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날에는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잘 사는 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내 삶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점수를 매겨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싶었다. "잘했네" "이건 틀렸다" 하며 동그라미나 별표를 그려주는 분이 있다면 나날이 얼마나 쉬워졌을까? 15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면 두 발을 땅에 딱 딛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16
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밟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 16
오십 대가 되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18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인데, 이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설렘과 울렁거림 없이 침잠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니, 예전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일들이 한 뜸씩 느려졌다. 18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너희도 나이 들어 봐 봐. 젊음과 안 바꾼다" 했었는데 무심코 젊은 날의 내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구나! 18
#찬란한 봄꽃 그늘에 주눅이 든다
요즘 찬란한 봄꽃 그늘에 주눅이 든다. 나무 잔가지에 연둣빛 물이 들고, 여리디 여린 잎들이 살겠다고 초록을 향해 아우성쳐대는 듯 생명의 가장 찬란한 정점을 목표로 하루하루가 다르다. 20
한데 나는 예전 같지 않게 아둔하고 느릿느릿하게, 찬란한 정점과는 다른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다. 마치 가을 단풍이 든 것 같다. 20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21
#빈둥거림의 미학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동시에 여러 일을 해냈다. 돈 찾고, 세금 내고, 시장 갔다가, 반찬 서너 가지 후딱 만들고, 운동하고, 샤워한 후 미용실에서 머리 하고, 일하러 가는 길에 빵도 사고, 전화할 사람에게 전화하고...... 꼼꼼히 메모까지 하며 거침없이 해치우던 일들이었는데 요즘은 자꾸 엉킨다. 41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42
#죽기 전에 필요한 용기
엄마에게 일기 쓰기를 권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살아온 얘기와 딸들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를 기록해 보셨으면 했다. 51
살아서 얽힌 마음들을 채 풀지 못하고 떠나면 남은 사람의 후회는 끔찍하단다. '왜 그 말을 안 했을까? 사랑한다고 왜 말 못 했나?' 하는 후회들이 마음을 갉아먹는단다. 서른 살에 암 진단을 받고 석 달 시한부 인생으로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나였음에도, 후회 없게끔 표현하고 살았나? 전혀 아니다. 52
#느티나무 같은 위로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 준다. 68
#가을빛의 굴절을 보며
살아온 하루하루가 쌓여 사람마다 쌓이는 각도가 달라진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겪지 않아도 좋을 모진 바람을 참 많이도 겪었다.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등장, 아버지의 죽음 등 남들은 쉽게 겪지 않을 어려움이 꼬리를 물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116
엄마와 새엄마 사이의 협상, 그 후 엄마와 다시 살게 되면서 알게 된 엄마의 병, 빚보증으로 인한 사업 실패, 우리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엄마의 양장점이 누전으로 인해 불타버린 것, 무엇 하나 건지지 못한 잿더미와 몰려드는 빚쟁이 그리고 차압, 거리로의 내쫓김...... 모진 바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매일 긴장과 스트레스에 허덕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116
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117
#신부님의 이자 놀이
"이건 내 돈이 아닙니다. 여러 신부들이 모은 거예요. 우리는 이 돈을 무기한으로 미스 양에게 빌려주겠습니다. 언제라도 갚을 만할 때에 갚으면 되고요. 마음 급하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잠깐, 미스 양! 우리도 이자를 받아야겠어요."
나는 벼락 맞은 것처럼 놀라서 그 자리에 섰다.
"이자를 받고 싶어요."
신부님은 웃고 있었다.
"첫째, 미스 양의 웃음입니다. 이젠 웃을 수 있겠지요? 돈 때문에 그렇게 어두운 얼굴이었다면 돈을 갚은 후에는 웃을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 지금의 미스 양 같은 처지의 젊은이를 만나면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가 받으려는 이자예요."
나는 웃었다. 눈물이 핑 돈 채로. 122
하지만 신부님의 이자놀이는 원금을 갚은 후에도 계속되는 엄청난 의무였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자일 것이다. 125
#감춰진 상처 하나씩은 다 갖고 있는
우리 집 앞 동물 병원에 피골이 상접한 개가 119 구조대에 실려 왔다. 그 개를 간신히 살려 놓았다며 누가 데려다 잘 기르면 좋겠다고 수의사가 말했다. 그놈에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136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심각한 발작이 있었다.
나는 영돌이의 멋진 긴 털에 가리어져 아무도 몰랐던 그 목걸이를 보면서, 내 삶에도 틀림없이 저렇게 중요한 부분을 옥죄고 있는 편견, 열등감, 자격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살지 않는가? 137
어렸을 땐 흉터 하나만 갖고도 친구와 종일 얘기 나누며 놀 수 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모든 상처를 영돌이처럼 멋진 털로 그럴듯하게 가리고 아픔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산다. 자신의 아픈 부분을 더 깊숙이 조여서 영돌이처럼 버둥대며 뻗을 때도 있다. 138
비슷한 상처들끼리는 서로 껴안아줄 수 있으니까, 얘기 끝에 서로의 상처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같은 값을 지워나가듯 그렇게 상처도 아문다. 138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겪은 만큼'이란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상처 덕분에 남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한 눈과 마음이 있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138
#더는 서러워하지 않겠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인 서른아홉을 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를 했다.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서른아홉 살의 남자들이 얼마나 철이 없는지를 알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미숙한 사랑과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는 나이임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마흔을 넘어서. 144
아버지의 빈자리를 더는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 몸의 반은 아버지가 주셨으니까. 사는 동안 늘 함께 사는 거라고, 나름대로 화해를 했고 원망과 미움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린 날 쏟아주신 사랑과 관심이 고맙기만 하다. 맏딸인 나를 보는 각별한 눈빛 덕분에 숱한 주눅과 후들거림을 뚫고 당당하게 세상을 대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니까. 145
#사연을 읽는 이유
사연의 깊이만큼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글을 읽고 나면, '이 사연을 읽는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뭐가 달라져? 내가 뭘 할 수 있지? 빚을 져서 굶주리고 있는데 이 사연이 밥이 되길 해? 돈이 되길 해?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괴감이 들었다.
사연이 방송된다고 실질적으로 당사자의 현실에 무슨 변화가 생길까 회의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마음이 너무 망가져서 자기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지도 못하고 글로도 쓰지 못하는 누군가가 자신과 비슷한 사연을 방송으로 들을 때 조금은 자기 객관화를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보듯 거리를 두고 자기 인생을 보게 되는 것. 그러고 나면 어디엔가 도움을 청하는 등등의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용기 내어 뛰쳐나오는 결단을 내린 다른 편지를 보면서 '아 어쩌면 이게 답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 주는 것을 경험한다. 154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 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154
고단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내 노래가 지친 어깨 위에 얹어지는 따뜻한 손바닥만큼의 무게, 딱 그만큼의 위로라면 좋겠다. 토닥여줄 줄도 잘 모르지만, "나도 그거 알아" 하며 내려앉는 손, 그런 손 무게만큼의 노래이고 싶다. 156
#스물일곱에 멈춘 내 나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한평생, 기력이 쇠한 모습이나 나이 든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육신의 옷을 벗어놓고 가는 길, 돌아볼 때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157
교통사고 덕에 일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치고 병든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스물일곱의 나는 어렴풋이나마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내 영정사진은 아무래도 스물일곱 살 때 찍은 사진으로 해야겠다. 고민이 많았던 그때, 내 마음속 나이도 멈춘 것 같다. 161
#어쨌건 나는 살아 있다
새해가 되었다. 365일을 살고, 칸을 나누듯 해가 바뀌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가도, 그렇게 나누어야 어느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시점에서 새해가 됐으니, 앞으로 무얼 어찌하겠다는 계획과 바람을 꼽아봄직한데 솔직히 아무 생각도 없다. 231
나는 언제 동굴에 들어가 재충전을 할 수 있을까? 무대에서 새가슴으로 떨며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외로움에서 버티는 나 또한 살아 있는 나. TV, 라디오의 전원이 꺼지면 웃고 노래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하던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 밖의 나의 생활은 계속된다. 233
환상이 사라져도 실제 사람은 매 순간을 살아낸다. 그게 중요하다. 새해에는 양희은으로서의 알찬 하루하루에 더 무게를 실어보자. 234
#새해, 여전히 버티는 사람들
새해인지 헌 해인지 감흥이 없다. 2020년 잘 가라고 한 해를 돌아본다거나 보신각 타종을 TV로 지켜본다거나, 늘 하던 송년모임도, 아무 이벤트도 없이 해가 바뀌었다. 235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눈물겹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 외에도 많은 이들이 죽을힘으로 버티고 있는 바깥 현실이 참담하다. 버틸 힘이 다해 후들거리고 있다. 238
버틸 수 없는 것을 버티는 게 버티는 거고, 참을 수 없는 걸 참는 게 참는 거라고 누가 말했을까? 매일 삼백여 통의 사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안간힘으로 후들거리며 버티는 현실이 그대로 읽혀 자꾸 마음이 가라앉는다. 238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
난 그저 나이고 싶다. 노래와 삶이 다르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노랫말과 그 사람의 실지 생활이 동떨어지지 않는 가수. 꾸밈없이 솔직하게 노래 불렀고 삶도 그러했던 사람. 244
에필로그
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글을 읽는 내내 따뜻하게 지어낸 밥을 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평화롭게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밥을 먹고 나면 또 정성껏 잘 살아갈 힘이 나곤 한다. 삶이 쉽지 않은 세상의 많은 '어린 희은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라 그래》를 읽으며 많이 위로받기를 바란다." - 김나영 (방송인) '추천의 말' 중에서 7쪽 -
책을 읽고 나서
책 뒷면에 여러 추천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내 마음과 꼭 같았던 방송인 '김나영'의 추천사를 옮겨 적었다. 나도 양희은 선생님이 정성껏 지어주신 따뜻한 집밥을 먹고 오늘은 바닥에 두툼한 요를 깔고 그 안에 폭 들어간 어린 희은이가 된 것 같았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이불속에서 나와 바쁘고 각박한 세상으로 나가더라도 그 온기로 나도 정성껏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방송에서 잠깐씩 뵙던 양희은 선생님의 음성이 들린다. 선생님은 오십 대가 되어서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하셨다. 또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알게 되셨다고 한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울림이 있게 들리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알았다. 그 울림은 차곡차곡 잘 살아내면서 쌓아 올린 내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른이 된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거나 내면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실패와 어려움을 고백하고, 원망스러웠던 아버지와 화해하고, 내가 가진 상처 덕분에 남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고, 라디오 사연을 읽으면서 공감과 응원으로 어깨동무를 하셨다는 마음가짐에서 깨닫는다.
가장 뜨끔 했던 이야기는 영돌이의 멋진 털에 가려져 있던 목을 옥죄던 목걸이였다.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게 당연한 일인데 어릴 때는 몰랐다. 내가 가진 상처만 크게 보였다. 열등감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사춘기가 지나고 자아가 생기면서 그럴듯하게 나를 감췄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더 그랬다. 스스로는 예의와 도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함이라고 마음을 다졌지만, 실은 보이기 위함은 아니었을지 되돌아본다. 어느 날부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알레르기 증상이 무섭고 두려웠다. 사라지는 일상을 붙잡고자 일기를 쓰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나도 돌아보고 주변도 생각하게 되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이 닥치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차이라는 걸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배운다. 인생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걸. 긍정과 감사를 차곡차곡 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