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02. 나의 지중해
빵집 아들의 운명은 도넛이었다. 그렇기에 늘 텅 비어 있고,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연수 작가의 깨달음이었다. <청춘의 문장들>에서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나는 나의 운명을 깨달았다.
나는 검은건반이었다. 마음 어딘가에 늘 어두운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 아무리 해도 천성 저 바닥 밑까지 밝은 빛이 어리기엔 나는 좀 많이 어둡고 어느 정도는 불협화음과 같은 존재였다. 65
그러니 그건 나였다. 내 일상을 망치고 있는 것은. 내가 범인이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회사도 범인이 아니었고, 야근도 범인이 아니었다. 물론 파리도 범인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76
이제는 반성문 대신 이 글귀를 읽는다. 서른여섯 살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붕붕 떠다니니까.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 77
출근이 아무렇지 않은 아침이라니. 출근은 내게 결코 화해 불가능한 어떤 것이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6년을 매일 회사를 가면서, 그 6년을 매일같이 나는 회사에 가기 싫었다. 막상 도착하면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거면서, 심지어 열심히 일할 거면서,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온 것이었다. 명백히 <시지프 신화>때문이었다. 명백히 김화영과 카뮈의 짓이었다. 83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