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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Oct 28. 2023

쓰기의 말들

독서 11. 마음을 쓰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글


쓰기의 말들 / 은유 지음






글쓰기로 들어가는 104개의 문





프롤로그


2016년 여름에, 은유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에리히 케스트너>



쓰기의 말들은 글쓰기에서 닥친 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지 않지만 도망갈 곳이 없음을, 자기 손으로 써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속삭인다.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인간을 부품 화한 사회 현실에서 납작하게 눌린 개인은 글쓰기를 통한 존재의 펼침을 욕망한다. 그러나 쓰는 일은 간단치 않다.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안 쓰고 안 쓰고 안 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되어 수업에 왔다는 어느 학인의 자기소개가 귓전을 울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  자기 고통에 품위를 부여하는 글쓰기 독학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쓰기의 말들'이 글쓰기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진입로가 되어 주길, 그리고 각자의 글이 출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본문 중에서



10. [이성복] 사는 그것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사랑을 받아 내는 그릇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글쓰기가 자기를 겉꾸미고 남의 삶을 끌어다가 왜곡하고 자기 편의대로 가공하는 수단이 되는 게 어쩐지 가슴 아프다. 약한 것, 모자란 것, 초라한 것을 가리고 누르는 수단이 되는 게 너무도 쓸쓸하다. 41





15. [황현산]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51





38. [엘렌 식수] 자기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자기만의 운동으로 삼으라.


돈과 나를 맞바꾸는 거래가 본격화되기 이전의 '나'를 만나는 일, 자기의 사회적 표정과 대결하며 본래의 표정을 되찾는 일이 어른의 글쓰기일지도 모르겠다. 97







39.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체란,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다.


국어의 어색함을 나도 써먹고 싶다. 자동 진술 같은 능숙함보다 자기 진술에 다가가는 시도에 따르는 어색함을 사랑해야지. 99







50. [마루야마 겐지] 우리는 스스로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세계를 읽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니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부품처럼 쓰다 버리고(삼성 직업병 문제) 약한 존재의 죽음을 무시하고 (세월호 참사) 자연을 파괴하면서 (밀양 송전탑) 기업이 이익을 우선으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돌아가는 세상이다.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한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세상에서, 나는 그냥 밥 먹고 숨 쉬고 애들 키우고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된다.



발길 닿는 대로 욕구를 따르는 일이 큰 것의 배를 불리고 작은 것을 소멸시키는 순환 고리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오싹한 일이다. 소비자 정체성으로 포인트 적립하다가 하루를 보내게 만드는 자본의 천국은 얼마나 무서운가.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 두기. 이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태어난 것을 덜 후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121







64. [박완서]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삼사십 대 여성 저자군의 면면은 이렇다. 정신과 의사, 아나운서, 변호사, 예술가, 정치인 등 전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 아니면 요리나 패션 등 유명 블로거나 살림왕 주부이거나 아이를 '특목고'나 명문대에 진학시킨 교육왕 엄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살림하고 밥벌이하며 자아 찾기 하느라 용쓰는 나같이 평범한 여자의 글은 별로 없다.



그럼 해 볼까 싶었다. 사회적 성취나 인정 없이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 매일매일 시곗바늘처럼 돌아오는 일상을 어떻게 허덕거리며 건너가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고 이왕이면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겁도 없이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149







92. [E. B. 화이트] Man(인류)에 대해 쓰지 말고 man(한 인간)에 대해 쓰라.


자유 기고가로 일할 때는 인터뷰하면서, 글쓰기 수업에서는 학인들 글을 통해서 인생을 배웠다. 내 앞에 놓인 삶은 매번 대단했다. 이 세상에 '보통 사람'은 없으며 '평범한 삶'도 없다는 사실을 한 사람을 통해 알았다. 205







99. [폴 오스터] 말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그 말들을 종이에 새겨 넣는 과정을 느끼는 것이다. 글쓰기는 촉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 육체적인 경험이다.


'아직 사랑 중.' 제목을 읽는 목소리가 찌르르 떨려 왔다.....

'이것은 울먹체다!' 낭독의 감흥에 젖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울먹체'로 쓰인 글은 대체로 완성도가 높다. 거짓 없고 성숙하다. '그 사건'을 복기하고 뒤집어 보고 바로 보고 따져 보고 헤아리느라 오래 뒤척인 몸이 빚어낸 글의 위력일 것이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 219







100. [리베카 솔닛]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다.


'말하고 싶지 않음'과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의 길항에서 좋은 글이 나오는데, 두 마음이 다투다가 비공개 버튼으로 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비밀 글의 유혹을 벗어나는 것, 세상과 나의 대화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본령이다.


환대든 적대든 다양한 반응을 겪어야 맷집이 키워지고 글이 성숙해진다. 자기 글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 중심성을 벗어나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는 작업이다. 나뿐이던 세상에 남이 들어오는 일이다. 221








책을 읽고 나서



최근에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내 글이 쓸모없고 형편없게 느껴진다는 데서 온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주기가 반복되곤 한다.



글쓰기 강연을 찾아보다가 은유 작가님의 첨삭 동영상을 보고 '쓰기의 말들'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초록색 표지에 간결한 글만 나와 있는 책이 꼭 은유 작가님을 닮았다. 글도 녹차 아이스크림처럼 쌉싸름한데 시원하고 달았다.



은유 작가님은 글쓰기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하는데 여기서부터 많이 놀랐다. 은유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강력하게 마음을 끌어당겨 저절로 감탄하게 되는데. 독학으로 글쓰기를 배우셨다니. 세상에. 과연 재능일까. 아니면 노력일까.



작가님은 문예창작과나 국문과,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이 아니고 책 읽는 생활인이었다고 한다. 그 시작은 읽기였다고. 철학 책이나 시집, 평론집을 주로 읽었고, 그러다가 자유 기고가로 '글밥'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문필 하청 업자의 시간을 지나면서 자기만의 수십 권의 문장 노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 순간 '다른 글'이 쓰고 싶어 졌고, 독서가 독학으로 무르익으며 읽은 모든 문장이 쓰기의 말들로 다가왔다고 한다.



문장 스승으로 니체를 꼽았다. 뜻도 모르고 읽었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빠져들었고, 다른 철학 책과 달리 "은유적 서술, 생략, 파격적 구문 등으로 생동" 하는 니체의 글에 도취되어 충동적으로 '은유'라는 필명을 지었다고 한다. 은유 작가님의 본명이 아닐 거라 짐작했지만 니체의 글에서 '은유'라는 이름을 가져올지는 몰랐다.



니체의 문장 몇 개를 소개해 주셨는데 나도 속내를 들킨 듯 움찔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근면이라는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도덕은 지금까지 삶을 가장 심하게 비방하는 것이었고, 삶에 독을 섞는 것이었다."



니체의 사납지만 예리한 문장과 냉수처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사유에 길들여졌다고 한다. 삶과 글의 기준이 니체의 문장이었고, 니체가 없었더라면 독학으로써 글쓰기도 불가능했을 거라 말한다. 나도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없던 용기가 생기고, 써야 할 이유가 생기고,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작가님의 스승인 니체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이 책에는 글쓰기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는 않다. 글쓰기로 들어가는 104가지 문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을 담았다.



블로그에 '쓰기의 말들' 책을 기록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줄거리를 요약하고 무슨 얘기를 써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불현듯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인류애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인간에 대해서 쓰라고 했다는 문장이 거창하게 쓰려하지 말고 먹고사는 이야기를 쓰라는 말처럼 들렸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이도 저도 아니고 살림하고 밥벌이하며 자아 찾기 하느라 용쓰는 나같이 평범한 여자의 글은 별로 없다. 평범한 아줌마의 일상 쓰기를 변호해 주는 이야기에 내 마음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하다가 여섯 개의 일기를 썼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글이 잘 읽히고 안 읽히고, 좋고 글이고 나쁜 글이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생각이 흘러나오는 대로 썼다. 쓰기의 말들처럼.



은유 작가님의 글은 글쓰기의 동력을 불러일으킨다. 내 짧은 생각을 확장시켜 주고,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공감해 주며 변호해 준다. 내가 쓴 글이 보잘것없는 먹고사는 이야기더라도 누구도 쓸 수 없는 자신만의 글쓰기라며 부단히 내 마음 쓰기의 말들을 써내게 해 주었다. 마음을 쓰고 싶게 마법을 걸어준다.



쓰기의 말들 / 저자 은유 / 출판 유유 / 발매 201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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