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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Sep 08. 2021

호주 시골, 언덕에서 '연'을 날렸다.

바람부는 날이라...

바람 부는 날이라

언덕에 올라

내 마음을 띄워 봤다.

연을 날렸다.   

아!! 얼마만 이던가..

수십 년은 됐을 거다.     


늦겨울인지 초봄인지 애매한 어느 날. 사방이 허허벌판인 지인의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바람이 쌩쌩 잘부니 연이나 날려보자'는 주인장 제안에 또 덜렁덜렁 쫓아 나갔다.     


천막처럼 둘둘 말려있던 큼지막한 연을 펴서 길쭉한 플라스틱 대를 가로 세로로 끼우니 즉석에서 연이 만들어졌다. 저 먼 반대편에서 잘 붙잡고 있다가 바람에 맞추어 위로 띄우면 휘리릭 잘도 날아올랐다.

히야, 끼야호...   

늦겨울 저녁 바람이 찼다. 그 부는 소리가 휭휭 귓가를 스쳤다. 손은 곱아들고 어깨는 오그라드는데, 아....... 어쩌나, 재미가 있으니...     


그래서 뛰었다.

연끈을 부여잡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리고 날았다.

내 마음도 두둥실 하늘 높이 올랐다.   


꼬리가 길게 달린 꿀벌 연.

동그란 두 눈이 너무 귀여웠다.

한참을 달려도 윙윙대고 잘도 쫓아온다.

행글라이더를 닮은 연,

방패를 닮은 연,

여러 개를 날렸다.

어떤 연은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려 끈 떨어진 연이 되고

어떤 연은 살이 부러져 제대로 날리지도 못하고 다시 접어 넣었다.      


붉은 해가 다 넘어가도록 날렸다.

고작 연 하나에 이토록 웃어 제끼고 날뛸 줄 몰랐다.

까마득한 옛날에 알았다가 언제쯤부터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더 이상 꼬마도 아닌 동네 어른들이 모여 이렇게 놀기도 한다니, 더 재미있다.

  

다리 힘 풀릴 때까지 뛰다가 저 오렌지 불빛 밝혀진 지인의 집에 들어갔다.

벽난로의 장작은 타들어가고 길쭉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따뜻한 무언가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달콤한 무언가를 먹으며 늦도록 얘기했다.

이러다가 동이 트면 좋겠네..   


나는 이 날 또 삶을 재밌게 사는 방법 한 가지를 찾았다.

마음이 무겁고 갑갑할 때,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오르리라.

긴 긴 인생의 어느 짧은 순간쯤 연을 띄어 몸도 마음도 하늘에 날려 버리리라...  

(2011/10/0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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