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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13. 2021

호주 농장 '양털 깎기'는 이렇다.

호주 울 Wool 생산은 여기서 시작.

호주 하면 푸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양을 키우고 털을 생산 가공하는 울 비즈니스는 호주의 대표 산업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양들은 어떻게 털을 깎는 걸까? 호주 농장을 찾아가 보았다.

쉬어링을 기다리는 양들.
그래도 양들은 정말 순한 동물인지라 잠깐 버둥대다가 저렇게 가만히 앉아 얌전히 이발을 한다.^^

양들은 일 년에 한두 번씩 털을 깎는다. 쉬어링(shearing)이라고 하는데 마침 이웃 리의 목장에서 쉬어링을 한다길래 구경도 할 겸 들렀다. 이날은 두 명의 전문 쉬어러가 이발기를 들고 털을 깎았다. 한 마리 깎는데 2-3분 정도. 한 마리당 4-5킬로의 털이 깎인다. 쉬어러가 양 한 마리의 털을 깎으면 옆의 보조 여자가 이를 재빨리 치워 탁자 위에 펼쳐 올린다. 그럼 목장주와 아들들이 털을 후다닥 손질하여 더러운 부분은 밑으로 따로 모으고 나머지 털들은 옆으로 모으고 하여 분리한다. 또 다른 아들이 이 털들을 기계로 커다란 부대에 담아 농장 도장을 찍은 뒤 트럭에 실어 내보내는 것이 대략의 공정이다.

쉬어러는 시간당 2-30마리의 양털을 깎고 하루 7시간 정도 일한다. 농장 규모에 따라 쉬어러는 2-3명에서 7-8명까지도 고용되고 보통은 3-4일 혹은 일주일 정도에 일을 마친다. 수천 마리의 양털을 깎는데 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는 않은 듯. 쉬어러는 시간당 받는 급료가 높지만 등뼈가 부러질 만큼 (back bone breaking work)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양들이 무겁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몸을 직각으로 꺾고 일해야하니 허리가 얼마나 아프겠는가..


Shearing the Rams is an 1890 painting by Australian artist Tom Roberts. Bing Image.  

또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업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도 악명 높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선풍기를 앞에 세워놓고 일할 수 있다는 정도란다.

그래서 힘 좋은 젊은 청년들이 한동안 '뼈 빠지게' 일을 해 돈을 좀 모은 뒤 자기만의 농장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혹은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이들이 농한기를 이용해 파트타임으로 쉬어링을 하기도 한다. 힘든 일이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듯도 했다. 그럼에도 쉬어러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목장주들은 고민한다.

양들의 종류에 따라 털들도 가치가 다 다른데 메리노 양의 울을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또 같은 메리노 울이라도 길이와 꼬불거림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는데 이를 측정하는 특이한 자도 따로 있다.


어쨌거나 광활한 목장 한가운데 세워진 오두막 안에 들어서는 순간 후덥 하고 매캐한 공기와 누린내 똥냄새 등이 범벅이 되어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인데 3일 안에 이 모든 양들의 털 깎기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라 매우 바빴다. 쉬어링 시즌이 되면 양을 치는 목장들은 정말 바빠진다. 필요한 인력을 추가로 고용함에도 온 가족이 쉬어링에 매달릴 뿐만 아니라 안주인은 시간에 맞춰 모닝티(간식) 점심 애프터눈 티(새참)를 일꾼들에게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즌이 끝나면 다들 기진맥진.

쉬어링을 마친 양들은 갑자기 반쪽으로 왜소해진다.^^ 또 무척 하얗다. 원래 양털은 하얗지만 얘들이 밖에서 생활하는지라 털 켜켜이 때가 까맣게 끼어 엉키고 냄새도 만만치 않다.

한데 요즘 양털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 수요가 줄어 목장주들이 전업을 하거나 겸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목장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짓기도 하고 털을 생산하는 양 대신 고기를 생산하는 양들을 키운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전혀 다른 종자다.)

호주 이민(주로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온) 첫 세대부터 근 4대째 까지도 '양의 등을 타고 떼돈을 벌며 살았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울 수요의 감소와 가뭄 등으로 생산과 수출이 지속적으로 줄어 농장주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사실, 호주의 울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때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과 미군들이 한국 겨울을 이겨내자고 울코트를 군수품으로 대량 생산했을 때 란다.

이 난리법석 소란스러운 오두막 밖은 저리도 한가롭고 평화롭고 광활하다.
농장엔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여러분.. 울제품 많이 사세요.. 이상은 스킵튼 양털 아줌마의 홍보였슴다. (2009/03/02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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