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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자 Jun 12. 2023

순종과 해방 사이

독서 01. 조선시대에서 온 남자, 그리고 여자

 

[순종과 해방 사이, 책을 읽고 나서]



나만 순종과 해방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서성거리고 있을 줄 알았다. 저자는 착한 아이이자 모범생으로 자랐고, 세상이 정한 표준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보통의 여자로 살아온 삶을 엄마에게 고백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상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매일 조금씩 본인을 지워가는 일이었고 규격이 맞는 인간이 되기 위해 찌그러트리고 깎아내다가 답답함을 느끼는 감정들을 담았다. 책의 전체적인 틀은 딸이 엄마에게 편지를 보내고 마지막에는 엄마가 딸에게 답장을 보내는 서간문의 형식이다. 더불어 저자가 인상 깊게 읽었던 다른 책의 구절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써나간다. "순종과 해방 사이, 착한 아이, 내성적, 망한 결혼, 취약함, 며느리, 엄마, 남편, 아이, 글쓰기. 다들 그렇게 살아." 책을 읽다가 이 단어들에 대한 나의 감정들도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순종과 해방 사이에서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방법을 몰라 고민 중이라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순종과 해방 사이 / 이다희 지음






[덧붙이는 글, 나의 순종과 해방 사이 이야기]


조선시대에서 온 남자, 그리고 여자

순종과 해방 사이. 이 제목을 쓰고 나니 조선 시대에서 온 남자가 생각났다. 바로 나의 남편이다. 나의 망한 결혼을 전부 남편 탓으로 돌린 적이 있었다. 분명히 사랑해서 한 결혼인데 어느 순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며느리로,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 본인의 역할로 충실히 살았던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순종하는 삶을 깨닫는 글이 나온다.


생각해 보니 나도 조선 시대에서 온 여자였다. 남편이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그 신념으로 나를 볶아댔다. 나는 남편이 원한다는 이유로 딸 셋을 낳고도 그렇게 넷째를 낳기로 합의했다. 이번에도 딸이면 다섯째를 낳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다행히 아들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은연중에 나도 아들을 낳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십 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빠에게 시집가 딸 둘을 내리 낳은 후 우리 엄마는 시댁에서 고개를 들 수도, 설 자리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셋째는 아들을 낳았다. 엄마는 그제야 본인이 도리를 다한 것 같았다고 했다. 엄마도, 나도 결국에는 남아선호사상의 잔재에 순응한 사람이었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사상에, 시댁과 남편의 요구에 맞서 나의 의견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응당 그게 맞을 거라고 순종하고 순응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시대에 우리 엄마의 시집살이는 얼마나 고되었고 억울했고 분을 삭이는 일들이 많았을까. 나 역시 의견 따위는 없는 며느리라는 역할과 살림 육아 직장 생활을 슈퍼우먼처럼 해내면서도 엄마라면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 때문에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 뻔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가끔씩 밥을 짓다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스무 살 이후의 삶은 오롯이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었다. 세상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바뀌어야 했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다들 그렇게 애 키우고 살림하고 산다는데 나는 네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는 일이 버겁고 힘에 부쳤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이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해방감과 동시에 저질 체력이 그때 완성되었다. 약물 알레르기 부작용으로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생기자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현듯 두려워졌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썼는데 글쓰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해방감이 들었다.


작가의 글이 마치 세상이 정한 규격에 맞춰 살다가 어느 날 숨을 쉬기 힘들었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살지 못했던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려서 마음이 아팠다. 또, 작가의 고백에 나도 꽁꽁 싸매고 있던 자아를 끄집어내었다. 여기에 나의 순종과 해방 사이의 여정도 덧붙여본다. 오래 기다렸을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게도 글쓰기가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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