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잡한 마음

일기 14. 이러다 호구가 되는 건 아닐까

by 책계일주


브런치 스토리에서 10시간 전에 알림이 도착했다. 이번뿐만 아니라 글을 올리는 주기가 길어질 때마다 글 발행 안내를 독려하는 알림을 받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글쓰기를 미룬 탓이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넌지시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곳은 글쓰기의 고수들만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주눅이 든다고,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주저하게 된다고, 어떤 걸 써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진다고 혼잣말로 변명을 둘러댄다.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오롯이 나의 책임이라는 걸 알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쌉싸름하지만 견딜만한 일상을 기록하기로, 나의 굳어진 뇌와 뭉쳐있던 마음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말랑말랑해지기를, 시간이 지날수록 유연한 사고로 상냥한 글들이 써지길 바랐는데 자꾸 우중충한 글이 써진다. 아마 그런 마음이 잔뜩 쌓였다가 삐쭉 삐죽 비집고 나오기 때문일 거다.



집을 내놨다. 두 달 정도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더 아프다. 현생이 고달프니 글쓰기가 소원해졌다. 마음 쓰기를 해야 하는데 쓸 마음이 혼잡했다. 비가 많이 와서 창문을 뒤덮은 것처럼 마음도 어스름하게 바깥이 보이지 않았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고 나니 심신이 피곤해졌다. 집을 팔려는 사람은 도매가로 치우는 느낌이 들어 가격을 낮출 수가 없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지금 비싸게 사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가격을 낮춰달라고 한다. 결국 매도인과 매수인의 심리싸움이다. 아직도 집을 보러 왔다 갔다를 반복 중이다. 혹시 이러다가 호구가 되는 건 아닐까, 이러다가 집값이 폭락하는 건 아닐까, 다른 더 좋은 매물이 있지 않을까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이 또한 욕심임을 알고 있다. 나도 마음은 기안 84처럼 설령 가격 흥정의 호구가 되더라도 그 정도쯤은 개의치 않은 너그러운 사람이고 싶다.






결혼 후 전셋집을 2년에 한 번씩 전전하다가 처음 대출을 받았다. 대출 이름조차 '내 생애 최초 대출'이었다. 2년에 한 번씩 이사 갈 때마다 식구가 늘어갔다. 처음에는 남편과 나 둘이었는데, 다음에 이사 갈 때는 배가 부른 채 봄이의 손을 잡고 이사를 했다. 그다음 이사할 때는 배가 부른 채 봄이와 여름이 손을 잡고 이사를 하고, 그다음 이사할 때도 배가 부른 채 봄 여름 가을이와 함께 이사를 했다. 식구는 점차 늘어나는데, 2년에 한 번씩 전셋집을 알아보고 이사하는 일은 힘이 들었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줄 때 어린아이가 많은 집은 집을 깨끗이 못 쓸 거라는 생각에 여러 차례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남편 혼자 외벌이를 하는데 애는 넷이고 전세 만기는 또 다가왔다. 또 다른 선택과 결정 앞에 서있었다. 목표는 대출은 받아 집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맞벌이를 해야 했고, 19개월 겨울이를 저녁까지 봐주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우선 아침마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겨울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알바를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중고차를 사고, 장롱 운전면허를 꺼내 자동차 운전학원에 가서 도로연수를 받고 운전을 시작했다. 차가 있으니 행동반경이 넓어져 직장을 구할 수 있었고, 이사 가서도 아이들을 기존 어린이집에 태워다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나도 아직 '어른'이 아닌 '어른이'였고, 살림은 빠듯하고, 시간은 바삐 지나갔다. 몸과 마음이 정신없이 바빴지만, 이사 가지 않고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므로 행복한 시기였다.






봄이가 초3 때 이사를 했는데 벌써 고3이 되었다. 우리 살림은 여전히 빡빡하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별 걱정 없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랐다. 남편은 정말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고, 나는 누가 봐도 아줌마가 되었다. 이곳에서 안분지족의 삶을 누려도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때쯤이면 이래야 한다는 눈에 안 보이는 공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벌써 내 또래에 부동산 몇 채씩은 가지고 있다는 주변 이웃들의 삶이 안정적이고 부러워 보였다. 우리에게는 왜 그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진 것 없이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서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성실하게 내 앞가림만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심하게 현타가 왔다. 그건 부모 탓도 세상 탓도 아니라 그 범인이 나였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데 이번에는 지하 바닥까지 자존감이 내려갔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고 한다. 망설이다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집을 내놨는데 호구가 안되려는 마음에 더 혼잡해진 날들을 보내고 있다. 혼잡한 마음이 삐져나온다.




2023.7.19 꿈꾸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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