥슥 배를 깔고 기어가거나

한자락의 더운 바람이 훅 지나갈 때.....

작은 모래알들은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하며

그들의 흔적을 잠시 잠깐 허락한다.

구글이미지

나른한 오후, 사냥한 고기로 배를 불린 원주민들은 그 모래바닥 위를 뒹굴며 낮잠을 자거나 뒹굴다가 그 모래위의 형상을 옮겨보기로 한다. 왜?

심심하니까..

재밌으니까..

사라져버리는 것을 기억에 남기고 싶으니까..

인간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닮은 창의적 존재이니까..


날카로운 돌 끝으로 그 모습을 바위나 동굴 속에 새기기도 하고 색색의 염료를 뭉뚝한 나뭇가지에 묻혀 천 위에 똑똑 찍어, 자연을 노래하고, 다음 세대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만들고...그것이 애버리진들의 아트세계인 것이다.

 

지난해 9월 2주간 그 곳에서 캠핑 여행을 하며 늘 붉은 모래를 바라보았었다.

새 발자국,

리저드 뱃자국,

바람이 흘러간 자국,

그리고 내 아이가 지나며 남기는 발자국들을 바라보며

나도 이걸 작품으로 남겨보겠노라는 필(Feel)이 두두둥.........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붓을 들었다.


왜?

심심하니까..

재밌으니까..

사라져버리는 것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으니까..

인간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을 닮은 창의적 존재이니까..


그런데, 내 삶이 갑자기 너무 바빠졌다. 일을 시작했고 공부를 하게됐고 기타의 여러가지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지며 헐떡거리다보니, 올해도 반이 넘게 지나간 것이다. 크지도 않은 그림은 손 볼 틈도 없이 널부러져 있고. 아.......이게 뭐야!!!.........


기쁘거나 슬프거나 얻거나 잃거나 뒤죽박죽이었던 실타래를 그래도 이제 꽤 많이 풀었다. 일을 그만두기로 했고 코스를 가까스로 끝냈고 에세이도 간신히 제출했다. 지력과 체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예전엔 이렇게 한숨을 돌리고나면 살이라도 빠지는 부수익이 있었는데, 이젠 흰머리와 주름만 는다. 나이듦이여.......


광활한 붉은 모래, 푸른 하늘 그 사이를 용맹스럽게 날던 검은 독수리떼. 내 생전 그렇게 많은 독수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모래 사막 위 죽어 널부러진 동물의 몸속 깊이 날카로운 발톱을 찔러넣고 뾰족한 부리로 붉은 살점을 뜯어먹던..그 늠름함과 고독함.



잠시 머리를 정리하다가 이 그림을 번쩍들어 내다 걸었는데, 그 때의 그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내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길 위에서 보냈던 긴 시간들과 그 시간을 더듬으며 동네 갤러리 한구석에서 몇 달 동안 물감을 뭉개고 뭉툭한 막대기로 캔버스 위에 작은 점을 하나씩 내려 찍던 그 시간들이 겹겹이 아릿하다. 그림 한점 남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밤 홀로 추억에 빠져든다. (2013/07/14 씀)


** 이 그림은 지금도 우리 집 주방 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수시로 나의 기억들을 붉은 모래의 땅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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