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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Oct 06. 2023

코로나 일기

일상 03. 걱정이 찌지 않게 기록하기

"움직이는 것보다 먹는 게 많으면 살이 찌듯이 행동하지 않고 마음만 먹으니까 걱정이 찌는 거예요. 마음을 먹었으면 움직이세요. 걱정이 찌지 않게."      


김상현 <그러니 바람아 불기만 하고 이루어져라> 글을 읽고 걱정이 찌지 않게 기록해 본다.






2022.9.3. 토



자고 일어났는데 몸이 이상했다.


어젯밤에 먹은 치킨 세 조각과 맥주 한 캔, 빵빠레 아이스크림이 범인이었다. 아침부터 몸살 기운과 근육통, 오한, 식은땀, 어지러움, 속이 꽉 막힌 증상이 시작되었고 얼굴이 퉁퉁 부었다. 난 체했구나 싶어서 소화제를 먹고 이틀 굶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오늘은 벌써 그날로부터 일주일이나 지난 토요일이기 때문이다.








2022.9.10. 토. 추석



나를 제외한 식구들이 거실에서 아침부터 추석 명절 제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도와주시긴 하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를 찾고, 이것저것 일의 분담을 해서 아이들과 남편이 할 일을 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2.9.9. 금. 추석 연휴 첫날



월요일에 엉덩이 주사와 수액을 맞고 몸살과 근육통이 가라앉았다. 조금 살 것 같아서 이틀 굶던 걸 중지하고 죽 한 그릇과 귤 두 개, 커피 한 모금을 먹었는데, 다음날 화요일이 되자 다시 오한과 식은땀이 나고 속이 꽉 체한 느낌이 들었다. 배에 가스가 차고 현기증이 났다. 주사를 맞았지만 속이 꽉 체한 느낌이 들고 메스껍고 더부룩하고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약과 물만 먹으면서 화수목 3일을 보냈는데 차도가 없어서 금요일 아침 다른 병원에 갔다. 속을 풀어준다는 주사와 수액을 놔주신 뒤 아무래도 증상이 이렇게 오래가는 게 이상하다며 응급실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진료의뢰서를 써주셨다.



추석 연휴 첫날이었다.


응급실에 가니 코로나 신속 항원 검사 PCR을 받아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병원 건물 밖에서 세 시간 대기를 하라고 했다. 어지럽고 오한도 나는데 병원 내부에서는 대기할 수 없고 밖에 건물 외벽 간이 의자에서 대기를 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냥 접수를 취소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대기 두 번째라고 해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11시쯤 갔는데 진료는 1시 반쯤 넘어서 볼 수 있었다. 혹시 코로나일 수도 있어서 방호복 입은 의료진들이 문진 후 코로나 검사 PCR을 하고, 난 1인 병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대기했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문진 후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고 혈액 검사, 소변 검사, 복부 CT 처방을 내리고 가셨다.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조영제 넣고 검사해야 하는 CT 가 무서웠지만 알레르기 방지 주사를 먼저 맞고 검사를 하기로 했다.





1인 병실에서 왼쪽 팔에 수액을 맞으며 처치를 받았다. 일회용 침대 커버가 씌워진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있는데 어지럽고 오한은 계속 났다. 방호복 입은 의료진들이 와서 티브이에서만 보던 투명한 비닐로 된 방호 덮개가 달린 침대 위에 올라가 누우라고 한 뒤 지퍼를 잠그고 여기저기 문과 복도를 여러 번 통과한 뒤 CT 실로 짐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기계에 불이 들어오고 숨 참고 숨 내쉬라는 소리만 들렸다. 곧 '조영제 들어갑니다. 뜨거울 거예요. 힘들면 말씀하세요.' 하는 동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뜨거운 오줌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다시 기계에 불이 들어왔다. 숨 참으세요. 다시 숨 내쉬세요. 두 번 정도 더 기계가 왔다 갔다 한 뒤 검사는 끝이 났다.




다시 방호복 입은 의료진들이 방호 덮개 속에 누운 나를 실은 침대를 끌고 문과 복도를 여러 번 통과해서 원래 있던 병실까지 이동해 주었다. 다시 1인 병실에서 누워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했다. 춥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수술해야 하면 어쩌지. 추석이라 차례 음식도 해야 하고. 아이들은 어떡하고 별의별 생각이 들어서 두렵고 무서워졌다.



잠깐 잠이 들었다.


혹시 몰라 소리로 해놓은 카톡 알림이 들려 일어났다. 코로나 검사 PCR 양성 확인 문자였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검사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우선 코로나 증상이 아닌데도 코로나 양성이 나왔다며 고개를 갸우뚱하셨고, 혈당 수치가 아주 낮아서 어지러울 수밖에 없으며 미음이나 죽을 꼭 챙겨 먹고, CT 검사 소견으로는 다행히 장염만 나왔으니 약 먹고 잘 먹고 푹 쉬면 될 거라고 하셨다. 환자분은 약물 알레르기가 심해서 어떤 약을 처방해야 할지가 어렵다며 기존에 타 병원서 검사했던 먹어도 되는 진통제 멜록시캄만 처방해 주셨다.



집에 돌아와서 죽 먹고 약 먹고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병원을 전전한 탓에 몸이 더 축난 느낌이다. 우리 집에서 집안 제사를 지낸 지 약 5년 정도 되어가는데 아파서 지낼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어머님과 남편은 조금만 준비해서 그냥 지내겠다고 했다. 난 코로나 양성 판정 이후로 방에서 그냥 잠만 잤다. 잠이 쏟아져내렸다.








2022.9.10. 토. 추석



어제 죽을 먹고 약을 먹은 덕분인지 현기증은 사라지고 아직 오한은 왔다 갔다 한다. 인후통은 아직 없는데 경미한 기침 가래가 생겼다.



나를 제외한 식구들이 거실에서 아침부터 추석 명절 제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도와주시긴 하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를 찾고, 이것저것 일의 분담을 해서 아이들과 남편이 할 일을 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난 방에서 음식과 물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차례 음식 준비는 미리 남편이 장을 다 봐오고, 어머님이 어제 오셔서 음식을 해주시고, 아이들이 전을 부치고 밤을 깎아서 다 준비해 놓은 음식을 오늘 아침에 제사상을 차려서 차례를 지냈다. 내가 처음으로 빠진 추석 명절 차례였는데 어찌 됐든 추석 음식도 만들고 차례 지내기는 잘 마무리되었다. 남편은 내게 가짜로 아픈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지만 난 대꾸할 힘도 없었다.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려서 이렇게 저렇게 해도 힘들었던 게 가라앉고 머리 아픈 게 가시자 잠깐 글을 쓸 힘이 생겨서 생각나는 대로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며 기록을 해본다.



아파서 고생했던 날들이 지나고 나면 그때 이렇게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몰려온다. 그럼 덜 아프게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9월은 중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보다.


문득 지난주 월요일 아침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자고 있는데 갑자기 내 옆구리에 까만 물컹한 게 확 들러붙는 느낌이 나서 왼손으로 가만히 만졌는데 까맣고 아주 튼실한 쥐여서 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났었다. 꿈을 자주 꾸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 꾸면 주변 태몽이나 길몽을 꿀 때도 있고 잘 맞는 편이라 꿈자리가 사나우면 걱정이 되곤 했는데, 이번에도 꿈이 빗나가지 않았다. 가끔은 빗나가도 좋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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