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매듭

일기 19.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by 책계일주


며칠을 앓다가 어제부터 조금씩 두통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체기는 여전히 있었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이 잦아든 것만으로 살 같았다. 근처 미용실에 가서 긴 머리를 잘랐다. 엉키는 머리카락 끝 5cm만 자를 요량으로 들어갔는데 '요즘 날이 더우니 어깨까지 자르시면 되겠네요' 하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의 추천으로 다소 짧게 잘랐다.





봄이는 트렌드 단발로 잘랐는데 엄마가 잘 어울려서 놀랐다고 하고, 여름이는 문어머리 같다고 하고, 가을이는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고, 남편은 자르는 거 바짝 자르지 어중간하다고 했고, 겨울이는 앞머리를 잘랐더니 흰머리가 보인다며 엄마가 젊은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되면 어떡하냐고 울컥하며 걱정을 했다.



이런 소란한 반응이 행복하다. 정작, 나는 짧게 자른 걸 후회했다. 단발로 자르면 C컬 볼륨매직을 같이 했는데, 오늘은 기운도 없어서 자르기만 했더니 빗자루 머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니 봄이의 첫 다섯 살 파마부터,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곱슬거리는 머리를 찰랑거리는 머리로 마법의 매직을 해주던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작은 미용실 가게 삼촌이 생각났다.




아파트 단지 작은 상가 1층 미용실이었는데, 주로 아이들 머리를 자르거나, 뽀글 파마를 하러 가고, 봄이의 매직을 하러 가니 미용실 아저씨라고 부르기는 호칭이 좀 애매해서 삼촌이라고 불렀다.




다소 마른 작은 체구의 삼촌은 동네 단골손님이 많아 갈 때마다, 음료수며 커피, 간식 등이 데스크에 올려져 있었다. 주로 손님들과 정치 뉴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주변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컷은 트렌드 하지 않았으나 금방 쓱쓱 잘 잘랐고, 뽀글 파마도, 매직도 나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이사를 와서도 봄이 방학을 이용해서 매직을 하러 갔었는데, 얼마 전 그 동네를 지나는 길에 보니 미용실 상가에 '임대 문의'와 부동산 전화번호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고, 가게 안 물건은 다 치워져서 빈 공간으로 있었다.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텅 빈 가게를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혹시나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신 건지 미용실 삼촌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메시지는 안읽씹 상태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미용실 오픈하면 찾아가려 했는데 카톡 확인을 안 하는 걸 보니, 혹시 다른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닫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마음이 쓰였다.




봄이는 미용실 삼촌이 가게 문을 닫고 잠적하자 엄청 서운하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럼에도 이제는 저마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겠거니 짐작한다. 그게 어떤 일이든 말이다. 부디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좋은 일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연의 매듭은 그렇게 소식도 모르게 지어질 때가 많았다.









예전에는 연락이 뜸한 친구나, 아이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이웃들, 전 직장동료들도 가끔씩 연락해서 만나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떤 관계에 있어 내가 먼저 연락해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나는 생각 못 했는데 상대방이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ㅇㅇ는 통 만날 수가 없어. 내가 먼저 연락해도 시큰둥해하는 것 같고, 바쁘다고 하니 만나기가 힘드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 이제 나이도 많이 먹었는데 사람에 너무 얽매여서 애쓰고 살지 말자. ㅇㅇ는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그냥 만나자고 하면 보는 거고, 굳이 자꾸 먼저 연락하고 신경 쓰는 것도 피곤하잖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하는 노래 가사도 떠오르고, 굳이 인연을 붙잡으려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상대의 오해로 안 좋게 끝낸 인연의 매듭을 풀어주려 애쓰고 그랬는데, 돌아보니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거였다. 연락이 뜸해진 인연의 매듭을 지으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거나, 아니다 싶은 인연은 딱 잘라내고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어 그러기 마련일 텐데, 무슨 일인지 묻고 해명하고 답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저 서로 각자의 삶을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는 인연들이기에.



2022. 6. 6. 월요일 꿈꾸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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