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지나면, 언젠가는 달달한 날이 오겠지 했지만, 짠 내 나고, 쉰내가 나고, 쓴맛이 났던 날들의 지난날들의 기록. 마흔이 넘어서 쓰는 나의 일기, 이곳, 나의 방구석 일기.
나의 첫 일기가 생각난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신 그림일기장이었다. 커다란 빈칸에 그날 있었던 일을 크레파스로 그리고 색칠하고, 그 아래 깍두기 칸을 큼직하게 채운 나름 또박또박 쓰려고 꾹꾹 눌러썼던 글은 '나는 오늘 무엇을 했다'라는 시작으로 주로 일기를 쓰고, 마지막은 주로 '기분이 좋았다'라든가 '즐거웠다' 또는 '해야겠다'라는 다짐의 글을 썼다.
제법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의 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고, 기분은 어땠고, 마지막엔 꼭 다짐을 한다. 어른이 되어도 잘 지켜지지 않는 다짐들.
난 늘 어떤 걸 해내려고 했고, 언젠가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무언가 이루고 싶다고 하면서, 살면서 주변에서 얻는 소소한 위로를 주는 기쁨을 제쳐놓았다.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그게 기쁨이라고 생각 못 했다. 모래알같이 반짝이는지 모르고 너무 작다고만, 이걸로는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나의 그림자로 정신이 가출한 어느 날도, 독화살을 쏜 상대의 쓴 말을 되새기느라 내 마음의 상처는 돌보지 못했던 어린아이 같던 날들도, 어른이 되었는데도 조급해지면 여지없이 실수와 다짐을 반복했던 날들도, 마음 졸였지만 기어코 우리 집을 방문했던 코로나의 일격을 경험한 날들도, 아이들과의 단짠단짠 했던 소중한 이야기들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 가끔씩 짠 내가 나고, 쉰내가 나고, 쓴맛이 나는, 나를 만나고 온다.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얻는 지나치는 작은 기쁨들, 순간순간이 모여서 나의 인생이 된다는 깨달음, 내가 아는 것만큼만 보이는 세상, 무슨 일이든지 두들겨보고 건너가 보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다는 당연함을, 무얼 하느라 늦었는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일기를 쓰면서 일상의 감사함을, 부족함을 고백할 용기를 배우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쓴 커피가 달달하게 느껴지듯이, 오늘의 쓴 날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쓰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