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산지 직송 10kg 노지 귤 29900원. 신선하고 새콤달콤 맛있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싱겁지 않은 당도였다.
제주도 산지 직송 귤을 넣으려고 김치 냉장고 서랍을 열었더니 반찬동 아래 뜯지도 않은 목우촌 햄이 있었다. 명절 일주일 후 집안 제사도 있어서 꼬지 하려고 햄을 두 개나 샀는데 한 개가 남았던 것이다. 설마 하며 유통기한을 확인했는데 역시나 지났다.
우리 엄마였으면 냉장고에 있어서 분명히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포장지 비닐을 뜯어보니 냄새도 안 나고 맛도 괜찮았다. 나도 겨울이한테 '김치냉장고에 뜯지 않은 채로 있었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면서 햄을 썰어 겨울이에게 먼저 볶고 있으라고 했다.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 둔 감자 박스를 열어보니 신문지를 덮어 서늘한 곳에 두었는데도 세상에. 감자에 싹이 잔뜩 났다. 싹 난 부분은 칼로 두껍게 도려내고 성한 부분은 채를 썰었다. 냉장고 야채실에서 상태가 살짝 가려는 버섯과 실파도 다듬고 썰어 프라이팬에 넣었다. 나 오늘 우리 엄마로 빙의한 것인가. 내 안에 우리 엄마 있다.
저녁에는 남편이 텃밭에서 캐 온 고구마를 내가 생색내며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올해는 고구마가 안 됐을 거라고 예상하면서 어머니와 남편 둘만 고구마를 캐러 갔는데 예상과 달리 고구마 농사가 풍년이었던 것이다. 남편이 끙끙대며 고구마가 담긴 비료 포대 한 자루와 다섯 박스를 가져왔다. 어머니도 나눠드리고, 회사 사장님과 직원들 고구마도 따로 봉지에 담아놨는데도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 많은 걸 어머니와 남편 둘이 캤다니 죄송함에 내 존재가 자체 소멸되었다.
어제오늘 고구마와 귤, 커피가 주식인 삶을 살고 있다. 저절로 다이어트될 수도 있겠다 좋아했다. 저녁에는 밥과 참치 미역국, 양념게장, 열무김치를 먹고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밤 11시 30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일어나니 허무해서 이렇다 할 것 없는 일기를 쓴다.